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쟁이’ 박화수 작가 ② “행복한 나의 그림이 행복 전한다 믿어요”
[아시아엔=이주형] 박화수 작가는 먼 길을 돌아오고 나서야 빛을 본 늦깎이 화가입니다. 스스로를 ‘그림쟁이’라 인정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행복한 그림을 그리자는 마음만은 늘 간직해 왔습니다. 박화수 작가와의 인터뷰를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대화하거나 사물을 보면서 ‘저걸 이렇게 표현해 보면 재밌겠네’하고 떠오르는 순간 작업이 시작돼요. 집에 가면 그때 떠올린 것들을 따로 스케치하는 대신 일단 캔버스로 옮겨요. 제 생각대로 잘 흘러간다 싶으면 작업을 계속하고, ‘이건 아니다 싶으면’ 작업을 중단하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폐기할 때도 있었고요. 구상한 것은 많지만 실제 결과물로 남아있는 것은 그리 많진 않아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작업시간은 제 각기 다른 편이예요. 어떤 건 하루 15~16시간 만에 끝나기도 하고 어떤 건 몇 개월도 더 걸려요. 작업시간은 작품의 크기와는 또다른 얘기예요. 크기가 아니라 어떤 작품이냐에 따라 작업시간도 달라지죠.
특별한 징크스가 있으신가요?
한번 망친 거는 도저히 다시 살리지 못해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좋다 그래도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살릴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이 또한 작업의 한 과정이라 생각해요.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다음의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작업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으시나요?
스트레스 전혀 안 받아요.(웃음) 제겐 작업이 천국이에요. 개인적인 얘기지만 부를 누리고 살 때는 작업하다가도 ‘먹고 살만한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며 포기하기도 했었어요.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작업에 몰두하게 됐죠. 심리, 경제 두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요.
그림 그리는 시간 이외에는 너무 불행했어요. 현실도 그렇고 모든 게 불안했죠. 그런데 작업대에만 앉으면 생각이 맑고 깨끗해 지는 제 자신을 발견했죠. 작업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정말 중요한 연락 아니면 받지 않을 때도 있어요. 가장 소중한 시간을 온전히 보내고 싶으니까요. 간혹 ‘뭘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 좀 달리 생각해요. 남의 일을 하든 아니면 자기 일을 하든 정말 열심히 하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물을 얻긴 힘들거든요. 적어도 제 자신과는 적당한 타협을 하고 싶진 않아요.
작가님만의 철학이 확고하신 것 같은데 하고 싶은 것과 실제로 내놓아야 하는 결과물 사이의 괴리는 없었나요?
미술관에 일할 당시 유명한 작품을 여럿 봤어요. 그 중엔 다소 어둡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있었죠. 그래서 ‘이 다음에 그림을 그린다면 걸어놓은 것 만으로도 공간을 환하게 만들 수 있는 예쁘고 행복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러한 부분들이 저와는 잘 맞아 떨어지는 편이예요.
꽃, 붓, 나비가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소재들이네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오늘도 꽃이 새겨진 스카프를 착용하고 나오셨네요.(웃음)
스카프는 그림 그리기 전에 샀던 건데.(웃음) 제가 주로 그리는 꽃은 구절초예요. 들꽃작가가 되길 바랐고. 구절초는 그 들꽃 중 하나예요. 여기엔 사연이 있죠. 중국 심천의 한 백화점에 네일 살롱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러 갔는데 공항에서 내리려니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별안간 슬픔이 몰려와서요. 그리고 나서 엄마 생각도 나더라고요. ‘그 옛날 제게 미술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고 나서 어느 날 지나가다 길에 피어있는 구절초 몇 송이를 봤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작품에 그려 넣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구절초의 의미가 ‘엄마의 사랑’이더라고요. 그 후부터 구절초는 제 작품의 주 소재가 됐죠.
붓은 ‘작가인 저 자신’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오랜 세월 붓을 놓고 있다가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든 게 붓이었어요. 일종의 해방구였거든요. 붓이 없었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나비는 사실 작품에 넣은 지 얼마 안됐어요. 한 2년 정도. 솔직히 말씀 드리면 보통의 수집가분들은 작품을 구매할 때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시더라고요. 예를 들어 작가 초기 때 부귀영화와 권세, 행복한 결혼 등을 의미하는 모란을 자주 그렸는데, 작품이 잘 팔리더라고요. 나비도 자손의 번창이란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나비를 넣어 그려보니 재미있기도 하고요. 전 제가 재미 없는 건 안 하는 주의라서요. 아니 못하겠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네요.(웃음)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해피니스’(Happiness)를 전하고 싶어요. 제 그림들은 행복이란 대주제를 간직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한 때는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림을 그리며 극복할 수 있었어요. 행복한 내가 그린 행복한 그림이 다른 사람한테도 행복을 전해줄 수 있다고 저는 믿어요. 제 그림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길 바라고 있어요.
