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 TASTES- 영국의 해적 방송 꼬맹이들이 만든 그라임
2015년 2월 25일 런던 O2 Arena에서 열린 ‘2015 Brit Awards’. 미국 힙합을 대표하는 뮤지션 칸예 웨스트(Kanye West)가 ‘All Day’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특별한 무대에 오른 그는 ‘특별한 게스트’를 불렀다. 시상식을 앞둔 칸예 웨스트는 영국 힙합의 주류가 된 그라임(Grime) 씬의 정점 스켑타(Skepta)에게 동료 뮤지션들을 섭외해달라고 요청했다. 스켑타를 위시한 아티스트들은 그라임을 상징하는 ‘올 블랙’을 차려 입고 등장하며 이들의 음악을 세계에 알렸다. 1960년대 비틀즈(the Beatles) 킹크스(the Kinks) 등 영국 락밴드들이 미국에 진출하며 ‘브리티쉬 인베이젼’(British Invasion)을 이끌었듯, 반세기가 지난 2015년 이 날은 영국의 그라임이 미국의 주류 힙합과 어깨를 나란히 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됐다.
우리가 흔히 들어가는 초록색 사이트에서 그라임을 검색하면 “2000년대 초반 영국에서 발생한 대중음악 장르. UK 개러지, 힙합, 댄스홀, 드럼 앤 베이스, 월드뮤직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것이 특징이다”라는 요약과 함께 음악적 용어, 관련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쭉 나열되지만 이해가 쉽진 않을 것이다. 아직은 낯설은 그라임, 탄생한 배경과 역사부터 살펴보자.
런던 슬럼가의 분노 녹여내다
그라임이 탄생한 영국도 여느 나라가 그렇듯 계급 혹은 세대 간의 갈등을 겪어 왔고, 음악은 젊은이들의 불만을 표출하는 매개 역할을 해왔다. 일렉트로닉 뮤직의 한 장르인 UK 개러지(UK Garage)는 이전 세대의 주류였던 락으로부터 바통을 물려받아 1990년대 근 10년간 영국 음악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거주민의 대다수가 유색인종이었던 런던 동부의 슬럼가에서 여러 장르가 혼합된 그라임(Grime)이 탄생해 UK 개러지로부터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라임은 영국 빈민의 분노를 노래했기에 다른 음악들보다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고, ‘거리의 분노’를 양분 삼아 자라나갔다.
그라임의 탄생에는 영국 음악이 처한 상황도 한몫 했다. 20세기말 유행했던 해적 방송-정식 허가 없이 전파를 타는 무면허 방송-은 런던 음악 씬의 근간이 됐다. 장르의 정확한 명칭을 채 갖기도 전이었던 그라임은 해적 방송의 DJ들을 통해 UK 개러지의 한 장르로 소개됐다. 너무 차갑고 공격적이라 개러지 올드팬들이 외면해버린 곡들은 그라임의 프로듀서와 DJ들에 의해 새로운 사운드로 창조되면서 대중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해적 방송의 꼬맹이들(kids)이 런던 음악 씬의 미래를 만들고 있다”고 한 UK 개러지 프로듀서의 말처럼, 언더그라운드 유망주들은 주류와 떨어져 있던 공간에서 그들만의 기회를 낚아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라임이란 장르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해적 방송 ‘Kiss and Rinse’와 같은 채널들은 그라임 아티스트들의 성지가 됐다.
그라임 초기, 씬을 주도했던 크루 롤 딥(Roll Deep)은 디지 라스칼(Dizzee Rascal), 와일리(Wiley)와 같은 아티스트를 배출하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디지 라스칼은 2003년 솔로앨범 ‘Boys In Da Corner’로 18세의 나이에 미국의 그래미 어워드에 준하는 영국 머큐리상을 수상하며, 음지의 그라임을 양지로 이끌어냈다. 2007년 그는 두 번째 앨범 ‘Maths + English’에서 당시 떠오르던 여성보컬 릴리 알렌(Lilly Allen)과 협업한 히트 싱글 ‘Wanna Be’를 발표, 갱스터를 꿈꾸는 10대들을 타이르는 성숙해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거리에서 탄생한 그라임 MC들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공격성과 정체성을 잃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했다.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았고, 기반도 단단하지 않았던 그라임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다. 쇠퇴해가던 그라임을 다시금 씬의 중심으로 올려놓은 이가 스켑타다.
