노회찬의 ‘촌철살인’ 다시 생각해봐도
[아시아엔=김재화 말글스튜디오 대표, 유머1번지 작가 역임] ‘촌철살인’. “무기를 한 수레 가득 싣고 왔다고 해서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치도 안 되는 칼만 있어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나대경, 중국 고사)
분위기를 뒤집어 놓거나 상대를 압도할 때 쓴 짧은 한마디를 촌철살인이라 한다.
필자는 말에 유머도 넣고 깊은 의미까지 담으면서도 짧게 함축하는 실력은 단연 노회찬 의원을 꼽는다. 그의 빼어난 언어구사 솜씨는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누구나 인정한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늘 필자의 교재로 활용되곤 했는데, 더 이상 재미 펄펄 넘치는 새로운 ‘레토릭’(rhetoric, 修辭學)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이 못내 아쉽다.
유머는 몇 가지 기법이 있다. 노 의원은 주로 비유법을 썼다. 그게 전달력 좋고 효과는 크지만, 웬만한 순발력 갖곤 바로바로 하기는 힘든 기술이다.
그의 유머특징을 말하기 전에 필자와의 작은 인연을 하나 소개한다.
17대 국회였으니 13~14년 전 일이다. 방송에도 더러 출연하곤 했던 당시의 필자에게 MBC-TV의 한 프로그램 에서 정치인들을 인터뷰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필자는 국회 의원회관으로 가서 의원 몇 사람을 만났다.
나는 불문곡직 대뜸 “당신들이 웃으면 국민들이 좋아하고 안심할 것 같으니 마구 웃어주시면···.”라고 청했다. 스타급의 막강한 의원들은 김재화라는 방송인의 정체와 인터뷰 의도가 궁금키만 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볼뿐, 나서 주질 않았다.
그때 노 의원이 다짜고짜 “푸하하하~!”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아, 익히 들었듯 특별한 품성 가진 사람 맞구나 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몇 해 뒤, 국회서 ‘유머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그를 다시 만났는데, 그때도 호방하게 웃어주었다.
머릿속은 복잡다난 했을 터. 하지만 여유와 유순한 표정이 얼굴에 꽉 채워져 있었다.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우리가 일본과 싸워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청소할 땐 청소해야지, 청소하는 게 ‘먼지에 대한 보복’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의 절묘한 비유 언어들이다.
분노를 유머로 승화시키는 거, 쉬운 것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고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주는 거, 가진 자 힘센 자에게는 다소 거칠게 몰아붙여도 약자에게는 관대하고 상냥하게 말하는 거, 이런 성정 갖춘 사람 흔치 않은데, 그에게는 이런 평가 내려도 정말 맞다.
최근 열심히 정치활동을 했던 전 KBS 아나운서 정미홍씨도 엊그제 숨졌다. 정미홍 아나운서와는 방송작가 초년 때 수년 동안 라디오프로그램을 함께 해서 그의 재주와 성격을 잘 아는 편이다.
당차고 논리 정연하고 모든 것에 호불호가 분명했다. 특히 암기력도 아주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 전 아나운서가 남긴 마지막 말도 사람들 뇌리에 오래 각인될 것 같다.
“너무 예민하지 마라. 배려의 마음을 가져라.”
좋은 말에는 신통방통 영험한 그 무엇이 있는지, 사람들을 살려내기도 한다.
“진지한 삶은 견디기 힘들다. 그러나 진지함이 유머와 함께 할 때, 훌륭한 색채를 띠게 된다.”(마르셀 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