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원교수의 재밌는 월드컵③] 상전벽해···1954년 스위스서 2018년 러시아까지


양지팀에서 붉은악마까지

1970년 멕시코월드컵은 그렇게 페널티킥 실패와 함께 우리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 당시 한국은 북한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다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온 상태로, 이제 막 도약을 위한 성장동력을 얻었을 때였다. 아직 한국은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 경제수준이 떨어졌었다. 1974년의 아시안게임을 한국이 유치했으나 경기장도 없는 나라에서 아시안게임을 수행할 수는 없었다. 한국이 눈물을 머금고 반납하는 바람에 태국의 방콕에서 1970년에 이어 1974년 연속 2번 아시안게임이 열린 적도 있었다.

60년대 후반 국가대표 축구팀의 이름은 양지였다. 국가를 대표하는 축구팀을 후원하는 기관이 바로 중앙정보부(현재의 국정원)이었는데, 항상 음지에서 일하는 중앙정보부가 앞으로는 양지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양지라는 이름을 국가를 대표하는 축구팀에 붙여준 것이다. 양지라는 이름이 지속되었다면 대한민국의 축구 응원단이 ‘붉은악마’라는 이름을 절대로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예선전이 끝나고 국가대표팀 이름은 청룡과 백호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된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첫 출전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 처음 참가한 이후 1986년 멕시코에서 2번째 월드컵이 열릴 때까지 계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고, 올림픽마저 말레이시아에 막혀서 출전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대한민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열리는 축구대회에 주로 참가하였다. 말레이시아의 메르데카컵과 태국에서 열리는 킹스컵에 대표팀이 출전하면 전 경기를 라디오로 중계해주었고 가끔 우승도 하면 카퍼레이드까지 했었다. 그 당시 아시아의 최강팀은 버마(지금의 미얀마)였는데, 버마와의 메르데카컵 결승을 밤늦게 라디오로 들었던 기억이 오히려 새롭다.

1950년대 우리가 매우 강한 팀이었다면 일본은 1960년대부터는 우리보다 강팀이었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일본은 주최국 멕시코를 이기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 후 일본은 아시아를 바라보지 않았고 동남아시아에서 열리는 축구대회에 전혀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간혹 한일전이 열릴 때 우리는 용맹하게 싸웠고 일본에게 진 기억은 거의 없다. 1969년 서울에서의 멕시코월드컵 예선전에서도 우리는 일본에게는 2:0 승리를 거두었으나 호주의 벽을 넘지 못하고 멕시코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최빈국 대한민국 양복점서 유니폼 빌려입고 출전

1954년 스위스월드컵 예선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인들이 한국에 절대로 올 수 없다고 해서 홈앤어웨이가 아니라 일본에서 2번의 경기를 했는데, 한번은 2:2 무승부였고, 또 한 번은 일본팀을 5:1로 대파해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된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지 1년이 채 안된 당시 세계 최빈국이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팀은 단복도 양복점에서 빌려 입고, 비행기 편이 없어서 영국부부가 딱한 사연을 듣고 티켓을 양보함으로써 천신만고 끝에 대회 전날 간신히 1진 11명만이 스위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표팀은 시차적응도 없이 짐도 못 풀고 유니폼만 갈아입고 경기에 출전해야 했다. 그럼에도 당시 세계 최강 헝가리에 처음 15분간은 오히려 대등하게 싸웠으며 골키퍼와 맞서는 찬스까지 만들었으나 결국 9:0으로 대패했음을 지난번 글에서 얘기한 바 있다.

비록 졌지만 사자와 같은 용맹으로 싸웠다는 칭찬을 헝가리 감독으로부터 받기도 했다. 2차전은 부상선수 대신 뒤늦게 비행기 티켓을 구해 도착한 2진 선수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었고 터키에마저 7:0으로 대패했다.

줄리메  FIFA회장의 배려와 선견지명

아시아 팀의 수준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팀을 월드컵에서 배제하자는 얘기도 나왔으나 당시 줄리메 FIFA회장은 “지금은 한국과 같은 나라가 처참하게 무너졌다 해도 수십년 후에는 전혀 모를 일이다”라며 반박하며 지구촌의 모든 대륙 국가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시켰다. 1958년 스웨덴월드컵은 영어를 모르는 축구협회 직원의 서랍에서 월드컵 신청서가 잠자고 있었던 바람에 대한민국은 예선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웃음 보다는 가슴이 아리는 슬픔이 앞서는 에피소드다.

상전벽해가 일어난 지금 돌아다보면 시대를 초월하는 줄리메 회장의 혜안에 감사할 일이다.

1986년 월드컵이 멕시코에서 2번째 열리게 되는데, 출전 팀이 16팀에서 24팀으로 확대되는 바람에 대한민국도 월드컵에 1954년에 이어 다시 입성하게 된다. 그 후 참가팀이 32개팀으로 확대되면서 대한민국은 이번 러시아월드컵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본선에 참여하게 되었다.

2002년 서울에서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이겨 4강까지 진출하면서 월드컵 출전과 올림픽 출전 쯤은 이제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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