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 결혼 안 하나? 못하나?

더 이상 결혼하기에 적절한 나이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평균 결혼연령이 해마다 오르고 있을 뿐 아니라 결혼 자체를 반드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예전 같지 않다. 어쨌든 결혼 시기는 늦어지고 있고,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결혼 파업’이라고 할 만하다. Asia Research Institute(ARI) 조사를 보면 아시아의 경우 결혼하지 않은 35~39세 여성 비율이 2009년 홍콩 21%, 일본 18%, 대만 16%, 싱가포르 15%, 한국 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결혼을 의무나 선택으로?얘기할 일도 아니다. 조금씩 바뀌고 있는 사회현상일 뿐이다.?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편집자주>

21일 일본 도쿄에서 '윈드 오브 아시아' 결혼 패션쇼가 열리고 있다. <사진=신화사>


여성인권 우선돼야…국가-자본 이해 엇갈려 결혼 기피 주장도

국가 및 사회적 차원의 결혼·출산 장려보다 개인선택 존중해야

“전문가들은 전통적 가족이 줄어드는 대신 핵가족이 늘고, 결혼율이 감소하는 반면 이혼율은 늘어나는 등 전통적인 ‘우리’개념이 ‘나’의 개념으로 바뀐다느니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내 생각은 ‘스타벅스’가 문제다.”

한국에 머물면서 <더 타임즈>(The Times) 등에 기고하는 언론인 앤드류 새먼(Andrew Salmon, 42, 남)씨는 최근 한국 영자신문 <코리아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결혼 기피와 저출산에 따른 한국의 고령화 문제는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탓”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밀애(密愛) 나눌 공간 없어 연예 진도 안 나가”

자칭 ‘과학적’이고 ‘인류학적’이기까지 한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전문점이 늘어남에 따라 결혼이 줄어드는 추세가 뚜렷해졌다는 것.

커피숍이 체인점이 아니었던 시절, 커피숍 1층에서는 ‘끔찍한’ 커피를 팔았고 커튼이 드리워지고 칸막이가 있는 2층에서는 희미한 조명과 끈적끈적한 음악이 흘렀다. 그는 “이런 환경에서 청춘 남녀가 로맨스에 열중하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요즘처럼 완전히 개방된 커피숍은 로맨스를 꽃 피울 데이트장소로서 완전 ‘꽝’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남자가 속칭 진도를 나갈 수가 없다. 비즈니스 만남이나 주부들의 수다스런 모임이 번잡한 공간에서 가벼운 스킨십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밀실 커피숍에서의 데이트 땐 가벼운 스킨십에서 좀 더 농익은 스킨십까지 진도 나가는데 시간적·물리적·심리적 장애물이 적었다. 커피숍에서 둘만의 공간인 DVD방 또는 러브호텔로 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고 머잖아 결혼에 골인해 귀여운 아이도 낳았다.”

앤드류는 이런 근거로 “정부가 나서 스타벅스나 탐앤탐스, 카페베네와 같은 커피숍들이 과거와 같은 형태로 구조를 변경하도록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애부(戀愛府)를 신설, 장관(Romance Ministry)과 인구통계담당 공무원들이 출산율 제고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했다.

결혼·출산 권하는 사회

아시아 지역에 사는 여성들이 결혼 파업(wedding strike)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가 자주 눈에 띈다. 동아시아와 싱가포르 등 선진국 또는 앞서가는 개발도상국에서 이런 결혼 기피현상이 많다.

각국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는 식으로 호들갑을 떤다. 고령화 사회가 주는 암울한 그림자를 거듭 경고하면서, 결혼과 출산의 미덕을 침을 튀어가며 늘어놓는다. 당사자인 아시아 여성, 특히 ‘일’과 ‘꿈’을 좇는 고학력 여성들은 이런 부류의 호들갑이 마뜩찮다. 몇십만원 줄 테니 아이를 낳으라는 정책을 접하면 코웃음 치는 수고도 아깝다.

아시아 여성 중 가방끈이 길고 비교적 고소득층에 속하면 동년배의 괜찮은 남자를 만나 결혼할 확률이 크게 줄어든다. 아직 후진적인 정략결혼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 제도 자체가 남성 중심으로 설계돼 있는 탓이다.

