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몸서리쳤다 “또다시 ‘중화의 변두리’로 추락하는가?”

[아시아엔=허용범 국회도서관장, 전 <조선일보> 기자]?”급체에 걸려도 이 정도로 답답하지는 않을 듯하다. 나는 2만원짜리 황포강 유람선을 타고, 상하이 푸동지구의 마천루들을 목을 꺾듯이 젖혀 쳐다본다. 한편으로는 배가 아프고, 한편으로는 걱정과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황포강을 떠나며’)

6월 중순 5박6일간의 모처럼의 중국방문은, 소화하기 어려운 기름진 중국요리들을 갑자기 뱃속에 쑤셔 넣듯이, 이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들을 실제로 갑자기 너무 많이 경험한 탓인지, 내내 불편한 급체를 일으켰다.

허용범 국회도서관장(왼쪽)이 중국 상하이도서관 첸차오 관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내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중국이 언제 이런 나라가 되었나. 어딜 가나 숲을 이루는 저 엄청난 빌딩들과, 사소한 일상의 거의 모든 게 인터넷과 IT기술로 움직이는 이 시스템들은 도대체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

지금 세계에 이처럼 IT기술이 일상생활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나라가 중국 말고 또 있던가? 10여년 전, 지저분하던 길거리와 시끄럽던 식당들, 악취에 찌든 화장실과 내의빨래를 걸어놓던 뒷골목은 어디로 갔나.

중국은 더 이상 소문을 통해서나 듣던 숲속의 거인이 아닌 게 분명하다. 눈앞에 뚜렷이 서있는 거대한 두려움임을 나는 가는 곳마다 느낄 수 있었다.

규모에서부터 압도하는 중국 국가도서관에 이어 상해도서관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국가도서관임을 자부하는 국회도서관 관장의 눈에는, 그 규모보다 놀라운 것은,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해 최첨단 IT기술이 구현되고 있는 온갖 시스템과, 스타벅스가 1층 로비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개방적이며 현대적인 내부의 모습이었다.

인구 2400만의 상하이시 전체 공공도서관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연결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말이 안될 만큼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있었다.

3000만권이 넘는 상하이 시내 모든 공공도서관의 책을 언제 어디서나 보고 반납할 수 있다고 한다. 수천개가 넘는 도서관 열람석에 빼곡히 앉아 책에 코 박고 있는 젊은이들 또한 전시용이 아님은 분명했다.

도대체 중국은 어떻게 도서관에 이처럼 막대한 투자와 집중을 하게 되었을까? “부러우면 진다”는데, 벌써 이런 시스템만으로도 부러움을 느끼는 나에게, 나보다도 몇 살이나 젊은 상하이도서관 관장은 푸동지구에 공사중인 독일인 설계의 최첨단 거대도서관에 대해 “현실과 가상이 융합된 도서관이 될 것”이라고 침을 튀겼다.

상해에서 만난 최고위급 한국인사는 이렇게 단언했다. “우리는 이미 중국에 한참 뒤졌다. 돈, 사람, 기술, 그 어느 것에서 우리가 이기는 게 있는가?”

돈, 사람, 기술뿐 아니라, 국가적 야망과 활력에서도 우리는 뒤지는 게 아닌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만명이나 되던 상하이의 한국교민들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수많은 사업가들이 한국으로 철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사드사태의 여파인가? 한국과 일본을 유난히 차별하는 중국의 반칙경제 작용이기도 하겠지만, 내 눈에는 근본적으로 경쟁력에서 뒤지는 측면이 크지 않을까 싶다.

아시아 최대의 가전제품전시회인 ‘CES-Asia’가 마침 상해에서 열리고 있어 찾아갔더니, 몇 시간을 걸어 다녀야 하는 수천 개의 전시부스는 중국청년들로 넘쳐났다.

상상을 뛰어넘는 온갖 인공지능기술들이 끝 모르게 이어졌고, 각 부스마다 중국의 젊은 창업자들이 관람객들의 눈과 발을 붙잡았다.

어렵게 찾아간 한국부스는 한 구석에 초라하게 매달려있었다. 눈에 띄는 기술과 제품이 없으니 찾는 사람도 별로 없고, 아무리 중국에서 하는 전시회라고 하더라도 민망할 지경이다.

“한국의 대학교육은 취업을 가르치고, 중국의 대학은 창업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로 스타트업 창업에 나서는 중국의 수많은 젊은이들과, 공무원 되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고 고시공부로 청춘을 보내는 한국의 대학생들.

그것도 절대인구에서 비교조차 안 되는 나라끼리 어떻게 경쟁이 될 것인지.

밤이 되자 황포강은 1백층이 넘는 상하이타워를 비롯해 수많은 초고층빌딩들이 외벽 전면에 네온사인 불빛을 뿜어낸다. ‘이곳이 중국이 맞는가’라는 의문이 절로 나온다.
형형색색의 인종들이 모두 카메라를 손에 들고 고층빌딩의 위용에 감탄을 연발한다.

지금 중국은 수천년 역사에서 최고의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다. 좋든 싫든 ‘시황제’가 이끄는 국가권력은 절대적이며, “무엇이든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굴기의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 사람들 속에서도 그런 야심과 자부심은 역력히 느껴졌다.

나는 중국에 있는 동안 중국 속에서 ‘한국’을 보지 못했고, 중국 사람들은 더 이상 ‘한국’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수천년 역사에서 겨우 20~30년 앞서갔던 우리는 지금 중국에게 무엇이고,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또다시 ‘중화의 변두리 국가’로 전락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던 ‘사대와 굴종’의 그 길고 답답했던 역사를 되풀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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