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Story] ‘최씨고집’ 정성과 신뢰가 빚는 ‘광동경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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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박세준 기자] 경옥고는 예부터 궁중에서 애용되었고 <동의보감> 같은 대표적인 의서를 통해 자세한 처방과 효능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생지황·인삼·백봉령·꿀 등을 3일간 중탕으로 다려서 만드는 약이다. 많은 분량의 약재가 필요하고 만드는 과정 또한 무척 까다롭다. 효능은 다른 처방에 비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우리의 선조들은 무병장수를 위한 가장 귀한 처방의 하나로 경옥고를 꼽았다.

<동의보감>에는 ‘발흑생치’라고 하여 “3년 동안 경옥고를 먹으면 흰머리가 검게 되고 빠진 이가 다시 난다”는 기록이 있다. 경옥고(瓊玉膏)의 경(瓊)은 붉다(아름답다), 옥(玉)은 구슬로 해석되어 ‘아름다운 구슬 같은 고약’이라고 불린다.

경옥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광동제약 창업주 고 최수부 회장이다. 오늘의 광동제약을 있게 한 뿌리가 바로 경옥고다. 평생을 한약제조에 바친 최 회장의 경옥고와 관련해 숱한 일화를 갖고 있다. 그가 지은 <뚝심 경영>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광동제약 창립 전 경옥고 외판원으로 일할 때 얘기다.

경옥고 하나 팔려고 하루에 수백 군데에서 퇴짜를 맞고 나니 어느덧 저녁 해거름이 내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굶어서 배는 고팠지만 다리가 아픈 줄은 몰랐다. 어릴 때부터 하루 30리 길을 걸어 다녔던 저력이었다. 나는 서서히 오기가 발동했다. 이대로 사무실로 돌아간다면 내일도 모레도, 아니 몇 달이 지나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았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 다시 모든 사무실과 상점에 들러 첫 판매를 시도했다. 물론 실패였지만 실망같은 건 하지 않았다. 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어둑해지는 을지로 입구에서 종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좌우로 즐비한 양복점들이 눈에 들어왔고, 언뜻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서울 시내 한복관에서 양복점을 할 정도면 형편이 꽤 괜찮은 사람들일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면 비싼 값이라도 몸에 좋은 약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몇 군데 양복점에서는 역시 실패. 그래도 문전박대하지 않는 걸로 봐선 분명히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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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욱 용기를 내서 다른 한 양복점으로 들어갔다. 을지로 로터리에 있는 ‘미양사’라는 양복점이었다. 점잖게 생긴 사장님에게 꾸벅 인사를 드리고 공손하게 경옥고를 권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약의 효능에 대해서 설명하는 동안 그 사장님이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꽤 오랜 시간 동안이었다.

‘됐다!’ 나는 속으로 탄성을 올렸다. 마침내 8부 능선을 넘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능선이 문제였다. 오늘 하루 종일 겨우 넘을 듯 넘을 듯하다가 결국 넘지 못했고, 가장 험하고 위험한 능선이었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몸을 생각하신다면 결코 비싼 가격이 아입니더.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 아니겠십니꺼! 3개월 할부로 하나 사이소!” 마지막 능선을 앞두고 나는 아예 선제공격을 가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 것이 왔다.

“가격이 얼마요?”

사장님의 질문을 받고 나는 이빨을 악물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대답 했다. “예, 2만환입니더.”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사장님의 눈치를 보았다. ‘혹시나’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다시 한번 경옥고를 자세히 들여다보던 사장님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다음에 생각해 봅시다.”

나는 다리가 휘청거렸다. 이번에는 정말 한 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정말 더 물러날 수도 없었고 물러날 곳도 없었다.

“그러지 마시고 한번 드셔 보이소. 건강을 잃으면 억만 금이 있다 캐도 그기 다 무슨 소용이겠십니꺼? 가격이 좀 비싸다 캐도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카면 이 약값이 억만 금이라 캐도 어찌 비싼 거겠십니꺼? 돈이야 3개월 동안 천천히 나누어 주셔도 됩니더. 만약 효과가 없다 카면 절대로 돈 안 받겠십니더.” 내가 워낙 강력하게 호소를 하자 사장님은 다시 한번 경옥고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연 사장님이 내게 기적을 보여주었다. “좋아요, 하나 먹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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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그 말은 분명히 경옥고 한 개를 사겠다는 뜻이었고, 출근 첫날 점심 저녁도 거른 채 10시간 이상을 끈질기게 돌아다닌, 내 끈기와 고집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사장님께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그분은 내게 기적을 보여준 구세주였다. 그러나 그 구세주가 보여준 기적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장님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덧붙이는 것이었다. “아, 그리고 이왕 먹을 거면 나 혼자 먹을 수 있나! 우리 마누라 것까지 두개 주시오.”

마침내 경옥고를, 그것도 한꺼번에 두 개씩이나 팔고 양복점을 나오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고생한 것이 서러워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그 순간이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흘린 눈물이었다. 나는 기적을 보여준 그 양복점 간판을 다시 한 번 올려다보았다. 내 끈기가 헛되지 않았음을 가르쳐준, 소중한 그 장소를 평생 잊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최수부 회장이 1963년 10월 16일 광동제약을 창업해 생산·공급했던 첫 제품이 바로 경옥고다. 최수부 회장은 정직과 신용, 그리고 성실을 바탕으로 경옥고 판매신기록을 만들어냈고, 영업사원 생활 1년만에 대리점 사장이란 직책도 갖게 된다. 영업사원 생활과 대리점 운영을 통해 경옥고의 약효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 회장은 최고 품질의 경옥고를 위해 직접 약재를 고르고, 좋은 약재를 못 구하면 생산을 중단했다.

광동제약이 생산한 경옥고는 1980년대 초 ‘개풍경옥고’라는 이름을 달고 일본으로 수출됐다. 의약품 수출이 활발하지 못했던 당시 경옥고 수출은 한국의약품 역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이후 광동제약은 한 해 경옥고 수백만 달러어치를 일본에 수출하며 세계로 진출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약사들을 중심으로 경옥고를 연구하는 모임인 ‘경옥회’가 구성돼 2012년 내한해 광동제약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들은 광동경옥고의 뿌리가 된 ‘최씨고집’을 일본의 장인정신과 비교하며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광동경옥고는 동의보감의 전통 방식을 바탕으로 인삼, 복령, 생지황, 꿀 등의 약재를 원료로 섭씨 98도에서 120시간(5일)을 달이는 증숙 과정을 거치는 등 총 3주간의 노력과 정성을 통해 만들어진다. 광동경옥고는 공복에 복용해야 효과가 좋다. 경옥고는 순수 식물성 생약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숙성된 경옥고는 아무 탈 없이 흡수가 잘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은 식전에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으므로 식전 또는 식간에 경옥고를 복용하면 더욱 좋다.

광동경옥고는 반세기 넘게 입증된 뛰어난 효능을 현대 감각의 디자인으로 국내외 시장에 선을 보이고 있다. 검정색 바탕에 전통의 동양적 패턴을 엠보싱해 넣고 전통적 캘리그라픽 금색 궁서체와 도장(직인)을 찍은 디자인이다. 정통성과 명품 이미지의 조화인 셈이다.

선대 회장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최성원 대표는 ‘휴먼헬스케어 산업을 선도하는 초일류 제약기업의 실현’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 경옥고의 브랜드스토리가 최수부-최성원의 ‘뚝심경영 대물림’과 어떻게 매칭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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