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 박사] 백세인(百歲人, Centenarian)이란 100년 이상 생존한 사람을 말한다. 미국의 노년학연구그룹(Gerontology Research Group)은 현대적 관점에서 가장 장수했거나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목록을 관리하는 단체다. 이 그룹의 기록에 따르면 근대적인 문서로 증명 가능한 최장수 기록 보유자는 프랑스의 잔 칼망(Jeanne Calment, 1875-1997) 할머니로 122년 164일을 생존했다. 114세에 영화 <Vincent and Me>에 출연해 사상 최고령 배우로도 기록되어 있다.
가장 오래 산 남성은 일본의 기무라 지로에몬(木村次朗右衛門, 1897-2013)으로 116년 54일 생존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박상철 교수팀 조사에서 최애기 할머니가 110년(1895-2005)을 생존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소설과 영화에 이어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이 소설은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Jonas Jonasson, 1961년 생)이 2009년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기자와 PD로 오랜 세월 일한 작가의 늦깎이 데뷔작인 이 소설 한편이 유럽 서점가를 강타했다. 인구 900만의 스웨덴에서 100만부, 전 세계에서 1000만부 이상 팔리며 ‘100세 노인 현상’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 출간되어 70만부 넘게 팔렸다.
이 소설은 2013년에는 모험 및 코미디 영화(감독 플렉스 할그렌)로 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6월 상영했다. 그리고 연극(지이선 작가, 김태형 연출)으로 9월 2일까지 대학로 200여석 소극장인 자유극장에서 공연중이다.
연극배우 5명이 쉴 새 없이 이름표를 바꿔 붙이고 소품 150여개를 활용해 소설 속 등장인물 60여명과 고양이·개·코끼리까지 변신을 거듭한다. 155분의 러닝타임 중 대략 1인 11역쯤 되는 셈이다.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The 100 year 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의 첫머리는 “2005년 5월 2일 월요일”로 시작된다. 이 날은 소설의 주인공 알란 칼손의 100회 생일을 축하는 파티가 양로원 라운지에서 오후 3시 열릴 예정이며, 시장(市長)도 초대되었다. 그러나 파티 한 시간 전에 알란은 밤색 재킷과 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양로원 1층 자기 방 창문을 열고 아래 화단으로 뛰어내려 양로원을 탈출한다.
양로원을 탈출한 알란은 버스터미널에서 우연히 갱단의 돈가방을 훔치며 일어나는 황당한 에피소드와 과거 100년 동안 의도치 않게 근현대사의 격변에 휘말리며 겪어 온 모험들이 교차된다. 알란이 경찰 추적을 받으며 도피 과정에서 겪는 모험과 쌍을 이루는 소설의 다른 한 축은 그가 살아온 100년의 이야기이다. 즉, 소설은 100번째 생일 파티를 피해 도망치는 현재에서 시작되는 사건과 지난 100년간 살아온 인생 역경 등 두 줄기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폭약회사에 취직한 알란은 다이너마이트 전문기술 덕택에 스웨덴 시골뜨기로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인생을 살게 된다. 고향을 떠난 알란은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장군의 목숨을 구하는가 하면, 미국 과학자들에게 핵폭탄 제조의 결정적 단서를 주고 트루먼(Harry Truman, 1884-1972) 대통령의 과학분야 멘토로 활동했다.
또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의 아내를 위기에서 건져내고, 스탈린(Iosif Stalin, 1879-1953)에게 밉보여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로 노역(勞役)을 갔다가 수용소를 탈출해 북한에서 김일성(金日成, 1912-1994)과 어린 김정일(金正日, 1942-2011)을 만나기도 한다. 알란은 모택동의 도움으로 위험을 벗어나 발리에서 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다.
전쟁과 냉전으로 전 세계가 양분되었던 20세기, 알란은 세계사의 다양한 격변에 휘말리는 와중에도 이념과 체제, 사회적 통념이나 평가 등 기존의 가치관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100년을 살면서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는 동시에 인생의 마지막 100세에 또 다시 양로원 창문을 넘는 용기로 독자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Things are what they are and will be what they will be.)고 말하는 알란은 엄청난 사건과 고난이 끝없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태도를 지탱한다.
그는 독자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자유의지를 무엇이 억누르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사그라들지 않는 불꽃 같은 노인의 유쾌하고 기상천외한 인생 여정을 통해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20세기를 지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재편된 이 시대를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