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슬라임 팔아서 집 한 채 샀어”···‘슬라임’ ‘ASMR’이 뭐죠?

[아시아엔=서의미 기자] 기자는 10대 시절 종종 불면증에 시달리곤 했다. 잠을 자더라도 이내 침대에서 깨어난 적이 다반사였고, 다시 잠들려 몸을 뒤척여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불면증은 나를 괴롭힌다. 어느 잠 못 드는 밤, 우연히 한 영상을 보게 됐다. 누군가 반짝이는 슬라임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몇 분 간 멍하니 지켜봤다. 곧이어 재생된 영상 속 사람들은 마이크를 입에 대고 낯선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소리는 내게 ‘잘자’라고 굿나잇 키스를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이 사람들이 특별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그저 슬라임을 갖고 놀거나 반복적인 소음을 만들었을 뿐이었으나 기자는 눈과 귀를 뗄 수 없을 정도로 넋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이내 편안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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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말할 필요도 없이, 기자는 슬라임과 ASMR에 빠져들었다. 직접 슬라임을 만들고 그 과정을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릴 정도로 말이다. 프로들의 그것처럼 정교하진 못했지만.

감각을 자극하는 콘텐츠들이 21세기의 서브컬쳐(Sub-culture)로 떠오르고 있다. 10대~20대 청년들이 가상공간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자극에 열광한 것이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앞서 언급한 슬라임과 ASMR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헷갈릴 것이다. 이들이 무엇이고, 어떻게 미디어 플랫폼을 휩쓸었는지 알아보자.

“기껏해야 풀로 만든 작은 공 슬라임?”
‘슬라임’은 한마디로 응고된 풀이라 생각하면 된다. 붕산이 함유된 액체(렌즈 세정액 등)를 풀과 섞기만 하면 슬라임이라 불리는 끈적거리고 자그마한 물질이 탄생한다. 슬라임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세기 후반이지만,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인기를 끌게 됐다. 2017년 초 인스타그램 유저들이 홈메이드 슬라임을 마구 찌르고 만지작거리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온라인 플랫폼은 홈메이드 슬라임 제작 튜토리얼로 도배됐다.

슬라임 마니아들은 반짝이는 슬라임부터 면도크림으로 만든 슬라임까지 각양각색의 슬라임을 자랑했다. 실험정신이 투철한 이들은 심지어 구슬과 진주를 넣어 만든 슬라임을 선보이기까지 했다. 유튜브에서 슬라임을 검색하면 6만건 이상의 영상이 검색된다. 그 중 인기콘텐츠는 조회수가 2000만을 넘어섰으며,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관련 게시물은 지난 6월 300만건을 돌파했다. “뭐가 그리 대단하길래 풀로 만든 자그마한 공에 열광하지?”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기껏 작은 공 하나가 지구를 놀라게 할만한 비즈니스로 성장하고 있다.

<타임>에 따르면 불과 13살, 기껏해야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나 다니고 있을 10대들도 직접 만든 슬라임을 팔아 한 달에 3000달러(약 325만원) 이상을 번다고 한다.

슬라임을 판매해 집 한 채를 사버리고 만 카리나 가르시아

초기 슬라임 비즈니스에 뛰어든 사람 중 하나인 미국의 카리나 가르시아는 23살에 불과하지만 6개월만에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리며 그녀만의 ‘슬라임 제국’을 건설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광고 수익이 주 수입원인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슬라임 덕분에 최근에 집도 샀어요. 엄마가 어찌나 웃던지”라고 말했다.

우스꽝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슬라임은 수많은 청년들을 CEO로 만들었고, 이 비즈니스는 지금 이순간에도 성장하고 있다. 심지어 아시아권에서 조차도. 홍콩의 10대들은 관광명소인 드래곤센터에 개인작업실을 차려 매주 205달러(약 22만원)를 벌고 있다고 한다.

ASMR, 귀 너머로 들려오는 매혹의 소리
자율감각 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 ASMR은 듣는 이로 하여금 자극적인 흥분을 만끽하게 한다. 마치 누군가 귀 너머로 소중한 비밀을 속삭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ASMR에 대해 혹자는 ‘뇌의 오르가즘’ 혹은 ‘뇌의 포르노’라는 그리 달갑지 않은 별칭을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ASMR은 성적인 쾌감이라기 보다는 평온과 진정효과를 전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그래서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 자연스레 ASMR을 재생한다.

이 영상들은 2008년 즈음 온라인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영상 속 사람들은 고음질의 마이크로 간단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데, 이들은 메이크업 브러쉬나 물 떨어지는 소리, 동물 소리, 심지어 마이크 앞에서 무언가를 먹으며 다양한 소리를 내곤 한다. 소음이 반복되면서 마치 최면에 빠진듯한 느낌이 든 사람들은 이를 알아채기도 전에 잠에 빠져버린다. ASMR을 처음 듣는 청자들은 속 삭이는 소리와 침 넘어가는 듯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내가 왜 이런 소음을 듣고 있지?”라는 의문에 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ASMR의 포로가 되어버리고 만다.

ASMR 유튜버 데이나

한국에서 가장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유튜버 데이나의 주 구독자 역시 ‘불면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데이나의 가장 유명한 영상의 조회수는 470만을 넘어섰으며, 그녀 역시 유튜브 광고 수익 등으로 큰 돈을 벌었다.

한국에서도 거세게 불고 있는 ‘슬라임’ ‘ASMR’ 열풍
즉 슬라임과 ASMR은 사람의 시청각을 자극함으로써 심리적인 안정을 주기 위해 창조된 콘텐츠라 할 수 있다. 이 열풍은 한국에서도 거세게 불고 있다. 한국의 유튜버 애청자들은 매주 일요일 밤마다 업데이트 되는 데이나의 ASMR 영상을 기다린다. 슬라임도 한국에서 액체괴물이란 애칭을 얻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에서 슬라임과 ASMR이 열광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한국인이 유행에 민감한 것이 그 첫번째다. 두번째로 한국인들이 받고 있는 지나친 스트레스를 들 수 있다. 경쟁이 유독 심한 한국인들은 10대는 입시, 20대는 입사 등으로 인해 젊어서부터 스트레스를 등에 엎고 살아간다. 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가 약 17%의 한국인이 수면장애로 고통 받고 있다고 발표할 정도로 불면증도 심각하다. 현실의 스트레스에 지친 청년들이 가상의 공간을 통해 접한 슬라임과 ASMR로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현상, 특히 ASMR의 이면에는 ‘이러한 것들이 인간에게 정말 도움이 될 만한 휴식과 안정을 제공하는가’라는 논란이 남아 있다. ‘이런 영상으로부터 받는 자극이 이로울까’ ‘우리를 흥분시킬 수는 있지만 오히려 지키게 만드는 것도 아닐까’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들이 떠오르는 것도 당연하다.

이와 관련된 논란을 잠재울만한 연구결과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며 현실의 고통을 달래주는 새로운 문명에만 지나치게 의존해선 안 되는 이유다. 디지털 미디어와 네트워크 플랫폼은 우리의 삶을 보다 이롭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수단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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