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사주팔자’에 절절 매는 당신께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사주팔자는 4개의 기둥과 8개의 글자를 말한다. ‘사주(四柱)’, 즉 4개의 기둥은 자신이 태어난 ‘년, 월, 일, 시’를, ‘팔자(八字)’는 8개의 글로 태어난 ‘연, 월, 일, 시’에 배당된 글자가 각각 2자씩 여덟 자라서 팔자라고 한다. 결국 사주와 팔자는 같은 말인 셈이다.

만약 오늘 2017년 5월 31일 저녁 6시에 태어난 아이가 있다면, 아이의 사주는 2017년(정유), 3월(계묘), 29일(임술), 오후6시(기유)가 된다. 따라서 이 아이의 사주를 정리하면, 丁酉(년주) 癸卯(월주) 壬戌(일주) 己酉(시주)와 같은 사주가 완성되는 것이다. 바로 이 8글자가 이 아이의 팔자인 셈이다.

사주팔자는 고칠 수도 없고 변할 수도 없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사주팔자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숙명(宿命), 곧 어떤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말한다.

북한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미국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한국에서 부잣집의 외아들로 태어날 수도 있고, 가난하고 나쁜 환경의 가정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이건 숙명이고 피할 수 없는 필연(必然)이다. 어쩔 수도 없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반면에 운명(運命)이라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도시와 농촌 등 자연환경도 있고, 부모님을 시작으로 일생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도 접하게 되는 인간환경도 있다. 그리고 자아(自我), 즉 ‘나’를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기도 하고, 좋은 친구와 사귀기도 하고, 훌륭하고 스승을 만나 보람된 삶을 사는 경우도 있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세상을 비관하며 사는 생도 있다.

이처럼 운명은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속죄하고 남을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도록 열과 성을 다한다면 지성이면 감천(至誠感天)으로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져 운명이나 팔자를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여기 팔자를 고치는 ‘팔자타령’이 있다. 학창시절에 하루는 국어선생님이 아무 말도 없이 칠판에 여덟 팔(八) 자를 크게 쓰셨다. “이게 무슨 글자인가요?” 한 학생이 대답했다. “선생님, 팔자(八字)입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八자 앞 획을 길게 늘어뜨렸다. “선생님, 八자가 나쁩니다.” 이번에는 뒤 획도 길게 늘어뜨렸다. “선생님, 八자가 늘어졌습니다.” 이번에는 늘어뜨린 것을 지웠다. “선생님, 八자가 좋아졌습니다. 八자가 좋습니다.” 그제야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셨다.

“여러분! 사람팔자는 이렇게 내 마음대로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팔자타령을 하다니요?”

사주팔자나 운명은 고정된 것이 없다. 고칠 수 있는 것이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은 잘못된 운명론에 사로잡힌 결과다.

운명론은 주역사상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역은 인간의 생로병사와 자연만물의 사계(四季)에는 별자리의 이동과 지구를 중심으로 한 오행(五行)의 경로에 따라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사상이다. 그 사주팔자를 고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스스로 타락 심을 내지 아니하고 꾸준히 향상해 가는 것이다. 사주팔자나 운명은 고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불보살이 되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지성여불(至誠如佛)의 정신으로 신앙과 수행을 하는 것이다.

둘째, 견실한 신성(信誠)과 신근(信根)을 확립하는 것이다. 천만 역순(逆順)경계에 흔들림 없는 믿음의 뿌리를 세우는 것이다. 부처도 조사(祖師)도 다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부처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냐 하고 분발하는 것이다.

셋째, 인생의 스승을 만나는 것이다. 나 이상의 도덕을 갖춘 스승을 만나 친근 공경하며, 숭배 신봉하며 계속 정진하는 것이다. 공자님은 세 사람이 걸어도 그 가운데 스승이 계시다고 했다.

넷째, 나만 못한 근기(根氣)를 항상 포용하는 것이다. 세상엔 나만 못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런 사람들을 포용 보호하여 나 이상이 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교화(敎化)요, 제도(濟度)다.

다섯째, 계속 적공(積功)하는 것이다. 공부와 서업(緖業)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항상 부족한 생각으로 계속 적공하는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 감로수가 나올 때까지 적공하고 또 적공해야 한다.

여섯째, 만족하고 베푸는 것이다.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탐욕은 금물이다. 언제나 스스로 만족하고, 부족한 이웃에게 베푼다. 보시 이상의 공덕은 없다. 조금은 바보 같이 살고, 무조건 베풀며, 세상을 위하여 맨발로 뛰는 것이다.

죽기 살기로 실행하는 것이다.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감만 못하다. 방심하지 않는 데에 성공이 있다. 원(願)은 큰 데에 두고, 공(功)은 작은 데부터 쌓는 것이다.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사주팔자쯤이야 여반장(如反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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