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 총무원장 민노총 기자회견 간결·정확 메시지 ‘포정해우’ 고사성어 떠올려
[아시아엔=고영일 ‘고바우영감 월요통신’ 운영자, 공인회계사]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의 조계사 농성 때 경찰과 민노총의 집단 충돌사태의 결정적 고리를 풀어준 불교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에 대해 세간에 여러 이야기가 있다.
총무원장의 기자회견 때 발언은 아주 간결했고 정확한 전달 메시지 그리고 그 말씀에 내재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이 시대에 필요로 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덕성도 말의 성찬이 아닌 실천력과 믿음에 있다고 본다.
‘고바우영감 월요통신’은 장락서원 훈장이자 포스코전략대학 석좌교수인 박재희 교수의 ‘고수는 칼날을 보이지 않는다’를 인용해 자승 총무원장의 기자회견을 다시 돌아보고자 한다.
고수(高手)는 칼날을 보이지 않는다
포정해우(?丁解牛)란 고사성어를 아십니까? 포정(?丁)이란 전국시대 백정이 기가 막히게 소를 잘 잡았다(解牛)는 데서 유래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포정이 궁정에서 소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소를 잘 잡았는지 포정이 칼을 움직이는 동작이 신기에 가까웠습니다.
그 모습을 본 문혜왕은 너무 감탄하여 포정에게 “어떻게 하면 소 잡는 기술이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포정은 칼을 놓고 왕에게 이렇게 말했죠.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의 겉모습만 보였습니다.
3년이 지나니 어느새 소의 겉모습은 눈에 띄지 않고 소의 내면이 부위별로 보이게 되더군요. 그리고 또 19년이 지난 요즘 저는 눈으로 소를 보지 않습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소의 살과 뼈 근육 사이에 틈새 속을 봅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칼을 지나갑니다. 이런 기술로 아직 한 번도 칼질을 실수하여 살이나 뼈와 부딪힌 적이 없습니다.
솜씨 좋은 백정이 1년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칼을 가지고 소의 살을 베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이는 칼로 무리하게 뼈를 가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 칼은 19년이나 되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소의 뼈와 살 근육 사이에는 어쨌든 틈새가 있기 마련이고 그 틈새로 칼날을 집어넣어 소를 잡기 때문에 칼날은 전혀 무뎌지지 않는 겁니다. 이것이 19년이 되었어도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이것이 저의 소를 잡는 방법입니다.”
<장자> ‘양생주편’(養生主篇)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포정은 소 잡는 기술의 최고 경지에 오른 높을 고(高)자 손 수(手)자 고수입니다. 그는 소라는 동물의 이치를 체득하고 그 원리를 깨달은 백정이었던 거죠. 처음 백정이 되었을 땐 그저 소리만 요란하게 소를 잡겠다고 대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과 노력의 결과로 경지에 오른 고수가 되었을 때 그는 소의 겉모습이 아닌 뼈와 살 사이에 있는 공간의 이치를 보았던 것입니다. 비록 소 잡는 일이든 어떤 일이든 경지에 오른 고수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손자병법에서도 경지에 오른 장군의 모습에 대하여 자주 말하고 있습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고수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첫째 고수(高手)에게는 바람 같은 빠르기와 태산과 같은 무게가 있습니다. 전쟁에 임하여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군이 땀을 흘리며 쩔쩔맨다면 승리는 고사하고 병사들의 신뢰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태산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 무게로 자리를 지키는 리더의 모습은 언제보아도 든든합니다. 또한 절박한 상황에서는 바람처럼 빠른 판단력과 추진력은 산전수전(山戰水戰) 모두 겪은 리더에게서만 나오는 돌파력입니다.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가케무샤>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앉은 자리 뒤 깃발에 보이는 손자병법의 명구는 고수의 모습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其疾如風 빠르기는 바람과 같고, 其徐如林 천천히 움직이는 것은 숲과 같구나, 侵掠如火 기습 공격은 불과 같고, 不動如山 움직이지 않는 것은 마치 산과 같구나!”
정말 믿고 따르고 싶은 리더의 모습입니다.
둘째, 고수는 자신의 칼날을 남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강태공. 그는 낚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나라 장군이었습니다. 강태공(姜太公)은 고수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과 다툴 때 번쩍거리는 칼을 쓴다면 진정한 고수가 아니다.(爭勝于白刃之口, 非良將也)”
하수들이나 싸울 때 번쩍거리는 칼을 들이대며 온 세상 사람들 모두 보란 듯이 싸웁니다. 그러니 아무리 승리를 해도 그 승리 뒤에는 갈등과 원망이 남을 수밖에 없는 거죠. 고수는 조용히 싸웁니다. 고수는 승리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상대방이 원한을 가질 수 없는 거죠. 내가 이긴 사람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진정한 고수의 모습입니다.
셋째, 고수는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갈 길을 자신이 직접 선택합니다. 손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룬 전쟁에서의 승리가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는 승리라면 최고 중의 최고의 승리는 아니다.(戰勝而天下曰善, 非善之善者也)”
고수는 다른 사람들의 환호를 받기 위하여 승리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를 따르는 저 부하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전쟁에 나섭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군주의 칭찬이 아니라 병사들의 생사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고수는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비범함이 있습니다. 고수의 식견과 예측은 일반인들이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손자병법에 “전쟁의 승리를 바라보는 예측이 일반 사람들의 인식 수준을 못 넘어선다면 최고 중의 최고의 고수는 아니다.(見勝不過衆人之所知, 非善之善者也)”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수는 자신의 전술을 병사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의 안목과 식견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리더는 언제나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이 고독까지도 즐길 줄 알아야 진정 고수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고수의 모습 즉 때로는 바람 같은 빠르기와 태산 같은 무게, 칼날 밖으로 보이지 않는 신중함,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에 연연하지 않는 소신, 일반인을 상식을 뛰어넘는 식견과 고독을 즐기는 여유가 바로 고수의 경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