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당선] “젊은 작가들 책 두달에 한권은 꼭 읽으시길”

‘비(非)상경계’란 전공은 있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 된다 <사진=pixabay>

[아시아엔=석혜탁 <아시아엔> 트렌드 전문기자] 2030세대로서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라니 퍽이나 거창하다. 우선 퀴즈 하나 내며 글을 시작해볼까 한다. 새 대통령께서는 ‘비상경계’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국군 통수권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겠는가”라고 정색하고 반문하신다면 조금 김이 빠질 듯하다. 국방과 관련한 이야기였다면 조금은 다르게 접근했을 터이니···.

‘비상경계’는 최근 구직난에 시달리고 있는 청년들이 쓰고 있는 자조 섞인 신조어다. 말 그대로 상경계 전공이 아니(非)라는 뜻이다. 상경계 전공이라 함은 보통 경영학, 경제학, 회계학을 말하고 학교에 따라서는 통계학과나 국제통상학과 등의 이름을 가진 전공도 경제학사 졸업장을 받게 되니 상경계로 분류된다.

이쯤 되면 무슨 문제인지 감이 오는가. 비상경계란 이 정체 모를 조어(造語)는 참 괴물 같은 언어다. 루쉰의 소설을 좋아하는 중문학도도, 세종시에서 국가정책을 디자인하고자 했던 행정학도도, 푸코와 하버마스 책에 푹 빠져 살던 사회학도도, 교직에 대한 꿈을 키워왔던 영어교육과 학생도 아주 간편하게 ‘상경계 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 공히 묶여 버린다. 제 전공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수많은 학생들을 도매금으로 정리해버리는 극히 천박한 단어인 것이다.

타전공에 대한 이런 멸칭(蔑稱)이 별다른 성찰 없이 운위되는 것, 우리 고등교육의 씁쓸한 현주소다. 한편으로는 덩치 큰 대기업들이 입사 지원자격 혹은 우대사항에 상경계 전공을 적시하면서 벌어진 참극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다른 전공에 비해서 경영학, 경제학이 기업의 생리를 이해하는 데 좀 더 긴요하리라 판단했으리라.

사기업의 채용기준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외압을 행사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 인문학의 존재 의의에 대해 논하고 싶지도 않다. 몇몇 소수의 상경계 전공 외의 나머지 수많은 전공을 ‘비상경계’로 치환하는 경박함과 몰지각에 대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마 당신을 지도자로 선택한 꽤나 많은 청춘들 역시 비상경계라는 언어 안에 포박되어 신음하고 있을 게다. ‘비상경계’라는 단어는 개별 전공의 특성을 퇴색시킨다는 점에서 그 쓰임을 ‘비상’ ‘경계’해야 마땅하다. 다른 전공을 배척하며 ‘비(非)’를 갖다 붙이는 작태는 비(非)상식에 다름 아니다.

물론 경기악화에 따른 구조적인 실업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대통령이 초인(超人)도 아니고, 영웅의 출현을 기대할 만큼 청춘들이 몽매하지도 않다. 다만 “무엇 무엇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배타적인 접두어 ‘비(非)’가 횡행하는 세상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주었으면 좋겠다.

청춘의 언어도 모국어입니다

첫 번째 주문이 조금 추상적으로 느껴지시는지. 두 번째 주문은 두 달에 한 권쯤은 젊은 작가의 소설을 읽어보시라는 것이다. 읽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관계 부처 공무원은 물론 시민, 학생, 전문가 등과 함께 2시간 정도 독서토론을 하는 것도 제안 드린다.

아마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수도 있겠다. “경제, 정치, 외교, 국방 등 산적한 현안이 얼마나 많은데 한가하게 소설 타령인가!”

사회과학 도서와 그래프, 통계 데이터를 보고 만들어진 보고서만 주야장천 읽고 결재하다 보면, 대통령의 사고가 경직될 공산이 크다. 또 두 달에 소설 한 권 못 읽을 정도로 대통령이 바쁘다고 한다면, 그것은 참모진이 무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밖에 안 된다.

“취업 시즌이 완전 끝난 올해 봄. 나는 서류전형 한 번 통과해보지 못하고 시즌을 접었다. ‘지원자격: 토익 800점 이상’이라는 문구에서 나는 이런 목소리를 들었다. ‘넌 꺼져.’” – 심재천 <나의 토익 만점 수기>

<나의 토익 만점 수기>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호주에서 현군고투(懸軍孤鬪)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과 함께 생활하고 있고, 영어를 모국어로 삼고 있는 스티브는 우리 청춘에게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그 나라 국민이 되는 거야?”

정녕 ‘그 나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할 준비가 되었다면, 때로는 소설 한 권이 청춘들을 이해하는 데 보다 효과적일 수가 있음을 이해하시기를 바란다.

“한번은 쫓겨나는 도중에 인사담당자에게 탈락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인사담당자는 우리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개그맨 시험이나 한번 쳐보세요’라며 등을 떠밀었다.” – 김중혁 <유리방패>

“드라이아이스. 그것은 마치 무색의, 무취의 까맣게 타들어가는 청춘의 양면성 같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나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개미지옥에 갇혀 허우적대는 개미처럼 현실의 갈증에 갉아 먹히는 제 청춘 같았다.” – 홍지화 <드라이아이스>

소설에 나오는 문장이지만, 그 내용은 소설 밖 현실에서도 생명력을 갖고 살아 움직이고 있다. 위의 소설들을 읽고 나서 청년실업에 대해 재삼 고민해본다면, 더욱 참신한 발상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여성정책을 고안할 때도 복잡한 법령과 멋들어진 외국사례집에만 눈길을 주지 마시고,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시라. 혹여 읽을 시간이 없다면 참모들에게 선물이라도 하시길.

정치권에 대한 실망도 이제 만성화되어 사실 청춘으로서 딱히 바라는 게 많지 않다. 친한 후배녀석은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것 없으니 내 앞길 방해만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정도다. 아무쪼록 대통령께서는 부디 청춘의 언어와 2030세대의 표정을 잘 읽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소설도 좀 읽으시고, 때로는 소설책을 선물하기도 하는 로맨틱한 대통령이 되시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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