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 TASTES- 스코티쉬 밴드 ‘벨 앤 세바스찬’, 스칸디나비아 품은 ‘얼렌드 오여’

봄이 찾아왔지만 여전히 쌀쌀하다. 겨우내 굳어버린 몸과 마음을 녹여줄 편하고 따뜻한 음악을 하는 두 팀을 소개한다.

대학교 수행과제 만들다 데뷔한 벨 앤 세바스찬
영국은 어느 순간 멋있는 나라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옷, 영화, 패션까지 웬만한 멋있는 것들은 영국에서 주로 나온다. 그런데 영국의 북쪽에 위치해 있는 이웃나라 스코틀랜드도 이에 뒤지지 않는 멋진 것들을 창조하는 나라다.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 트레인 스포팅(Trainspotting)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를 배경으로 제작됐고,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린 브릿팝 밴드 트래비스(Travis)도 이 곳에서 나왔다.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밴드 벨 앤 세바스찬(Belle &Sebastian)이다.

밴드를 만든 장본인 스튜어트 머독(Stuart Murdoch-보컬, 어쿠스틱 기타)은 1990년대 초반 영국의 락밴드 펠트(Felt)를 동경해 밴드를 결성할 꿈을 품고 영국 런던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만의 아이돌을 찾지 못한 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돌아오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1996년 1월, 글래스고의 한 카페에서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의 역사는 시작됐다. 스튜어트 머독(Stuart Murdoch-보컬, 어쿠스틱 기타)이 스튜어트 데이비드(Stuart David-베이스, 아코디언)와 만나 밴드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대학에서 뮤직 비즈니스를 전공했던 이들은 같은 학교의 멤버들을 하나 둘씩 모았고, 이윽고 7명의 멤버가 모인 밴드가 결성됐다.

결성 초기 벨 앤 세바스찬은 대학 전공의 수행과제(!)였던 싱글음원들을 학교 레이블인 일렉트릭 허니(Electric Honey)를 통해 발표했다. 싱글들의 호평에 크게 고무된 이들은 정규앨범을 내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들은 1996년 5월 정규 데뷔앨범 ‘Tiger Milk’를 1,000장 한정, 그것도 LP(바이닐)로만 발매했다. 지금은 전설이 된 이 음반은 400파운드(약 6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벨 앤 세바스찬은 같은 해 2집 ‘If You’re Feeling Sinister’을 내놨는데, 이는 벨 앤 세바스찬의 수많은 앨범 중에서도 명반으로 손꼽힌다. 이들은 데뷔 이후 초기 2년 간 어떠한 공식석상에도 모습을 노출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입소문을 타고 더욱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 발매된 1998년 ‘The Boy with the Arab Strap’과 2003년 ‘Dear Catastrophe Waitress’ 등의 음반도 밴드의 디스코그라피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벨 앤 세바스찬은 브릿팝이 득세하던 그 시절 그레이트 브리튼 섬의 스코틀랜드에서 데뷔했지만, 주류를 따르지 않았다. 또한 자본주의에 영합하지 않은 채 그들만의 길을 걸었다. 주축인 머독이 자신의 밴드를 ‘추한 자
본주의가 낳은 산물’이라 표현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이는 벨 앤 세바스찬을 크게 얼터너티브/인디락((Alternative/Indie Rock)이라 규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좀 더 세밀하게 분류하면 이들의 음악을 어쿠스틱 기타 등에 기반한 포크로 보는 이들도 있고, 클래식의 요소를 락 음악과 결합시킨 챔버팝의 시류로 엮는 이들도 있다. 2015년 작 ‘Girls In Peacetime Want To Dance’에선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유로 댄스-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의 하위 장르-를 시도한 적도 있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기 보단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벨 앤 세바스찬만의 음악관을 구축해 온 셈이다.

그렇다고 벨 앤 세바스찬이 언제나 평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커리어 중간 중간 평단과 팬들의 혹평을 받은 음반들도 분명 존재하고, 세월이 흐를수록 세간의 관심도 줄어들어 ‘한물간 밴드 아니냐’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이 밴드는 가장 최근인 2017년 12월과 2018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EP ‘How to Solve Our Human’을 통해 지금도 따뜻한 음악을 만들고 있음을 입증했다.

