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6역 여성발명협회 조은경 회장 “여성발명가 글로벌기업 주역 되도록 성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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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인터뷰 이상기 기자·정리 이송이 기자, 사진 다손 제공] 조은경 한국여성발명협회 회장은 벌써 수년째 ‘1인다역’(一人多役)을 매끄럽게 해내고 있다. 그가 공식적으로 맡고 있는 일만 해도 여성발명협회 회장 외에 △다손 대표이사 △연세대 생명공학과 겸임교수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대한과학기술단체대연합 홍보위원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감사 등 6개에 이른다. 이 정도 되면 입에 “힘들어” “죽겠어”를 넘어 “못해 먹겠어, 정말.” 할만도 한 데 그의 얼굴엔 늘 차분함과 단호함이 배어 있다.

기자는 국내 최고령 발명가 중 한명이며 한국여성발명가협회를 창설해 현재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하상남(90) 전 회장 소개로 지난 3월12일 첫 만남 이후 두 차례 인터뷰했다. 하 전 회장은 “조은경 같은 후배 없어요. 진실되고 회원들 일을 자기 일처럼 돌보거든. 꼭 인터뷰해서 아시아엔 독자들한테 소개해줘요” 했다.

3월 17일 서울 역삼동 한국지식센터 17층 협회 사무실에서 두 번째 만나 인터뷰하던 날은 이세돌이 알파고와 ‘결전’을 막 마친 때였다.

바둑 봤나? 인공지능(AI)도 발명영역 아닌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까?
“마지막 4, 5국을 봤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로봇 등을 보조수단으로 쓰면 무척 유용하고 크게 발전할 것 같다. 또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3차원(3D) 프린팅, 줄기세포 치료, 나노기술, 합성생물학, 환경과학, 인공지능 기술 등 첨단과학까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발명은 어느 수준에 와있나?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서 2015년 3월 발행한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2013년 총 4개의 산업재산권(특허, 실용신안, 상표, 산업 디자인)에서 20만4589건의 특허가 출원돼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출원도 세계 5위를 차지한다.”

조 회장께선 개인적으로 특허를 몇 건 내셨나?
“저희 회사는 1년에 20건 정도 낸다. 우리 회사는 민간R&D전문회사이기 때문에 많은 편이다.”

조은경 회장은 연세대 공대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창업을 했다.

특이한 경력이다. 정년 보장되고 봉급 또박또박 나오는 대학 왜 떠나 고생을 사서 했나?
“대학에선 학생들 정말 열심히 가르쳤다. 실험할 때도, 박사과정 때도 연구를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보통 3년 내지 5년 이상 돈과 시간, 노력을 쏟아 부어 연구를 하고 나면 거의 모든 연구결과가 실용화 되지 못하고 보고서나 논문으로만 끝이 나더라. 박사과정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실험에 사용하는 시약이나 실험기구를 못 만들어 모두 외국에서 수입한 정밀 기구를 사용했는데 한 번 쓰고 버리는 조그만 플라스틱 팁 하나도 엄청나게 비쌌다. 그렇게 투자해서 이루어낸 연구 결과를 활용하지 못하다니…. 그래서 97년 개인 연구소를 열었다. 내친 김에 창업도 했다.”

그는 창업을 결심하기 전 꾼 꿈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꿈속에 강남대로처럼 큰 길을 혼자 걷고 있는데 눈앞에 뚜껑이 열려 있는 커다란 맨홀이 있고 그 속으로 100달러짜리 지폐다발 수십개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 어둠 속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내가 연구소에서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거였구나 생각했다. 엄청난 돈을 하수구에 처넣는 일을 나만 아니라 전국의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하고 있었던 거다. 그때부터 방향을 틀어 기업에서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산업현장 중심의 기술 및 소재, 제품 개발 등을 하는 실용화 연구를 하게 되었다. 기업의 요구를 파악하고 문제를 공유하여 정보를 제공하고 기술 및 공정, 제품 개발 등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산학연 협동연구다.”

