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원의 재밌는 월드컵⑭] 8강대진표···운칠기삼과 진인사대천명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의대 교수] 2차대전을 일으켰던 전범국가 독일은 1954년 드디어 스위스월드컵에 출전이 허락되었다. 서독은 당시 세계적인 선수도 없었기 때문에 8강에 들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되는 수준이었다. 

서독은 1954년 대한민국, 터키, 헝가리와 함께 같은 조에 배정되었는데, 이 대회의 예선은 2경기만을 하는 이상한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헝가리와 체코에 이미 대패한 대한민국은 서독과 경기하지 않았다. 서독은 당시 무적함대로 불리는 세계 최강 헝가리와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지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2진을 내보내서 3대8로 대패했고, 이 경기에서 전력을 다한 헝가리의 푸스카스는 큰 부상을 당했다.

비록 터키와의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했지만 예상대로 8강전부터 서독은 상대적으로 쉬운 팀들과 대결하면서 쉽게 결승전까지 갈 수 있었다.

반면에 헝가리의 경우 축구의 종주국 영국, 전 대회 우승팀인 우루과이, 준우승팀 브라질과 대결해야 했다. 연장전까지 사투를 벌이면서 어렵게 헝가리는 결승에 도착했지만 피로감이 극에 달했고, 더구나 세계 최고의 선수 푸스카스는 아직도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헝가리와의 재대결에서 서독은 0대2로 리드당하다 3대2로 역전승하면서 최초로 줄리메컵을 들어올렸다. 이 경기는 라디오로 동독에도 중계되었고, 동독사람들에게도 큰 환호를 받았다. 1954년 월드컵 우승은 패전국가 독일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러시아 월드컵 8강 대진표

이번 러시아월드컵 8강에 진출한 국가들의 대진표를 살펴보면 1954년과 별 다르지 않다. 우루과이, 프랑스, 벨기에, 브라질이 한 그룹을 이루어 이 중 한팀이 결승에 진출하고, 다른 그룹의 경우 영국, 스웨덴, 러시아, 크로아티아가 다른 한 조를 이루어 한팀이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이번 대회의 예선전과 16강전 결과로 전적을 살펴보았을 때 우루과이, 프랑스, 벨기에, 브라질 간의 대결은 각 대결이 결승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팀들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두번째 그룹의 경우는 전력이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약팀들이 모여 있는 두번째 그룹의 영국, 스웨덴, 러시아, 크로아티아 중에서도 무조건 한 팀이 결승전에 진출하도록 대진이 짜여진 것이다.

영국과 벨기에는 예선에서 2승을 거두었고, 마지막 경기에서는 지면 두번째 그룹으로 배정받는 것을 알았지만 공식적으로 지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영국은 해리 케인을 빼고 경기한 결과 벨기에에 0대1로 져서 약팀들의 조로 배정되었다. 두번째 그룹에서 그래도 상대적 강팀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팀에게는 최상의 대진운이라고 할 수 있다.

‘운칠기삼’이라는 단어가 있다. 운이 인간의 노력에 앞선다는 얘기다. 이변이 속출하는 월드컵축구야말로 운칠기삼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합하게 적용되지 않나 싶다.

어떤 사람이 운전해서 기차역에 가다가 도로위에 있던 못이 박혀 타이어 펑크가 났다. 타이어를 수리해서 가느라고 다음 기차를 타게 되었는데 옆자리에 아름다운 여인이 앉게 되고, 그 여인과 사랑을 하게 되었고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나라면 나는 길거리의 못이 없었으면 태어나지도 못 했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나는 운칠기삼이란 표현이 오히려 운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도 생각든다.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의 대진운은 최악이었다. 대한민국은 최선을 다해서 싸웠고, 대진운뿐 아니라 경기운도 좋지 않아서 억울한 실점을 여럿 당하는 바람에 스웨덴과 멕시코에게 분패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마지막 경기에서 용맹하게 최선을 다해 싸워 전 대회 우승팀이자 세계랭킹 1위 전차군단 독일을 2대0으로 격파했다. 물론 멕시코가 스웨덴에 0대3으로 참패하는 바람에 아쉽게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만약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했다면 브라질과 맞붙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먼저 대진표가 주어지고,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의 노력이 경주되는 것이다. 대진운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좋은 대진운에서도 나쁜 대진운에서도 이변은 항상 일어난다. 주사위를 6번 던져서 모든 숫자가 동등하게 한 번씩 나온다면 오히려 이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000번을 던지면 모든 숫자가 거의 동등하게 나온다. 여러 번 축구경기를 하는 리그 경기에서는 결국 실력 있는 팀이 우승한다. 하지만 단판승부에서는 다르다. 토너먼트에서 단판으로 승부를 가리는 FA컵에서는 항상 이변이 나온다. 짧은 시간에 승부를 가리는 월드컵서도 이변은 속출한다. 하지만 이변은 어느 경기에서도 보기 힘든 축구의 매력이다.

축구는 실력만이 변수가 아니다. 축구경기에서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 졌다고 모든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고, 요행으로 이겼다고 우쭐할 것도 없다. 진인사대천명, 사람의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기든 지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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