안경 낀 너드? 스칸디나비아 품은 얼렌드 오여
최근 몇 년 한국에선 ‘북유럽 감성’이라는 단어가 크게 유행했다. 음악, 패션, 영화, 디자인, 식당, 카페까지 이 단어만 들어가도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여길 정도의 가장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었다. 이번엔 북유럽 감성의 진짜배기를 소개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얼렌드 오여(Erlend Øye)다.

1975년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태어난 얼렌드 오여는 영국의 락밴드 더 스미스(The Smiths)의 음악을 들으며 자라왔다. 고등학교 시절이던 1990년대 초반, 친구들과 함께 ‘노르웨이의 숲’을 뜻하는 밴드 스코그(Skog)를 결성해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이 밴드의 이름 역시 영국의 밴드 더 큐어(The Cure)의 곡 ‘A Forest’에서 영감을 받았다.

성인이 된 오여는 1996년 영국 런던으로 넘어 가 피치퍼즈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도 스코그에서 함께했던 친구 아이릭 글람벡 뵈(Eirik Glambek Boe)와 꾸준히 교류했고, 이는 2인조 어쿠스틱밴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2001년 정규 데뷔앨범 ‘Quiet Is the New Loud’를 발매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는 이 앨범 한 장 만으로 사이먼 & 가펑클(Simon & Garfunkel)과 벨 앤 세바스찬의 계보를 잇는 포크밴드로 자리잡았다. 조용하고 섬세한 포크송을 들고 세상에 나온 얼렌드 오여는 이 지점에서 모험을 감행한다. 데뷔작을 낸 지 불과 반년 만에 ‘Quiet Is the New Loud’의 리믹스 앨범 ‘Versus’를 출시한 것이다.

그것도 일렉트로니카(전자음악)에 기반해서. 데뷔작과는 다른 장르였지만,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따뜻한 감성만은 그대로 유지하며 호평을 받았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1집 발매 이후 일렉트로니카에 부쩍 관심을 보인 그는 노르웨이 일렉트로니카 밴드 로익솝(Royksopp)과 협업했으며, 2003년 일렉트로닉 음악 위에 그만의 잔잔한 감성을 더한 첫 솔로 앨범 ‘Unrest’을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오여는 2004년 발매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두번째 정규앨범 ‘Riot on an Empty Street’에선 밴드 초창기 선보였던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음악을 선보였다. 노르웨이 출신의 이 밴드는 여기에 피아노, 트럼펫, 첼로 등 다양한 악기를 더해 보다 풍성하고 따뜻한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5년의 공백을 깬 2009년,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는 세번째 정규앨범 ‘Declaration of Dependence’을 발표했다. 피오르드의 조용하고 평온한 해안이 그려지는 선율을 통해 그들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고하게 정립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정규 앨범은 이것으로 끝이다. 물론 오여의 커리어는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가 전부는 아니다.

얼렌드 오여는 일렉트로닉에도 관심을 보였고, 이는 그가 밴드 더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The Whitest Boy Alive)를 결성하는 계기가 됐다. 2003년 독일 베를린에서 결성된 이들은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일렉트로닉 댄스를 지향했다. 2006년 얼렌드 오여가 운영했던 레이블 버블스(Bubbles)를 통해 밴드 데뷔 앨범 ‘Dreams’를 발매했고, 2009년까지 총 3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더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가 활동하던 시기는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활동기간과도 겹치는데 오여는 두 밴드를 오가며 각각의 색을 담은 음악을 만들어온 셈이다.

아쉽게도 오여는 최근 활동이 뜸하다. 음식이 맛있다는 이유로(!) 이탈리아로 이주한 그는 2014년 발표한 솔로 앨범 ‘Legao’ 이후 별다른 결과물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금의 오여를 있게 한 밴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는 데뷔작 ‘Quiet Is the New Loud’ 만으로 간간히 투어를 돌고 있다. 더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도 2014년을 끝으로 더 이상 무대에 오르는 일은 없다고 공언했다. 다만 오여는 그의 음악적 근간이 된 노르웨이의 베르겐 씬과는 교류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행을 타지 않으며 언제 들어도 좋은 음악을 칭하는 클래식이란 말이 있다. 벨 앤 세바스찬과 얼렌드 오여의 음악은 그 반열에 올라섰다. 따뜻하고 편안한 음악을 좋아한다면 이들에게 플레이리스트 한 켠 정도 내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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