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들은 왜 술을 자주, 많이 마실까?

[아시아엔=남현호 <러시아, 부활을 꿈꾸다> 저자] 러시아인들은 왜 술을 자주, 많이 마시는 것은 한마디로 전통이다. 날씨가 추워 몸을 따뜻이 해야 하고, 남성들은 술로 우정을 더 돈독히 하고 남자다움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 이름을 딴 ‘푸틴카’와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 이름을 딴 ‘메드베데프’라는 보드카가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것도 역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발작성 음주벽 ‘자포이’(запой) 현상만 없다면 얼마든지 마셔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러시아 음주문화는 가정 해체는 물론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에 국가가 더 이상 손을 놓고 있을 수 없게 됐다.

러시아 정부는 개인 술 소비량은 5리터까지 줄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주류에 대한 가격 통제와 함께 밀주 보드카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2010년 1월1일부터 0.5리터짜리 보드카를 89루블(약 3400원) 인하로 팔지 못하도록 했다. 맥주에 대한 소비세를 리터 당 3루블에서 9루블로 3배 인상했다. 또 미성년자에 술을 팔다 적발되면 행정처벌 외에 형사처벌하도록 했고 TV 술 광고도 제한하도록 했다. 음주가 건강에 해롭다는 문구를 전 주류제품에 부착하도록 했다. 특히 그런 경고성 문구가 눈에 확 띄도록 제품 전체 면적의 20%가 되도록 했다. 또 맥주 시음 행사 등 각종 술 관련 이벤트 행사도 못하도록 했다. 일각에서는 밀주 제조를 막기 위해 아예 주류 제조를 300년 전처럼 국가가 독점 관리하자는 의견도 있다.

알코올 규제는 1986년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시절에도 있었다. 지나친 음주가 사회적 손실을 가져온다며 한 달에 보드카는 단 2병만 살 수 있게 했다. 알코올 판매 시간을 단축하고 판매 대상 연령도 18세 이상에서 21세 이상으로 높였다. 그러나 밀주 제조만 부추기고 보드카가 뇌물로 사용되면서 부작용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문제는 여러 규정을 만들기는 했지만 제도가 제대로 시행될 것으로 믿는 러시아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돈 되는 사업인 주류 판매업을 공무원들이 그냥 놔 둘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업자와 결탁해 불법 제조 또는 판매를 눈감아 줄 것이 뻔하다는 얘기다.

러시아에서는 매년 약 50만명이 알코올 남용으로 사망한다. 러시아 남성 평균수명은 방글라데시, 온두라스 같은 후진국보다 더 낮다. 음주는 건강과 직결돼 알코올 중독 환자 2천만명, 음주 사망자는 매년 10만명에 달한다. 러시아에서 80%이상의 청소년들이 음주를 하고 있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연령도 16세에서 13세로 낮아졌다는 통계도 있다.

러시아에 맥주는 음료수나 다름없다. 아침 출근시간에도 맥주병을 들고 가는 이들이 많다. 최근에는 보드카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러시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맥주 열풍이 불고 있다. 유럽에서도 독일 다음으로 맥주를 많이 소비한다.

청년들의 과도한 맥주 소비를 줄이려고 2005년부터 TV광고시간을 밤 10시 이후로 제한했다. 교육, 문화 시설, 대중교통 안에서 맥주를 마시지 말도록 했지만 실제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작년에는 알코올 음료목록에서 빠져 있던 맥주를 술로 인정하는 법률을 개정, 2013년 1월1일부터 맥주도 다른 술처럼 밤 11시부터 오전 8시 사이 식당이나 카페 등 대중음식점이 아닌 일반 상점에서는 판매가 금지된다. 또 낮 시간대에도 정식 허가를 받은 상점이나 매장이 아니 길거리 간이 매대(키오스크)에서는 맥주를 팔 수 없다.

러시아는 오랜 기간 국민의 건강을 갉아먹는 술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금주령을 내렸던 과거의 러시아 지도자들이 금주령과 더불어 인기가 하락하고 결과적으로 술 소비가 감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해 보면 술과의 전쟁이 승리로 끝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것 같다.

금주 정책들이 과연 러시아를 건강한 사회로 만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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