‘영국의 세종문화회관’에 한방 먹인 스켑타
2007년 ‘Greatest Hits’으로 데뷔한 스켑타는 무너져가던 씬에서 오랜 세월을 버티고 또 버텨서 마침내 정점에 올라섰다. 지금의 그라임은 영국 힙합을 대표할 정도로 씬의 기반도 잡혔고,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MC들 간 디스(diss)도 벌어지고 있다. 영국 안에서만 인기를 누렸던 ‘그들만의 잔치’였던 그라임은 이제 미국 힙합 씬과도 교류하며 갈수록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대부 스켑타는 최근 수년간 드레이크(Drake), 에이셉 라키(A$AP Rocky) 등과 협업했고, 긱스(Giggs)도 드레이크의 최근작에 참여했다. 서두에 언급한 칸예 웨스트의 ‘2015 Brit Awards’ 퍼포먼스도 영국-미국 아티스트들 간의 교류를 나타내는 사례 중 하나다.
영국 그라임 씬 안에서 주목할만한 이슈들도 몇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2015년 4월 스켑타의 ‘Shut Down’ 퍼포먼스다. 영국 그라임 씬 안에서 주목할만한 이슈들도 몇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2015년 4월 스켑타의 ‘Shut Down’ 퍼포먼스다. 당시 그라임 아티스트들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정도의 상징성을 지녔으며 런던 패션위크가 열리는 곳인 ‘Barbican Estate’에서 페스티벌을 기획했지만, 특별 규정(본명 및 전과기록 제출)을 이유로 행사 개최를 거절당했다. 이에 스켑타와 크루들은 “우리가 범죄자라 못하게 하는 거면 너희도 앞으로 패션위크 같은 거 열지 마라”고 보이콧하며 한 방 먹이는 곡 ‘Shut Down’과 그 퍼포먼스를 선 보였다. 이 곡은 그라임 씬의 찬가(anthem)와도 같은 곡으로 자리매김했다.
Versace Out, Nike In
그라임을 논하는데 패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라임은 음악적 영감의 일정 부분을 UK 개러지로부터 물려 받았으나, 패션만큼은 개러지의 유산을 거부했다. 개러지는 코카인과 샴페인을 즐기고 사치스런 옷으로 치장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때문에 1990년대 후반 영국엔 트레이닝 수트, 청바지, 야구모자 등의 캐주얼한 복장을 제한하는 개러지 클럽들이 많았다. 그라임 스타일은 개러지의 이런 거만한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작용에서 출발했다. 그라임 초기 뮤지션 디지 라스칼은 이를 한마디로 “Versace Out, Nike In”이라 표현했다. 그라임은 비싸고 예쁘지만 불편한 실크 셔츠 대신 친구들과 동네에서 즐기기 편한 검은 색 스트릿 웨어, 트랙수트, 나이키 에어맥스를 택했다. 물론 그라임 아티스트들 중 일부는 명품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스켑타가 “한 때 입었던 구찌는 쓰레기통에 버렸어. 그건 내가 아니니까”라고 말했듯 그라임 스타일은 그 근본을 거리에 두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한가지 궁금하다. 랩을 기반으로 한 영국의 그라임과 미국 본토의 힙합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을까? 음악적 특성에 기반해 살펴보자.
1980년대 탄생한 미국의 힙합은 장르 초창기 1970년대 소울, 훵크, 재즈의 샘플링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반면 영국의 그라임은 이들의 자랑거리인 하우스, 테크노 등 전자음을 기반으로 발전해왔다. 때문에 미국 힙합은 그루브함을 중시하지만, 그라임은 보다 빠른 비트 위에 기계음으로 곡을 전개해 나간다. 랩퍼들이 랩을 구사하는 방식에도 당연히 차이가 있다. 미국 랩퍼들이 혀를 굴리듯이-물 흐르듯- 랩을 한다면, 그라임 랩퍼들은 비트 위에 딱딱 맞아 떨어지는 정박자의 랩을 구사한다. 이는 영국식 영어의 강한 악센트와 잘 어울리는 경향도 있다. 미국 힙합이 동부(East Coast), 서부(West Coast), 남부(Dirty South) 등 여러 지역적 기반을 토대로 성장한 반면, 영국 그라임은 런던 단일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것도 큰 차이다.
그럼에도 그라임을 미국 본토의 힙합과 완전히 다른 그것으로 구분 지을 수만은 없다. 미국의 랩퍼들이 그러했듯, 영국의 그라임 아티스트들도 거리의 삶을 랩으로 풀어내며 빈민가 출신들이 겪었던 설움을 노래하며 성장했다.
세기의 전환점. 누구나 쉽게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들을 통해 그라임이 창조됐고, 울려 퍼졌다. 이 사운드는 스튜디오에서 창조된 결과물 같이 정교하진 못했지만, 런던의 거리와 공명했다. 그리고 2018년, 그라임은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세계와 공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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