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쟁이’ 박화수 작가 ① “아티스트란 단어 여전히 부담, 그림쟁이라 불리길 바랄 뿐”
[아시아엔=이주형] 박화수 작가는 먼 길을 돌아오고 나서야 빛을 본 늦깎이 화가입니다. 스스로를 ‘그림쟁이’라 인정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행복한 그림을 그리자는 마음만은 늘 간직해 왔습니다. 박화수 작가와의 인터뷰를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박화수 작가님. 어떤 계기로 그림에 빠져들게 되셨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신문에서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사진을 보고 그려서 학교에 간 적이 있어요. 선생님께서 “이 그림 정말 네가 그렸니?”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렇다고 대답하니 선생님께서 “이 다음에 커서 꼭 화가가 돼라”고 하셨어요. 화가란 직업이 뭔지 모를 정도로 어렸었는데 그때 그 말씀이 제 미래에 큰 영향을 줬죠.
사실 중간 중간에 다른 길로 빠질 뻔한 적도 있었어요. 지금 키가 초등학교 6학년 때랑 비슷할 정도로 어린 시절 꽤 큰 편이었어요. 언젠가는 체육선생님께서 저보고 농구하라고 권유하면서 어머님을 모셔와 함께 상의해보자고 하셨죠. 그런데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어머님, 화수 농구 시키지 마세요. 그리는 재능 있으니 꼭 그림 그리게 시키세요”라고 만류하신 덕분에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죠. 중학생 때부터 그림으로 상을 타기 시작하니까 자신감이 생겼죠. 고등학생 때는 전국대회에 입상해 세종문화회관에 제 작품이 걸리기도 했고요.
그리고 나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데 거기서도 문제가 생겼죠. 당시만 해도 회화를 전공하면 취업이 상대적으로 어려웠어요. 졸업 후의 진로를 고려하자니 회화는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래서 동덕여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게 됐죠. 대학 시절 구동조 교수님께 배웠는데 “우리나라엔 여류디자이너가 거의 없지만 너라면 할 수 있다”고 말씀 해주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참 감사하더라고요. 시각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진 아니지만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은사님이세요. 작가로서 좀 더 입지를 다지면 꼭 한번 찾아 뵈어 “선생님, 저 여기까지 왔어요”하고 인사 드리고 싶고요.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취업은 생각처럼 잘 풀리진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지인 분이 일하시던 출판사에서 디자이너를 구하니 한번 응시해보라고 하셔서 시험을 보러 갔어요. 시험장에 가니 두꺼운 도화지를 주면서 ‘당신이 원하는 책을 디자인해보라’고 하는데 대학교 다니면서 표지 정도만 만들어봤지 책 내지를 만들어보진 않았거든요. 그래도 임기응변으로 시험을 잘 마치고 제출했는데 합격했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공교롭게도 그 날 다른 곳에서도 연락을 받았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인사동의 한 미술관에서 “큐레이터 해볼 생각 없냐”고 연락이 온 거죠. 1984년도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무역박람회 때 교수님 따라서 현대관을 준비하다 알게 된 분이 소개해 주셨죠. 많이 고민됐지만 책 표지만 그리는 것도 아닐뿐더러 한번도 해보지 못한 일이니 미술관 가서 많이 배우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진로를 결정하게 됐죠.
대학 전공과 졸업 후의 진로는 다소 의외네요.
회화를 전공하진 않았지만 대학 진학 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사실 대학교 다닐 때 당당하게 행동하고 튀는 옷을 즐겨 입는 학생이었어요.(웃음) 그런데 외모로 인한 편견이 너무 싫었어요. 실력으로 편견을 깨부수자 마음 먹었고 또 결과로 이를 증명했어요. 교수님들로부터 칭찬도 많이 들었고요. 제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을 결과물로 만드는 건 자신 있었거든요.
정말 생소했던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해 책 표지도 만들어 봤고요. KBS에 성적표 들고 가서 “나 이런 학생이다. 새로운 걸 시도해서 책 표지 만들려고 하는데 관련 부서 좀 소개해 달라”고 부탁해 예술부 파트의 도움을 얻고 컴퓨터그래픽으로 작업도 했죠. 저를 가르치셨던 강우현 교수님이 보고 깜짝 놀라시더니 “이런 거 어디서 어떻게 했냐” 물으실 정도였죠. 그래서 그 책 제목을 ‘사이언스’(Science)라고 짓기도 했어요. 대학시절부터 회화, 일러스트, 렌더링 등 가리지 않고 여러 공부를 한 게 나중에 큰 도움이 됐죠.
진로를 선택할 때도 편집디자인보다 그래도 큐레이터가 낫겠다고 생각해 갔지만 아쉬움이 많았어요. 다른 사람의 그림을 걸고 내리는데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내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자꾸 떠오르더라고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화가를 꿈꿔왔던 저였는데 말이죠. 그때 다시금 다짐했죠. ‘언젠가 내 그림 거는 날이 올 거야. 할 수 있어’라고요. 그리고 입사한 지 8개월 만에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 두게 됐죠.
공백을 극복하고 화가로 서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요?
당시만 해도 순수미술과 디자인은 영역이 달랐어요. 대학생 때 일러스트를 배우긴 했는데 사람들이 회화로 쳐주지 않았죠. 나중에 다시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데 알고 보니까 그 경계가 사라져 있더라고요. 정말 놀랐죠. ‘전공으로 일러스트를 배웠고, 또 잘 했으니 시각디자인에서 배운걸 접목시키면 승산이 있겠구나’ 깨달았죠. 전공을 살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수채화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혹시라도 감을 잃을까 봐서요. 기초부터 탄탄히 다지고 싶기도 했고요. 제 장점을 살리려면 기본기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식 작가로 활동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수채화나 유화 등 기본기를 다지는데 7년이 걸렸어요. 물론 그때도 사람들이 저를 작가라 불러줬고 작품을 내놓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그 기간은 연습의 과정이었어요. 사실 전 생계형 작가라 팔릴만한 작품을 그려야 했어요. 7년의 기간 동안 그 부분을 연구하기도 했고요. 저 스스로 ‘난 이제 작가야’라고 느낀 지는 만 5년 정도 됐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티스트란 단어가 여전히 부담스러워요. 대신 그림쟁이라 불리고 또 그렇게 되길 바랄 뿐이죠.(계속)
이모님 좋은 인터뷰 보고갑니다 ^^
멋있는 분이예요.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꿈을가슴 속에 묻어놓고 터뜨리지 않고 참았을까 싶죠~ 물론 그렇게 묵히고 삭힌 곰삭은 푸근함과 따뜻함이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건 그 때문이겠지만요~ ^^ 앞으로도 오랫동안 행복을 뿜어내는 작품활동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