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 TASTES] 흑인랩퍼에 인색한 그래미가 외면할 수 없었던 두 아티스트, 로린 힐과 아웃캐스트

[아시아엔 이주형] 투팍(Tupac), 노토리어스 빅(Notorious Big), 제이지(Jay-Z), 칸예 웨스트(Kanye West), 드레이크(Drake),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이들의 공통점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힙합 아티스트지만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을 수상하지 못했다.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했지만 웨스트 코스트와 이스트 코스트의 전설이 돼버린 이들도, 현재 힙합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들도 별반 다를 거 없다.

전세계 음악인들 사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그래미 어워드. 그래미는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올해의 신인 등 4개의 본상과 각 장르별 상을 시상해 왔다. 그러나 보수적인 그래미는 오랜 세월 흑인, 특히 랩퍼를 외면해 왔다. 2018년엔 그래미가 흑인 R&B 아티스트인 브루노 마스(Bruno Mars)에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레코드 등 7개의 왕관을 안겨주는 이변이 연출됐지만, 랩퍼들은 역시나 찬밥 신세였다. 제이지와 켄드릭 라마의 2017년 작이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올랐을 뿐이다.

혹자는 올해의 앨범 후보조차 오르지 못했던 시절을 감안하면 큰 발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주요 차트에서 랩 뮤직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다소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60여년의 역사 동안 랩으로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팀이 있다. 그것도 둘이나.

로린 힐

로린 힐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1975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로린 힐(Lauryn Hill). “우리 집에선 늘 음악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머니는 피아노를 치셨고, 아버지는 노래를 부르셨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둘러 싸여 살았다”는 말처럼 그녀는 자연스레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와 마빈 게이(Marvin Gaye) 등의 모타운(Motown) 뮤지션들과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은 어린 소녀의 교과서가 됐다. 그녀는 열세 살 때 TV쇼 ‘It’s Showtime at the Apollo’에 아마추어 참가자로 출연하며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로린 힐은 싱어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그룹 솔트 앤 페파(Salt-n-Pepa), MC 라이트(MC Lyte)와 같은 여성 랩퍼들을 자양분 삼아 랩퍼로서의 경력도 쌓아나갔다.

푸지스

1990년 로린 힐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프라스 미셀(Pras Michel), 그의 친구 와이클레프 장(Wyclef Jean)과 전설로 남은 그룹 푸지스(Fugees)를 결성했다. 1994년 데뷔작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1996년 발매한 두번째 앨범 ‘The Score’로 그래미 베스트 랩 앨범 상을 수상하며 힙합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큰 성취를 이뤘음에도 이들은 이 앨범을 끝으로 각자의 길을 걸었다. 비록 활동 시기는 짧지만 푸지스는 로린 힐의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푸지스는 힙합, 소울, 레게의 요소를 한데 녹였고, 이는 로린 힐이 솔로 앨범에서 보여준 작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사이 로린 힐 개인사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1997년 7월 밥 말리(Bob Marley)의 아들인 로한 말리(Rohan Marley)의 아이를 낳으며 엄마가 된 것이다. 이후 그녀는 성차별, 인종차별 등 사회의 부정적인 단편을 바라보게 된다.

이듬해인 1998년, 로린 힐은 솔로데뷔작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을 발표했다. 앨범명부터 알 수 있듯, 잘못된 교육과 사회부조리, 물질만능주의를 고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수록곡 ‘Doo wop(that thing)’ ‘Everything is everything’ 등에서도 절정에 오른 랩스킬을 과시했다. 로린 힐을 온전히 담은 명반은 그녀에게 1999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을 포함한 5개 부문의 상을 건넸다.

