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스파이였다②] 호모 영국작가 서머싯 몸

일본 염탐하다

[아시아엔=김중겸 전 경찰청 수사국장, 인터폴 전 부총재] 1919년 45세, 비밀정보부에서 또 일거리가 왔다. 임무는 일본의 군사력 탐지.

1923년 49세까지 매년 도쿄, 요코하마, 고베, 나가사키, 시모노세키를 여행했다. 모두 군사 및 군수산업 기지였다. 동양문화를 소개하는 여행기 작가로 왔다고 했다. 일본 영문학자들은 대환영하며 친일파 대작가로 칭송했다. 파티 열고, 강연회 개최해줬다.

물론 탄로 나지 않는 조치도 취했다. 영국과 미국 신문에 여행기 심심치 않게 게재되게 했다. 기행문에 군사정보 넣어 보냈다.

그 와중에도 23세 청년과 새로운 호모관계를 맺었다. 비서로 곁에 두었던 전 파트너는 졸도해 병원으로 가던 중 사망했다.

자신의 호모성향 괴로워 술에 의지해 살았다. 알코올 중독자 됐다. 간경변증으로 죽은 게 아니었다. 파트너로부터 전염된 폐결핵이 사인.

귀신 나타났다

1939년 65세. 프랑스 각지 다니며 전쟁노력 취재했다. 프랑스어로 <싸우는 프랑스>를 발간했다. 이 책으로 프랑스 최고훈장을 받았다.

1940년 66세, <싸우는 프랑스>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 출판. 6월 14일 독일군이 파리 점령.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는 이 책 저자를 제3제국의 적으로 간주해 처형대상자로 올렸다. 줄행랑치자!

6월 20일 남부 항구 칸느에서 석탄수송선 탔다. 유보트 때문에 3일이면 갈 뱃길이 꽤 오래 걸렸다.

6월 23일 뉴욕타임스는 어디서 들었는지 특종보도. ‘우리의 대작가 지중해에서 실종!’ 전 세계로 긴급 타전했다.

7월 8일, 18일 걸려 리버풀 도착. 런던타임스 대서특필. ‘뉴욕 타임스의 귀신 나타났다. 생환했다!’

다시 미국으로

이 소식을 당시 정보부가 들었다. 당시 정보부는 간첩일 하는 부처가 아니라 전시 선전활동을 하는 부처였다. 도와 달라 했다.

주영 미국대사 케네디(나중 대통령 된 존 에프 케네디의 아버지)가 영국을 중상모략하고 있다.

케네디 대사는 “영국은 독일과 싸울 의지가 부족하다”고 루스벨트대통령에게 보고서를 보낸다. 미국언론과도 그런 식으로 인터뷰한다.

“미국에 가서 反英 분위기 가라앉혀 달라. 친영 미국인 많이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요청을 그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미국 전역 돌아다니며 영국선전을 했다.

왕따 속에서 성장

그는 1874년 프랑스 주재 영국대사관 고문변호사 아들로 파리에서 태어났다. 여덟살에 어머니, 열살에 아버지 작고.

영국으로 갔다. 자식 없는, 엄격하기만 한 숙부 밑에서 자랐다. 정 붙이지 못했다.

기숙학교 입학. 프랑스식 영어에 말 더듬고 키 작은데다 다리도 좀 절었다. 왕따! 맘 터놓을 친구 하나 사귀지 못했다. 자의식 강한 내향적 소년이 됐다.

결핵 걸려 휴학하고 요양 후 학교에 다시 다녔다. 적응 못하고 자퇴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청강하며 문학가의 꿈을 마음에 키운다. 이때 영국인 청년 변호사를 알게 된다. 그런데, 웬걸 호모였다.

두 사람은 깊은 관계에 빠진다. 여성과의 결혼은 두번 했다. 하지만 호모는 청산치 못했다.

귀국해 목사인 숙부는 “너는 목사가 되어 내 뒤를 이으라”고 했다. 반항해 런던의 의학전문학교에 들어가 의사자격을 취득.

스파이 소설은 단 한권

1897년 23세 첫 소설을 냈다. 경찰관들도 순찰 꺼려하는 템스 강변 슬럼가 램버스에 거주했던 경험을 살렸다. 그곳 빈민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성공해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소설가와 극작가로 유명했다.

1928년 54세 단편집 <영국인 간첩 어센던>(Ashenden: Or the British Agent)을 냈다.

이 책은 16편의 스파이 이야기로 그와 동료들의 경험담이다. 이언 프레밍을 비롯한 후세 스파이 작가들에게 큰 영향 끼쳤다.

암호명 서머빌은?

필자의 고교 시절 영어선생님은 침 튀기며 열변 토했다. <서밍 업>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였다.

서머싯 몸의 소설이었다. 그의 스파이 암호명이 서머빌이다. 1965년 91세로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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