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언론의 현주소 “취재의 자유 누리지 못하거나 혹은 일자리를 잃거나”
싱가포르는 전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높은 GDP와는 반대로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가 보장돼 있지 않은 나라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대표 일간지 <스트레이트 타임즈>의 선임기자를 지낸 베테랑 언론인 아이반 림이 싱가포르 언론의 현실을 보여주는 두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아시아엔=아이반 림 아시아기자협회 명예회장] 이 이야기는 싱가포르 주요 일간지 <스트레이트 타임즈>의 젊은 기자 재니스 타이가 정부기관을 취재하며 시작된다.
그녀는 싱가포르 주택개발위원회(HDB)가 오는 1월부터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계획이지만 아직 공표하지 않았다는 제보를 입수해 취재하고 있었다. 특종을 발굴하기 위해 재니스는 다양한 취재원들을 만났고, HDB의 고위관계자 응 한 유안을 통해 사실관계도 확인했다. 그리고 10월 20일 <스트레이트 타임즈는>는 HDB 온라인 사이트를 통한 주택 거래 기간이 기존 16주에서 8주로 줄 것이라 보도했다. 그녀가 취재하던 사안은 싱가포르의 공공주택인 HDB 판매자와 구매자 양측 모두에 중요한 정보였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해오던 HDB는 사전에 정보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내부 직원이 공직자 비밀 엄수법을 위반했다고 경찰에 통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은 이 사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정부는 기밀 누설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정당이나 공직자가 관련돼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처벌할 것이다.” 결국 응 한 유안은 ‘기밀 유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으며, 이를 취재한 재니스 타이도 경찰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스트레이트 타임즈>는 그녀가 기자의 본분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지지했다. 또한 “타이는 우리 편집국의 소중한 멤버다. 앞으로도 같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1992년 싱가포르 프레스 홀딩스 그룹(SPH)이 발행하는 경제지 <비즈니스 타임즈>는 GDP 2분기 성장률을 정부 발표에 앞서 보도했고, 이와 관련된 다섯 명이 공직자 비밀 엄수법으로 처벌 받은 적이 있다.
이야기의 무대를 옮겨보자. 지난 10월 SPH 그룹 소속 기자 130명이 기업의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을 이유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해고된 기자들은 <스트레이트 타임즈> <리안 헤 자오바오> <비즈니스 타임즈> 등에서 일하던 선임 사진기자와 편집국 기자들이었다. 이들은 퇴직금 조로 월 급여에 준하는 돈을, 58세 이상의 기자들은 두 달치 급여에 준하는 돈을 지급받았다.
SPH 측은 인력을 감축하게 된 이유에 대해 “광고수익이 전년 대비 6.7% 감소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SPH의 순익이 전년보다 32% 증가했음에도 구조조정을 빌미로 인원을 감축했다”고 비판했다. SPH는 또한 비(非) 언론 사업을 통해 높은 수익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치평론가 데렉 다 춘하는 “SPH는 정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다른 매체들보다 타격을 덜 받을 것이다. 즉 SPH에서 발행하는 신문들이 정부 여당을 옹호하고 이들의 심기만 거스르지 않는다면 수익이 큰 폭으로 감소하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언론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인가? 그러나 다 춘하는 “대안 매체들의 거센 도전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즈>의 유료 구독자는 오히려 급증했다. 소셜미디어가 범람하는 시대라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수준 높은 탐사보도와 분석기사들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것이 언론사가 살아남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고, 사업 확장도 또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얄궂게도 SPH는 싱가포르와 주변 국가들의 옥외 광고 및 행사 기획 등의 사업으로 신문과 잡지 등 매체를 통한 수익보다 더 큰 돈을 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