조 회장 목소리가 높아졌다. “실험실에서 아무리 좋은 연구결과가 나와도 산업 현장에 맞게 수정 보완해주지 않으면 작은 규모의 실험결과를 큰 규모의 공장 설비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회사에 전문 연구 인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 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받아 그대로 산업현장에 적용하다가 안 되면 포기해버리고 사업화하지 못한다.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정부에서는 매년 수조원을 투자하여 국가 R&D를 지원하는데 실질적 성과가 왜 안 나오나, 이렇게 엄청난 연구자들이 연구하는데 왜 성과가 안 나오나 묻는다.”

그의 계속되는 설명이다. “강의 시간에 연구 시작단계부터 사업화 가능성을 생각하여 연구목적을 잡고 연구계획을 세울 때도 관련 특허를 분석한다. 그리고 시장조사, 소비자 니즈 분석, 논문 분석 등을 통해 기존 연구와 차별화되고 효율적이며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연구를 추진할 것을 조언한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거의 2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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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연구 흐름자체가 바뀌었다. 원래 생각했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부의 R&D 지원도 산업현장 중심의 실용화 R&D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2~3년 전부터 조금씩 빨라진 것 같다.”

조 회장이 창업해 경영하는 회사이름이 ‘다손’이다. 특이하고 좋다.
“이름 짓는데 한 달 걸렸다. 사업자등록을 하려면 회사 이름이 필요한데 고어사전을 뒤지다가, ‘다손’을 보니 ‘정성 가득담은’, ‘사랑 가득담은’ 같이 쓰여 있더라. 순우리말인데 영어로는 DASON이라고 썼다. ‘Desire and Science of Nature’라고 해서 쓰고 있다. ‘자연의 바램과 과학’이라는 뜻이다. 인위적으로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순응해 잘 이용하자는 거다.”

주로 식품쪽인가?
“식품쪽이 많고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에 사용하는 생물 소재 및 기술 등을 연구한다. 요새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있는 친환경제품 컨셉을 20년 전 시작한 거다. 예를 들어 가공식품은 제조과정에서 열을 많이 사용해 원료 고유의 색과 향, 맛 등이 사라지거나 변한다. 그래서 가공 후 인공색소나 합성향료, 맛 성분 등 첨가물을 넣어 다시 천연물과 유사한 상태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다손은 사업 초기부터 원료의 형태나 성상을 가능한 한 원래대로 지닐 수 있도록 기술과 제조공정 개발에 목표를 뒀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사과주스를 만들 때 사과를 분쇄하여 착즙하는 동안 공기 중의 산소를 만나 산화되어 갈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가열하여 농축액 형태로 만들어 보관하는데 이때 곰팡이나 세균 등이 번식하여 부패되지 않도록 설탕을 넣는다. 그러면 농축하는 동안에 사과 향과 맛이 다 날아가고 그냥 설탕물 졸인 것 같은 농축액만 남는다. 사과주스 주문이 들어오면 농축액 좀 넣고 예컨대 6% 넣고 물을 섞고 희석한 다음 합성향료와 색소를 넣으면 과일주스가 된다. 그리고 유통기간을 늘리기 위하여 다시 열로 살균하고. 그걸 과일주스라고 판매하는 데 인공첨가물을 넣어 만드니 향도 색도 다른 게 된다. 다손은 진짜 사과를 갈아서 집에서 주스를 만들어 먹을 때와 같은 생과일주스를 만들겠다고 덤볐다. 집에서처럼 주스를 갈아서 만들면 냉장고에 넣어도 3일후면 상한다. 그런데 상품으로 유통시키려면 적어도 20일 이상은 부패되지 않아야 상품가치가 있다. 일반적으로 상하지 않게 하려면 열로 균을 다 죽여야 하는데 그러면 벌써 생사과주스 하고는 전혀 다른 찐 사과주스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우리가 열을 쓰지 않는 비가열 살균법으로 균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거다. 미생물도 사람처럼 1기압에서 사니 미생물을 죽이려면 기압을 높이면 된다. 색도 안변하고 가정에서 만든 생사과주스처럼 만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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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손은 그런 공정을 개발해서 파는 것으로 보면 되나.
“그렇다.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 국가의 연구용역을 받아 새로운 기술이나 소재, 제조공정 등을 개발하여 특허를 내고 이를 기술이전하여 기술료를 받거나 매출 로열티를 받는다.”

