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공무원의 절규 “대한민국에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정은영·김석현 공저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김혜린 인턴]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가 있으면 주말에 영화관을 찾고 친구들과 저녁식사 후 연극을 보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현대인의 모습이다. 이처럼 과거 특정계층들만 즐기던 문화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즐기며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문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로부터 때론 ‘은근히’ 때론 ‘노골적으로’ 통제받고 있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말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표면에 드러난 이후 사람들은 분노했다. 헌법 제22조 1항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에서 나타나듯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예술과 문화를 자유롭게 누리고 생산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시간은 흘러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다시 자연스럽게 문화를 즐기며 소비하고 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그냥 덮고 넘어가면 되는 일일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 근무하던 김석현·정은영은 우리나라가 문화국가가 되기 위해 나아가야 할 일들이 아직 많다고 말한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비서관으로 근무한 김석현과 문화체육관광부 본무 근무를 거쳐 현재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일하는 정은영은 내부자의 시선으로 <블랙리스트가 있었다>(위즈덤하우스)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알리고 있다.

저자들은 당시 상황을 단순히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직자로서 느낀 솔직한 회의감과 죄책감, 공직사회의 일그러진 모습과 안타까운 공무원들의 습성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고 있다.

저자들은 독자들에게 ‘상부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던’ 문체부 직원들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들의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했다”에서 “분명 정치적이거나 특혜성 결정인지 알면서도, ‘국회에서 결정된 거야. 행정부 공무원은 절차만 지키면 되는 거야’라며 스스로 합리화해 수행했던 일들도 분명 있었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선 안타깝고도 참담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사실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는 블랙리스트를 폭로하고 자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문화정책에 대한 ‘탁월한 시선’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들은 국민 권리로서의 ‘문화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는 문화의 보호와 반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한다. 그러나 문화적 창조는 국가적 강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화강대국’을 꿈꾼 백범 선생은 그런 면에서 롤모델이 되고 있다. 백범이 꿈꾼 문화국가는 저자들이 문체부에 근무하며 오랜 기간 품어온 국민의 행복과 창의성 개발, 인간다운 삶을 위한 ‘문화복지’와 ‘예술인 복지’의 실현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후반부는 남북 문화교류에 대해서도 기본적이고 구체적인 안을 제시한다.

“최대한 서로의 체제와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북한사람들을 계몽하겠다는 태도를 버리고 개방주의적이고 세계화된 마인드를 보여야 한다.···(중략) 2004년 <황진이>를 쓴 북한작가 벽초 홍명희의 손자인 홍석준이 처음으로 남한의 문학상인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금강산 목란관에서 열려 홍석준이 직접 수상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앞으로도 북한작가가 남한의 문학상을 수상하고, 남과 북 작가들이 1년에 한번 남북 작가대회를 꾸준히 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형성됐으면 한다.”(272~273쪽)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27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5월 26일 또다시 만나 가슴을 툭 터놓게 대화하는 마당에 못 할 것도 없다.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는 아픈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튼실히 다지고, 미래를 원대하게 준비하고자 하는 저자들의 오랜 꿈이자 구체적 실천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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