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회장 별세, 2000년 ‘LG인상’ 수상자 옛 추억 되살리다
구소련 강제억류 피해자였던 선친을 찾아나선 ‘아버지 흔적찾기’ 체험수기를 <아시아엔>에 연재중인 문용식(59)씨가 LG 구본무 회장의 부음 소식을 접하고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문용식씨의 글이 구본무 회장이 총수로 이끌던 LG그룹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해 <아시아엔>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편집자>
[아시아엔=문용식 <아시아엔> 기고가] 제가 지난 날 LG전자에서 재직하던 2000년 1월초 여의도 그룹빌딩 시무식에서 ‘LG인상 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상을 받고 저는 과장에서 차장으로 발탁 승진이 되었습니다. 당시 시무식은 LG그룹내 전자(CU, culture unit 사업문화 단위) 계열사 시무식이었고, 각 계열사에서 선발된 수상자들은 부부동반으로 참석하라는 사전 안내가 있었지요.
시무식 종료 후 별도로 식사계획도 있었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모처럼 호텔이나 좋은 식당에 가서 특별한 식사를 할 거란 기대로 신났습니다. 처가 식구들과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며 시무식에서 꽃다발도 받았습니다.
시무식이 종료되고 20여명의 수상자들은 대기 중인 버스에 타고 여의도에서 서울 한복판 시내로 이동했습니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호텔로 가나 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 다르게 정릉의 산 중턱까지 이동한 버스는 2층 양옥집 앞에 멈췄고, 그때 바로 철문이 열렸습니다. 집 밖에서 보니 식당도 아니고 사무 공간도 아닌 그냥 수수한 개인 집이었습니다.
LG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께서 생전에 사셨던 집이었습니다. 2층은 연회장으로 꾸며 있었고 구자홍 그룹부회장 (전 LS그룹회장), 구본준 LG LCD 사장 등 그룹 경영층이 미리 와 계셨습니다. 식사로는 단촐하게 칼국수가 나왔습니다. 오늘 구본무 회장님 별세 소식을 들으니 LG그룹의 구씨 본산에 가서 칼국수 먹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집 사람은 기대가 무너진 탓인지 칼국수 먹고 온 얘기를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LG 구씨들 굉장히 검소한 집안이어서 좋았습니다.
당시 구본무 회장은 참석하지 않았고 시무식도 전자 CU 소관 시무식이라 전자 계열사의 부장급 이상 관리자와 임원들이 참석했습니다. 물론 구자홍 LG전자 사장 겸 그룹 전자CU 부회장과 각사 사장들이 참석했습니다.
저는 LG전자의 전 사명인 금성사에 83년 9월 공채로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경북 구미시 변두리 산 허리에 낙동강이 굽이치며 전망 좋고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대통령 별장을 회사가 매입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회사 연수원을 개원했습니다.
그곳에서 연수원 1기로 교육을 마치고 일선부서로 발령이 나 줄곧 한 사업부에서 근무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의 그룹 회장을 뵙는다는 것은 대통령 뵙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면 아예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다니던 회사에서 근무하는 동안에 사장님 얼굴 한번 못 보고 퇴직한 직원이 태반인데 그룹 회장님을 직접 뵙거나 만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만큼 LG전자는 조직도 크고 직원도 사업부 단위로 수천, 수만명에 이릅니다.
저도 사업부 단위에 있었기에 시무식때 상을 수상하며 구자홍 대표이사겸 부회장을 처음 뵙게 된 것입니다.
당시에 LG전자나 다른 계열사에는 구씨, 허씨 오너 일가의 2세들이 경영일선에 대표이사로 많이 계셨고 3세들은 각사의 헤드 부서(경영기획, 재무)에서 경영수업을 받거나 주요 사업부에서 사업부장이나 임원으로 재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관리자가 되면서 회의에서 오너 2세나 3세들을 만나 보고하는 일정이 더러 있었고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LG 구씨와 GS 허씨가 회사를 나누어 아름다운 이별을 하기 전 구씨, 허씨 2세, 3세들은 한 회사에 같이 근무 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두 오너 일가에 소속된 분들은 음식 남기는 것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2세, 3세들은 어려서부터 철저히 낭비를 금기시하는 훈련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99년 소속 사업부 조직 업적평가에서 최고 성적을 내며 최우수상을 받았고, 그러한 공적이 전자CU로 상신되어 심사를 통해 2000년 시무식 때 ‘LG인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던 겁니다.
오래 전 일인데 구본무 회장 별세 소식을 접하고 새삼 그때의 일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삼가 구본무 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