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장마전야’ 홍사성 “나이 든 아내와 과년한 딸애가 생각났다”
장마 전야
자정 넘은 헐렁한 시간
구파발행 버스 노약자석은 텅 비어 있었다
네온사인이 빠르게 지나가고
빗줄기는 차창 밖으로 빗금을 그었다
승객 몇은 졸고
청춘 한 쌍은 바퀴벌레처럼 붙어 있었다
민망해서 돌린 눈길
광고 헤드라인이 화살처럼 꽂혀 왔다
“혈관 질환, 당신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술 한잔 마신 덕에
천하가 돈짝만 해 보이던 기분이
찬물에 담근 거시기마냥 오그라들었다
내리자면 몇 정거장 더 남았는데
덥고 습한 공기는 막무가내로 달라붙었다
벌써 장마가 드는 것 같은데
지붕 방수를 안 한 것이 걱정이었다
나이 든 아내와 과년한 딸애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