자본주의 자체가 현대 여성들의 결혼을 막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음침한 데이트 장소가 없어지니까 연애가 무르익어 성관계와 결혼으로 자연스레 이어지지 못한다”는 주장도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엔 그럴?듯하다.

당초 예상보다 1년 넘게 지구촌 인구가 70억 명을 넘어섰고, 곧 90억 100억 시대가 올 정도로 인구가 증가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각국 정부들은 인구가 줄어든다면서 “결혼을 하라”고, “아이를 낳으라”고 재촉하는 걸까. 세금이 그리도 궁한가.

여자라서 포기?

올해 갓 마흔 살이 된 모 언론사 기자 A씨. 그녀는 정초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올해는 결혼할 계획이 없다”며 못 박았다.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0대인 ‘삼포세대’도 아니다. 올 여름 영국에서의 취재 일정이 잡혔기 때문이다. 즉 ‘일’을 위해 결혼계획을 보류한 상태다.

굳이 여성학 과목이 아니더라도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실감해온 A씨는 남자 입사 동기들과 동등하게 경쟁해 진급을 하고 싶다. 어쩌면 가능할 것도 같은 직장이니까,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혼기가 찼다고 결혼을 한 여자 선배의 거취를 보면서 결혼관이 바뀌었다. 그 선배에게 진급은 사실상 ‘합의된’ 포기였다.

호사가들은 높은 교육 수준과 경제적 여유를 가진 ‘골드미스의 허세’라는 식으로 막말을 한다. 자기 딸의 고민이라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 큰 포부를 위해 해외 특파원 경력을 쌓거나 유학을 가면서 결혼을 미루는 남성을 보고 “딱하다”는 식으로 혀를 끌끌 차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성들이 같은 이유로 결혼을 늦춘다고 하면 왜 결혼 걱정을 해야 하는가. 아시아는 여전히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이 다른, 그것도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이 전제된 결혼만이 이상적인 결혼으로 남아있어서인가.

여자라서 제때?

아시아 고학력 여성의 번뇌는 싱가포르나 동아시아 나라들 대부분에서 최근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 말레이시아나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의 고학력 여성들 역시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다만 대다수 아시아 저개발 국가들의 평범한 저학력 여성들은 여전히 여성 억압적인 결혼 문화에 노출돼 있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사는 무슬림 여성들은 가족들이 나서서 자신의 배우자가 될 남편을 선택해 준다. 인도에는 아직 정략결혼이 남아 있다. 중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을 일명 ‘남은 여자(剩女, Sheng-nu)’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조롱하기도 한다.

중국과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 여성들은 결혼에 관한 한 이런 노골적이고 구시대적인 억압에 노출돼 있지는 않지만, 다른 형태로 정신적 압박을 받고 있다. 여권(女權)이 크게 신장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구에 비해 남성중심사회의 모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 사람들 다수에게 여전히 “여성의 행복이 결혼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많이 남아있다.

중국인 유학생 B씨(23)는 “98%의 남녀가 결혼을 할 만큼 중국인들은 결혼을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일로 생각한다”면서 “보통 28세 이전에 결혼하고 35세를 넘어가면 큰 사회적 압박감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여자라서 일찍?

중국 여성들의 미혼 임계치가 35세라고 한다면, 이는 한국의 약 5~7년 전 수준이다. 한국은 30대 후반의 미혼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다. 중국인 B씨는 한국에서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안 하는 한국여성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결혼 파업’의 원인을 짚었다.

B씨는 “적잖은 나이에 결혼을 안 한 여성들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남다른 자신감도 지녔다”고 평가했다. 또 “이런 여성들은 대개 더 높은 수입과 교육 수준을 가진 남성과 결혼할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럴 가능성은 외려 적다”고 말했다. B씨는 “그런 남성들은 이미 나이가 찬 그녀들 대신 좀 더 젊은 신부를 선호하기 때문”이라며 “이런 결혼 제도라면 남녀가 불평등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대만, 홍콩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29~30세 사이에 결혼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인정돼온 아시아 여성들의 결혼 적령기보다 높아진 것이다. 한 때 심각한 저(低)출산 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서구 나라들에 견줘도 결혼연령이 높은 편이다. 미국에서는 평균적으로 여성은 26세, 남성은 28세에 결혼한다. 서양에서 대개 결혼에 앞서 동거를 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서양과 동양의 평균 결혼연령 격차는 더 커진다.