4월 초 서울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들었어요.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신가요?
4월 1일부터 6일까지 서울에서 개인초대전을 열어요. 작품 25점 정도 전시할 계획입니다. 이번 개인전에는 구상화와 비구상화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려고요. 전시장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한 사람 작품 맞아?’라고 물으실 정도로요. 그 중엔 계집 녀(女) 아들 자(子) 물고기 잡을 어(漁)를 형상화 한 작품도 포함될 예정이고요. ‘어’ 자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대학 다닐 때 한문 초서체 사전 뒤져가며 만든 작품이에요. 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해야 풀리는 성격이라.(웃음) 그걸 다시 손봐서 이번 전시에 올리는 셈이죠.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전시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제 작품을 보고 행복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국내뿐 아니라 이탈리아, 홍콩, 대만, 미국, 프랑스 등 해외에서도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지셨어요. 또한 6월엔 스위스 전시회에 출품할 계획도 있으시고요. 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2016년 이탈리아의 화보 Studio Byblos를 통해 소개된 것이 그 계기였어요. 기계를 다루는데 익숙하지 않은데 후배가 페이스북을 설치해 준 적이 있어요. 신기해서 작품을 몇 점 올렸는데 이탈리아에서 그걸 보고 연락해 왔죠. 딸한테 보여주니 작품을 응모해보라는 메시지였어요. 그런데 절차가 너무 복잡해 관두자 하다 등록기간도 지나가 버렸죠. 그 후에 미국에 유학을 다녀 온 친구한테 그 일을 얘기했더니 자기가 도와줄 테니 한번 해보자 그러더라고요. 다행히 그 쪽에서도 받아주겠다고 했고요. 서류를 준비하고 우편으로 보내려고 하니 비용이 10만원이 넘어가더라고요. 이런 적이 처음이라 ‘이거 사기 아냐?’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죠.(웃음) 수소문해보니 한국에서도 참여한 작가님이 계시더라고요. 따로 연락 드려서 “이거 괜찮은 것 맞냐?”고 여쭤보니 “어차피 사기 당해봐야 10만원 돈 날리는 거 말고 더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준비해 우편을 보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아마존닷컴에서 판매되고 세계 유명박물관에도 비치되는 꽤 유명한 책자였어요. 책을 받고 딱 펼쳐보는데 제 작품이 앞쪽에 게재돼 있었죠. ABC 순인가 했는데 좋은 작품 순으로 실린 거였어요. 내심 뿌듯했죠.
중국 광저우의 전시회에 참여했다 제 작품이 방송을 통해 주요하게 소개된 것도 기억에 남아요. 해외 전시에 참여하더라도 작품만 보내고 직접 다녀온 것은 광저우가 유일한 케이스였어요. 현장에 있었지만 방송국에서 촬영하는 지도 몰랐어요. 룸메이트였던 젊은 작가 선생님이 “대박. 선생님 작품 촬영하고 있어요”라고 알려주고 나서야 알았죠.(웃음)
다가올 6월의 스위스 전시는 Rhy Art Fair라고 하는데 역사는 얼마 안 됐지만 괜찮은 전시회라고 들었어요. 한번쯤 다녀오면 좋은데 상황이 허락될 진 모르겠어요. 스위스까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많이 고민되기도 하고요.
해외에서 전시를 시작한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여러 곳에서 불러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저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해외 전시에서 실력으로 승부할 자신이 있고요.
영감을 받은 작품이나 아티스트가 있으신가요?
장르와 소재를 구분 짓지 않고 영감 떠오르는 대로 작업하는 편이예요. 사실 이 부분이 딜레마였어요. 꽃을 주제로 하는 작가가 있는 반면, 과일을 주제로 하는 작가도 있죠. 구상화를 주로 하거나 비구상화를 하는 작가들도 있고요. 각자의 영역이 있는데 전 이것저것 다뤄왔어요. ‘이게 맞는 방향인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머리 속을 떠나질 않았죠.
이런 고민을 알고 있던 한 선생님께서 작고하신 황창배 선생님의 작품을 살펴보라고 추천해 주셨어요. 황창배 선생님은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셨어요. 동양, 서양, 비구상, 구상 등에서도 많은 작품을 남기셨는데, 선생님의 작품을 보며 그동안 고민했던 것에 대한 해답을 찾은 기분이 들었어요. 황창배 선생님의 작품들을 보는 순간 막다른 골목에서 뻥 뚫린 대로변으로 나온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학연, 인맥, 배경에 얽매이지 않고 일어난 그림쟁이 박화수. 그거면 충분해요. 그리고 한가지 소원이 있어요. 작품 활동을 하며 저를 떠나간 사람도 있고, 반대로 제게 다가와준 분들도 계시죠. 마음으로부터 저를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어요. 그런 분들께 “박화수 작가 내 친구야”라고 자랑스럽게 밝힐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