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 대학살 도피 재일교포와 ‘예멘 난민’의 경우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연일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가히 살인적인 폭염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득 이 무더위에 제주도에 입국한 예맨 난민의 처지를 생각해본다.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예멘인 난민 549명의 난민 심사가 곧 시작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난민 문제는 이제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열기를 더한다.
예멘 난민 심사는 난민법에 의해 이뤄지며 1차심사를 거쳐 이의신청을 받는 2차심사 2단계로 이뤄진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정치적 견해 등이 판단 기준이 된다. 무엇보다 아랍쪽 경우에는 정치적 박해 위험성과 테러조직 연관성도 심사 대상에 포함된다.
1994년 4월 처음 난민 신청을 받은 후 지금까지 4만470명 중 2만361명의 심사가 끝났고 그중 약 4.1%인 839명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우리나라는 그만큼 난민 인정받기 쉽지 않다. 우리 국민 중 일부는 이들이 이슬람 국가 출신이기 때문에 테러리스트가 아니냐는 공포에 휩싸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무슬림이라고 해서 다 극단주의자이거나 가부장적인 요소가 강해서 여성을 무조건 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도주의자 대다수는 예멘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이 만약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따라서 인권적인 문제로 이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인도주의자의 입장이다.
예멘 난민들이 출구로 삼는 국가는 떠나온 예멘보다 나은 삶의 조건을 갖춘 곳일 것이다. 이제 오랜 분쟁지역인 예멘에서 탈출해 온 난민 문제는 우리에게 세계시민으로서의 관용을 보여줄 기회로 다가온 셈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도 난민과 망명으로 세계시민 사회의 관용적 혜택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만주벌판과 상하이 등지를 떠돌았던 독립운동가들을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받아준 적이 있다. 또 해방 직후 제주 4·3사건 대학살로부터 도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제주 난민들은 오사카에 ‘이쿠노 코리아타운’을 형성한 것이 오늘 날 재일동포가 된 것이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발생한 난민은 미국과 일본, 그보다 더 머나먼 제3국으로 떠나 해외동포가 되었다.
미국의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불과 500여명의 예멘 난민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국의 수치라고 일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 법을 폐지해달라”는 청원의 경우 동의한 네티즌이 39만 명을 넘어섰다. 정부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네티즌들은 7월 30일 서울시청 앞에서 난민반대집회를 열기로 했다.
뚜렷한 이유 없이 예멘인들을 제주도에 묶어두는 바람에 육지의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방치되는가 하면, 인천과 제주도로 떨어져 이산가족이 된 형제도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체결한 난민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에 어긋나는 행위다. 이 협약은 난민이 난민 신청국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우리나라는 2013년 7월부터 난민법을 시행하고 있다. 난민 신청자는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정부는 하루빨리 국내법과 국제협약에 규정된 난민의 권리와 보호의무, 처리절차 등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 오해와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 이러다가 국제사회에서 ‘인권 불량국가’라는 오명을 쓸지도 모른다.
삼동윤리(三同倫理)라는 말이 있다. 원불교의 제2대 종법사를 역임한 정산(鼎山) 송규(宋奎) 종사가 제창한 세 가지 윤리강령이다. 이 삼동윤리는, 소태산(少太山) 부처님의 일원주의(一圓主義)에 입각해 다원적 개방사회를 지향하는 현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세계의 모든 종교·민족·국가·사회가 다함께 실천해야 할 윤리의 방향이다.
첫째, 동원도리(同源道理). 이 세상 모든 종교와 교파가 그 교리나 제도 또는 형식에서 각각 특색과 차이점이 많으나,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의 근원적 진리에 바탕하고 있으며, 그들의 궁극 목표 또한 이 진리의 실현에 있다. 모든 종교인들은 각자의 특수성을 살리고 종파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 이 하나의 근원적 진리의 광장에서 서로 만나고 이해하며, 나아가 인류의 진리화와 이상세계 실현에 상보적으로 협조, 노력하자는 것이다.
둘째, 동기연계(同氣連契). 이 세상에는 수많은 인종·민족·국가·씨족의 구별이 있으나, 그 근본을 추구하면 온 인류와 생령(生靈)이 한 근원에서 나온 동포요, 한 기운으로 연계된 형제라는 것이다. 모든 인류는 이러한 동기연계의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에 입각하여 좁은 국한을 트고 대립과 투쟁관계를 벗어나, 한 집안 한 권속의 세계시민으로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상부상조하여 평화세계 건설에 다 함께 노력하자는 것이다.
셋째, 동척사업(同拓事業). 서로 다른 사업과 주장도 그 근본 동기는 이 세상을 보람된 삶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데 있는 것이며, 또한 직접 간접으로 이 세상을 개척하는 데 한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 사업과 주장만이 옳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의 사업과 주장을 배척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협조하며 상대의 장점을 수용하여 다 함께 이상세계 건설에 노력하자는 것이다.
송규 종사는 “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라는 게송(偈頌)으로 이를 표현했다. 우리도 이제 세계시민의 관용을 보여 줄 때가 왔다. 심지어 초목까지라도 한 집안 삼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예멘 난민이라고 거부하는 것은 세계시민의 자격을 의심받을 수 있다. 5천만의 인구 중 겨우 500명 정도야 우리가 포용해도 대세에는 영향이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