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판왕 이센스까지 등장, ‘한국힙합 올스타’가 빛낸 ‘2017 더 크라이 그라운드’

춥지도, 덥지도 않은 10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한국힙합 최대 페스티벌 ‘2017 더 크라이 그라운드’가 한창이다. 한강을 등지고 있는 스테이지에 사람들이 모여 든다. 햇빛이 내리쬐지만, 강변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속에 관객들은 ‘시원한 열기’를 느낀다. 축제가 열리고 있는 난지한강공원 곳곳에선 또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스탠딩 석 뒤편의 일부는 넓은 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펴고 편하게 공연을 즐기고 있다. 여느 야외 페스티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런 풍경들도 이젠 그리 낯설지 않다. 힙합이란 문화가 한국과 만난 지도 20여년. 힙합은 어느덧 시끄럽고 폭력적이라는 편견을 떼고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아시아엔=이주형/사진=SA 커뮤니케이션 제공] 지난 주말인 10월 14일~15일, 서울 난지한강공원에서 하이라이트레코즈, 일리네어레코즈 & 엠비션뮤직, 팬시차일드, AOMG, VMC, 저스트뮤직, 아메바컬쳐를 비롯한 레이블 & 크루에 킬라그램 & 로스, 영비, 펀치넬로, 저스디스, 오케이션, 우원재, 그리고 이센스까지 한국힙합 올스타들이 출연한 ‘2017 더 크라이 그라운드’(2017 THE CRY ground)가 열렸다.

팬시차일드

공연 첫날, 관객의 가장 큰 호응을 이끌어낸 무대는 팬시차일드 크루였다. 결성 후 팬시차일드란 이름 아래 5명 전부가 모인 퍼포먼스는 최초라는 이들. 밀릭의 디제잉부터 페노메코-크러쉬-딘-지코, 그리고 팬시차일드 5명이 함께 무대에 오른 공연까지, 이들은 처음이라고 하지만 탄탄한 호흡과 구성으로 가득한 무대를 선보이며 ‘왜 이들이 가장 많은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지 증명했다.

이센스

첫날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이는 한국힙합씬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티스트 이센스. 정규앨범 ‘디 애넥도트’(The Anecdote) 곡들 위주로 무대를 채워나간 이센스는 최근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공개한 ‘WTRU’ 등의 신곡까지 부르며 추위에 떨고 있던 관객들의 몸과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는 이센스만이 가능한 행동과 멘트들, 꾸며내진 않았지만 가사와 맞아떨어지는 자연스런 제스쳐로 무대를 채워나갔다.

공연이 무르익을 무렵, 흥에 취한 듯 혹은 술에 취한 듯 무대를 돌아다니는 이센스. “Fuxx you 이센스”를 외치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고, 함께 호흡하는 관객들도 목이 터져라 “Fuxx you 이센스”를 외친다. 서로를 향한 거친 단어가 오가지만 무대 위 랩퍼의 말마따나 추운 시간까지 기다려준 이들에 대한 보답이며, 관객들도 이에 화답할 수 있는 최선의 호응이야말로 아티스트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잠깐의 요상한 실랑이(?)가 끝나기 무섭게 이센스는 본업인 랩으로 돌아가 무대를 집어삼킨다.

이 자리에는 특별한 손님들도 찾아왔다. 퍼포먼스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한 DJ 소울스케이프와 끝 무렵 무대로 오른 바나의 프로듀서 디 샌더스가 그 주인공. 특히 2000년대 초반 한국힙합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꾸준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DJ 소울스케이프는 디 에넥도트 투어에 이어 이번 퍼포먼스에도 함께 올랐다. 씬의 역사를 대변하는 DJ와 한국 힙합의 전성기에서 가장 빛나는 랩퍼가 자리를 함께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큰 무대였다.

이튿날인 일요일 오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송인 샘 오취리의 샤라웃과 함께 시작된 VMC의 무대. 이들은 예정돼 있던 딥플로우, 넉살, 던밀스, 빅원 4명의 아티스트 외에도 DJ 베이비 나인, 우탄, 오디 등 주요 멤버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컴필레이션 음반 신곡 ‘티키타카’와 지난 여름 차트를 역주행한 ‘작두’ 등 레이블 대표곡들을 선보였다. 특히 ‘팔지 않아’와 함께 등장한 넉살은 관객들의 귀를 관통하는 발성을 자랑하며 씬에서 가장 라이브 퍼포먼스가 좋은 랩퍼임을 증명했다. 오는 11월 19일 부산, 11월 25일 서울에서의 레이블 콘서트를 앞둔 VMC는 ‘우탱클랜’이 수놓인 자켓부터 레이블 팀셔츠까지 맞춰 입고 나오며 관객들에게 그들 스스로를 각인시키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음을 느끼게 했다.

페스티벌의 막바지. 베테랑들의 저력을 느끼게 해주는 무대가 이어졌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수많은 히트곡들을 보유한 다이나믹 듀오와 싸이. 수많은 히트곡만큼이나 수많은 무대경험을 지닌 이들은 관객의 가장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내며 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했다.

다이나믹 듀오

1990년대 후반 PC통신과 홍대의 작은 클럽으로부터 출발한 한국힙합은 이틀간의 축제를 가득 채운 라인업과 관객을 자랑할 만큼 한국 음악의 주류로 성장했다. 페스티벌 관계자에 의하면 이틀간 모인 관객은 약 3만. 2개 이상의 스테이지에서 3일간 펼쳐지는 락 페스티벌들이 올해 7만~8만명을 동원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단일 스테이지로 이틀간 3만의 관객 모은 건 한국힙합의 주목할만한 성장을 드러내는 지표다.

이렇게 많은 관객이 찾은 것은 공연기획사 SA커뮤니케이션의 역할도 컸다. 기획사에서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공을 들인 부분은 역시 다양한 라인업 구성. 씬의 거의 모든 크루나 레이블에서 최소 한 명 이상은 참여했으며, 힙합뮤지션 만으로 이만한 라인업을 내세운 페스티벌은 드물다. 여기에 기획사 측은 싸이를 더해 10~20대의 타겟층을 30대 이상, 그리고 외국인들까지 관객층을 넓혔다. 실제로 싸이의 공연 때는 이전 무대에선 드물었던 외국인 관객들도 들어차며 글로벌 페스티벌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보였다.

2015년부터 서울랜드에서 시작된 ‘더 크라이 그라운드’란 브랜드는 이제 한국 힙합 최대의 페스티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국힙합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신나는 축제는 없다. 이번 기회를 놓쳤다고 후회할 필요는 없다. 2018년에도 더크라이 그라운드는 당신을 맞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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