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박근혜-최태민, 인도엔 인디라 간디-디렌드라 브라마차리

구글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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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라스푸틴’ 비행기 추락사 후에야 소문도 잦아들어

[아시아엔=닐리마 마투 <아시아엔> 인도 특파원] 정치지도자를 뒤에서 따르는 실력자의 역할은 세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모양이다.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흥미진진하여 소설이라면 단번에 인기도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숨겨진 이야기 역시 이런 류(類)인데 인도에서는 유일한 여성수상인 인디라 간디를 상기시킨다.

인도언론에서는 최순실 및 그녀가 탄핵당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친 영향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보도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순실뿐 아니라 최순실의 부친인 최태민이 사이비종교의 무당으로서 가졌을 영향에 대한 추측도 난무한다.

고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쉽사리 다가갈 수 있었다고 한다. 최태민은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에 유학 중이던 1974년 8월15일 암살당한 박 대통령 모친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나 자신에게 갓 스무살이 넘은 딸을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했다고 박근혜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알려진 것처럼 박근혜는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러들이고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다. 이같은 개인적인 인연을 바탕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부정부패를 일삼을 수 있는 사람은 탄핵이나 실패에 대한 고민을 애초에 하지 않는다.

인도의 경우는 어떤가? 사이비 교인들이 인도의 정계로 진출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우리 인도에도 조금이라도 이름난 ‘자칭 구세주’라고 하는 이를 따르는 정치인·기업인·관료·지역유지 등이 제법 많이 있다.

인디라 간디는 자칭 금욕의 요가 수행자 디렌드라 브라마차리(1925~1994)를 따르고 있었다. 간디는 함께 정치활동을 했던 막내아들 산제이를 가장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산제이는 비행기 조종 특히 곡예비행이 취미였고 한다. 당시 디렌드라 브라마차리는 산제이의 정치적 지지자로서 이미 간디 일가와 어느 정도 가까운 사이였다. 산제이가 비행기사고로 죽은 후 인디라 간디는 아들이자 정치적 동반자를 잃은 외로움에 괴로워 했다. 디렌드라는 이때를 틈타 권력을 노리기 시작했다.

브라마차리는 수상관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힌두교 수도원 아쉬람을 지을 땅과 건축허가를 얻어냈다. 정치권에 조금이라도 줄을 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아쉬람 건축에 기부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 역시 수행자의 요가 수행 지원금을 앞다투어 보내기 시작했다. 브라마차리의 요구에 국방부는 히말라야 군부대에 개인헬기 착륙허가를 내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권력의 정점에서 그는 무기산업에까지 손을 뻗었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이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을 상대하기 위해 요가 선인(仙人)을 보냈다며 농담으로 인디라 간디 수상을 조롱하곤 했다.

당시 세간에는 인디라 간디 정부의 실세는 디렌드라 브라마차리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는 간디 일가의 중심에서 인디라 간디의 정치는 물론 사생활을 쥐락펴락 했다. 산제이가 죽어 과부가 며느리를 무슨 까닭에서인지 흥분해서 쫓아내려던 인디라 간디를 뜰어말린 사람 역시 브라마차리였다.

간디 수상이 권력에서 잠시 밀려나고 간디 정부의 부패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위원회가 건드리는 이슈마다 디렌드라 브라마차리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국내외에 감춰놓은 막대한 재산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개인비행기는 물론 수많은 고급자동차, 각종 불법소유 부동산, 심지어 개인공항까지 자칭 요가 수행자이자 무기판매상으로 그가 누린 부와 권력이 조금씩 세상에 드러났다.

얼마 뒤 브라마차리는 비행기 추락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자 갖가지 음모설이 끊이지 않았다. ‘인도의 라스푸틴’에 관한 이러저러한 구설도 그의 죽음으로 종지부를 찍었다.(번역 윤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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