이 앨범을 한 장르로 한정 짓긴 어렵다. 그녀는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에서 R&B에 바탕을 둔 네오 소울의 공식을 따르기도 하고, 레게 창법을 소화하기도 하고, 비트 위에 랩을 얹기도 한다. 그러나 이 앨범이 힙합팬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클래식으로 손 꼽히며, 또한 그래미 본상을 수상한 최초의 랩 앨범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쉽지만 로린 힐은 2002년 발표한 ‘MTV Unplugged 2.0’ 이후로 오랜 기간 활동이 뜸했다. 꾸준히 나왔던 퓨지스 재결합설은 모두 루머로 판명났고, 2013년 탈세 혐의로 3개월간의 옥살이도 하며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팬들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로린 힐이 2018년 서울재즈패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처음 한국을 찾게 된 것이다. 그래미 어워드 최초로 본상을 수상한 랩퍼의 퍼포먼스, 곧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

아웃캐스트

아웃캐스트 ‘Speakerboxxx/The Love Below’
아웃캐스트(Outkast)는 1991년 미국 애틀란타에서 결성된 듀오다. 출신 지역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서던 힙합(Southern Hip Hop)을 지향한다. 고등학교 친구였던 앙드레 3000(André 3000)과 빅 보이(Big Boi)는 카페테리아에서 랩 배틀을 주고 받다 팀을 만들었다. 애초 둘이 생각했던 이름은 사회부적응자를 뜻하는 ‘The Misfits’. 그러나 이미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어, 동의어인 ‘Outkast’로 팀명을 변경했다.

듀오 결성 당시 이들은 열 여섯에 불과한 고등학생이었지만, 여성 R&B 트리오 TLC의 프로듀서팀이었던 오거나이즈드 노이즈(Organized Noise)의 시야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었다. 당시 오거나이즈드 노이즈는 R&B 싱어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프로듀서 엘 에이 리드(L.A. Reid)가 설립한 라페이스(LaFace) 레이블의 프로듀서로 활동했었고, 프로듀서와의 커넥션으로 두 고등학생도 라페이스와 사인했다. 레이블 입장에서는 최초로 힙합아티스트와 계약하는 모험이었지만, 둘은 거침없이 올라갔다.

1994년 발표한 데뷔 싱글 ‘Player’s Ball’은 빌보드 랩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같은 해 발매한 데뷔앨범 ‘Southernplayalisticadillacmuzik’은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앨범은 서던 힙합의 클래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큰 성공을 거두고 사라지는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가 태반인 것이 뮤직비즈니스의 현실이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2년 간격으로 발표한 두 장의 앨범도 100만 이상 팔리며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둘은 아웃캐스트의 명반으로 기록될 4번째 앨범 ‘Stankonia’를 2000년 출시하며 힙합을 고수하기보단 여러 장르를 섞은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이들의 실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CD의 자리를 MP3가 대체할 즈음이던 2003년, 아웃캐스트는 세계적으로 1,000만장이 팔린 걸작 ‘Speakerboxxx/The Love Below’를 내놓는다. 이 앨범은 각각의 멤버가 한 장의 CD를 책임진 더블CD 형식으로 구성됐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4장의 음반을 만들며 프로듀서로의 역량은 강화됐지만 둘이 추구하는 음악은 궤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둘은 아웃캐스트를 버릴 수 없어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기로 했다. 결국 빅 보이는 ‘Speakerboxxx’를, 앙드레 3000은 ‘The Love Below’를 나누어 제작했다. ‘Speakerboxxx’는 힙합에 펑크를 더했고, ‘The Love Below’는 힙합의 비중을 줄이고 펑크, 재즈, 록, R&B, 전자음 등 여러 요소를 더했다.

아웃캐스트의 5번째 앨범은 말 그대로 ‘실험적인 요소’들로 가득했지만, 이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들은 대중을 가벼이 여기지도 않았다. 흥겹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와 재치 있는 가사가 담긴 ‘The Love Below’의 ‘Hey Ya’와 ‘Speakerboxxx’의 ‘The Way You Move’는 2003년을 대표하는 히트 싱글로 기록됐다. 흑인에 인색했던 그래미도 2004년 이들에게 ‘올해의 앨범’ 등 3개 부문의 상을 안길 수 밖에 없었다.

2006년 앨범을 끝으로 아웃캐스트는 현재 개인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빅 보이는 꾸준히 개인 앨범을 내놓고 있으며, 앙드레 3000은 배우로 활동하며 간간히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각자의 영역이 확고해진 상황에서 둘의 재결합을 기대하긴 어려울 듯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남긴 유산이 랩 뮤직의 영역을 넓히는데 일조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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