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더한 막장드라마···태국 ‘라콘’, ‘성폭력’과 ‘로맨스’의 아슬아슬 외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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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열정의 불꽃’ (Unending Fire of Passion)의 한 장면<사진=유투브 캡쳐>

[아시아엔=최정아 기자] 아버지가 자살했다.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아버지를 자살하게 만든 일가족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수년 후 주인공은 아버지를 죽인 이의 딸을 ‘성폭행해’ 약혼녀로 삼는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게 그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지난해 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끝없는 열정의 불꽃’(Unending Fire of Passion)의 줄거리다. 이런 줄거리는 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레퍼토리로, 지난해 ‘사랑의 노예'(Slave of Love) ‘야수의 사랑열꽃'(Love Fire Of The Beast) ‘복수의 쓰고 달콤한 약속'(Bittersweet Promise of Revenge) 등 복수와 사랑을 다룬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다.

태국 드라마에선 여자 주인공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성이 강제로 입맞춤 하거나 육체관계를 맺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 속 가해자 성폭행범으로 검거되는 일은 없으며, 피해자 또한 성폭행을 당했다고 해서 괴로워하지 않는다. 이는 태국 드라마들이 시청자의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성폭행과 로맨스를 교묘히 결합시켜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끝없는 열정의 불꽃’ 예고편은 이같은 태국드라마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처럼 사랑과 복수를 주요 소재로 다루는 태국식 드라마를 현지에선?’라콘'(Lakorn)이라 부른다. 태국 방콕에 사는 직장인 핑쿠 씨는 “복수와 사랑극을 소재로 한 태국드라마가 꽤 인기 있다”며 “그러나 대체로 스토리 라인이 비슷해 젊은 층들이 즐겨보진 않는 편”이라고 밝혔다.

진부한 스토리에 자극적인 소재로 점철된 태국판 막장드라마 라콘. 드라마 주 시청층인 젊은 층들에게도 어필하지 못함에도 꾸준히 제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태국은 인터넷·케이블 채널이 보급화되고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이 다양화되면서, 드라마 채널 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때문에 태국 드라마 제작사들이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기 위해 성폭행, 복수극, 치정 등 더욱 자극적인 요소들을 가미하고 있다. 특히 세계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가 태국 서비스를 런칭하면서, ‘막장드라마’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방송국 간 시청률 경쟁으로 드라마의 성적인 수위가 더욱 높아지고 있지만, 태국 당국의 규제는 미미하다. 태국 미디어 학자들은 “태국 방송통신위원회(NBTC)에서 도덕성·공공성에 대한 방송심의규정을 제정했지만, 논란의 드라마들에 대해선 항상 모호한 판결을 내리곤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일각에선 드라마가 성폭행과 성희롱을 ‘애정행위’로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성폭력을 미화하는’ 태국의 사회풍토를 비판하고 나선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니티판 위프라위트다. 이 캠페인은 한 초등학교에서 남학생들이 걸스카우트 여학생을 단체 성폭행한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가해자 남학생의 학부모들은 ‘내 아들은 죄가 없다’며 여학생을 비웃은 사실이 알려져 태국 사회를 분노케 했다.

위프라위트는 “방송에선 성폭행이 범죄라고 보도하지만, 정작 드라마에선 성폭행이 미화되고 있는 것이 태국 현실이다”라며 “성폭행 장면이 성폭력 지수와 연결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성폭행 장면이 하나의 오락거리로 이용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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