여자라서 책임?

서구 나라 중에도 결혼을 통해 형성되는 전통적인 가족 대신 자유로운 가족제도로 이전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스웨덴의 경우 30대 후반의 나이에 미혼인 여성의 비율이 40% 이상이다. 이들에게 보편적 기준으로서 ‘결혼’이란 제도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혼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기른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언제 어떤 나라가 스웨덴의 전철을 밟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전히 결혼의 틀 안에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인 기준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동아시아 지역의 여성들은 ‘일’과 ‘공부’ 때문에 결혼을 연기하거나 미루는 일이 잦아졌다. 전통적인 유교적 결혼관이 많이 사라져 결혼이 여성 개개인의 선택 문제로 변모돼온 것은 맞다.

그러나 사회 또는 국가는 그녀들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그녀들이 ‘출산율 감소’와 ‘고령사회의 공포’를 조성한 장본인이라는 식으로, 결혼을 보류한 미혼 여성들에게 모든 책임의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여자라서 만만?

자본주의, 그것도 건강하지 못한 자본주의가 결혼이나 출산을 저해해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속가능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한국의 카이스트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인도(India) 유학생 라훌(28, 남)씨는 “한국의 집값이 터무니없이 비싼데, 이는 젊은이들의 결혼을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혼하기 위해선 ‘집’이 필요한데, 터무니 없는 한국의 주택가격 탓에 내가 아는 한국인 남성은 결혼하고 싶어도 당장 할 수 없다”면서 “인도의 경우 수도권 일부를 제외한 지역에서 젊은 부부들이 비싼 집값 때문에 결혼을 늦추는 경우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한 언론인은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가 여성의 결혼을 원치 않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이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 지구적인 베이비부머 시기와 달리 아시아 국가에서 경제 회복기에도 결혼률이 감소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논리가 문화적·경제적으로 미혼여성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소득이 육아나 가사부문에 집중되는 것보다 미혼여성 스스로를 위해 소비하는 것이 자본 입장에서는 훨씬 부가가치가 크다”면서 “기저귀를 수천 개 팔아봤자 명품 가방 하나 판 것보다 이윤이 낮은 점을 보면 안다”고 설명했다.

“사회는 사회고, 내 선택이 더 중요해”

동아시아 거의 모든 나라의 정부들은 ‘잘 교육받은 딸들’의 결혼율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출산율 하락에 따른 노동력 감소가 사회경제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정부차원에서 대학 졸업생 등 남녀의 결혼을 장려하기 위해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 홈페이지(lovebyte.org.sg)를 개설했다. 뿐만 아니라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는 직접 나서 출산을 권장하며 ‘흑룡의 해’를 맞아 많은 아기들이 탄생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소설가 출신 김한길 전 의원의 가족사진

그러나 소설가 출신의?한 한국 정치인은 결혼에 관한 한 이런 국가나 사회적 관점이 아닌 개인적 선택을 중시하면서 “뜨거울 때 결혼하라!”고 주문했다. 김한길 전 민주당의원은 “미리 준비한다고 젊은 날을 다 까먹고 나서 결혼하는 건, 마치 겨우내 아르바이트를 해서 봄이 다 돼서야 겨우 거위 털 점퍼를 하나 사는 것처럼 억울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 전의원은 “결혼은 준비를 다 마친 남녀가 만나 잘살기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아니라, 젊기에 당연히 준비가 부족한 젊은 남녀가 만나 함께 세상과 맞서서 하나하나 준비해가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또 “젊은 날의 결혼은 아주 뜨겁기 때문에 빨리 결혼하는 게 좋다”면서 “서로를 원하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사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고 또 아주 신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결혼을 가로막는 요인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 김 전의원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사랑을 했고 새 생명이 태어났다”고 전제, “사회의 책임도 크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해결해야 하고 결혼은 자기가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
최선화 수습기자 sun@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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