그렇게 만든 제품이 어떤 게 있나?
“과거에는 친환경 매장이 없었는데 유기농, 친환경 매장이 생긴 게 10년 정도 됐다. 초록마을, 생협, 올가, 한살림 등 친환경 전문샾이 생겼다. 이런 곳에 농축수산물 등의 원물 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판매할 경우 생물이어서 쉽게 부패하고, 시들어 관리가 너무 힘들다. 유통기간이 길수록 안심하고 판매할 수 있다. 사업 초창기에 친환경 원료를 사용하여 가공식품을 개발하는 일을 풀무원, 생협, 초록마을 등과 함께 하여 친환경 가공식품 등을 개발하였다. 과일주스 한잔에 100원 할 때 생과일주스는 2500원 해도 산다. 요즘에는 식사 안 하고 이걸로 대신하고, 흐름이 달라졌다. 비싸도 마니아들이 생긴 거다.”

대화는 다시 여성발명가 얘기로 돌아갔다. 조 회장은 “여성들이 의식주를 주관하다 보니 생활 속에서 불편하거나 부족한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며 “일반인들은 잠깐 생각하다 흘려버리지만 이러한 문제점을 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해결책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바로 여성발명가들”이라고 했다. 그는 “여성발명가들은 사랑과 배려, 모성애를 바탕으로 제품을 창조하는 까닭에 대중성과 시장성이 매우 크다”고 했다. 조 회장은 여성발명품을 일일이 열거했다. “스팀청소기, 소형 공기청정기, 음식물쓰레기 건조기, 밤길보행 보조용 LED 지팡이, 어린이 외출용 휴대변기, 식재료 탈착이 용이한 냉동용기, 전통 자개기법 활용 화장품 용기 등등….”

여성발명협회 회원은 몇 명인가?
“발명기업인들만 700명 가량 된다. 초등학생부터 구순 노인까지 분야와 연령이 다양하다. 80대 노인분이 설거지 하다가 비눗물 묻은 손으로 수도꼭지 잠갔다 열었다 하는 것이 불편하여 방법을 찾다가 싱크대 밑에 페달을 달아서 발로 조작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20년 가까이 된 일이다.”

수돗물 잠그는 페달 발명하신 분은 돈을 벌었나?
“대기업에서 영세한 발명가에게 특허를 이전 받을 때 경제적 가치를 매우 낮게 산정하여 사가려고 한다. 다행히 요즘은 전문 기술가치평가 기관이 생겨서 기술에 따른 경제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기술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물론 평가 전문 인력양성이 아직 미흡하지만 아예 없던 때보다는 낫다.”

회원 가운데 기업가로 성공한 분이 많다고 들었다.
“스팀청소기를 만든 한경희생활과학 한경희 대표, 소형 공기청정기를 개발한 (주)에어비타의 이길순 대표, 음식물쓰레기 건조기를 만든 (주)루펜리의 이희자 대표, 프랜차이즈를 처음 시작한 놀부보쌈 김순진 대표, 김치명인 한성식품 김순자 회장, 현대적 디자인에 전통 자개기법을 활용하여 화장품용기나 신용카드, 네일아트 등의 제품을 개발한 진주쉘의 이영옥 대표, 일회용 청소용품을 개발한 (주)크린아이의 송영심 대표 등이 회원이다.”

여성발명가협회 제8대 회장인 그의 최근 바람은 두 가지란다. 하나는 여성발명제품 전시홍보관 건립이며 다른 하나는 6월 중순 열리는 2016세계여성발명경진대회 및 여성발명품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거다. “회원들이 좋은 발명품을 내놔도 판매 루트가 없어 애를 먹고 있다. 회원이 1년에 한 개씩만 개발해도 200~300개인 데 이것을 팔 수 있는 곳은 커녕 바이어를 만날 기회조차 없다. 그래서 바이어들과 일반인들에 알릴 홍보전시관 설립을 위해 특허청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6월 중하순 큰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2016대한민국 세계여성발명경진대회 및 여성발명품박람회가 6월16일부터 6월 19일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공식 후원하는 국제대회로 국내외 여성발명가 300명 이상과 국제기구 인사들이 참석한다. 올해 주제는 ‘마음을 깨우는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다’(Heart breaking idea changes the world)로 정해졌다. 지식재산 강국으로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국내외 여성발명인과 기업인, 나아가 초중고, 대학생들이 발명에 대해 어려서부터 체험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구현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세계여성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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