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버라이어티 답습하는 TV예능의 한계
[아시아엔=오대현 코미디 헤이븐 대표] 최근 들어 적어도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 코미디의 메카가 티비에서 인터넷으로 옮겨졌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아프리카TV나 유투브를 통해서 1인 방송을 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이들은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그 중 일부는 연예활동을 하고 있는 방송인들 못지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고, 심지어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방송인들이 인터넷 방송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검열 받지 않는 인터넷의 ‘드립’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들의 시선엔 제작진이 걸러낸 TV 코미디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한 프로 중 일부는 나아가서는 ‘노잼’이라는 판정을 받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며, 여전히 다수의 시청자들이 재미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시작된 버라이어티쇼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점은 다소 퇴보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2018년 현재 예능 ‘트렌드’는 ‘리얼 버라이어티’다. 사실 필자는 트렌드라는 표현이 요즘의 예능프로그램들이 1990년대에서부터 파생된 버라이어티쇼의 틀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종영하고 또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생기고 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공식은 매번 같다. ‘생소한 환경’에 방송인들을 다수 포진시켜놓고 이들의 ‘감’에 의존해서 재미를 찾는 것이다. 제작진에 의해 ‘세팅된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의도치 않은 상황’이나 방송인들의 애드립이 웃음의 주를 이룬다. 하지만 제작진도 순전히 이런 요소들만으로 웃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특정 매개체를 더해 웃음을 유발하곤 한다.
예컨대 이미 야외촬영으로 확보한 분량을 방송인들이 ‘스튜디오’에서 같이 보면서 그들의 생각을 말하거나 ‘드립’을 치는 식이다. 이 같은 방송들은 주어진 상황에 대해 시청자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유도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일종의 프레임을 만들어서 시청자가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패턴이나 방향성을 정해주는 것이다.
1990년대에서부터 진행되어 온 형식 그대로다. 많은 이들은 간과할 수 있는 요소도 있는데 바로 방송에서 쓰이는 자막이다. 자막 또한 시청자들에게 특정 시선으로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일 것을 종용하거나, 유머가 결여된 상황을 ‘살려주는’ 메커니즘이 된다. 현재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장치들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며, 순전히 소재 자체로 웃음거리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 TV 예능은 과거의 틀에 묶여서 새로운 시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단순히 다른 ‘컨셉’의 프로그램들을 만듦으로써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할 생각은 애당초 전혀 없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제작비를 투입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기에 투자의 개념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데, 안정성을 추구하기 위해선 과거 예능 프로그램들이 성공했던 요소들을 집합시켜 맥을 이어나가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때문에 TV 예능 프로그램에선 혁신적이거나 예술적 미학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대중성을 기반으로 하는 매체 TV에 한 차원 진일보한 모습이나 예술을 바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둘이 가미될 때 만이 대중도 전과 다른 흥미를 가질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TV 예능은 이러한 부분에 있어 매우 취약하다. 그렇다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2018년 현재,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달고 살며 시사,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의 거의 모든 정보와 다양한 견해를 별다른 제약 없이 접하고 있다. 달라진 세상에선 이전과 같은 도피성 코미디가 대중의 가려운 곳을 완벽하게 긁어줄 수는 없다.
매주, 심지어 매일, 화제가 되는 이슈 또는 사건 사고가 벌어지고 있다. 몇 십 년 전과는 달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대중이 매일의 이슈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마당에 이러한 일들을 다루기보단 단순히 방송인들이 히히덕거리며 복불복 게임을 하거나 이름표 떼기 놀이를 하는 것을 다루는 도피성 코미디는 순간순간 흥미롭게 다가올 수는 있겠지만 대중의 갈증을 완벽히 해소해 주기는 어렵다.
*코미디 헤이븐 대표 오대현, 작가의 다른글들은 blog.naver.com/comedyhaven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