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의 생태동화] “아침잠 깨운다고 탓했던 직박구리야, 네가 우리들 은인이구나”

다운로드2다운로드[아시아엔=권오준 생태동화작가] 지난 겨울이었다. 남한산성을 오르고 있는데, 산새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작고 앙증맞은 박새들이었다. 박새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단풍나무에 앉았다. 먹잇감인 단풍나무 열매가 땅바닥에 있는데, 나무줄기에 계속 날아앉는 게 좀 이상했다. 더 가까이 다가가 몸을 숨기고 지켜보았다. 놀랍게도 박새는 나무줄기에서 흘러내리는 수액을 마시고 있었다. 곧이어 오목눈이가 날아왔고, 곤줄박이와 동고비까지 와서 수액을 빨아먹었다. 바로 옆 간벌한 단풍나무에는 겨울철새 되새가 들러붙어 수액을 쪽쪽 빨아먹고 있었다.

궁금한 게 생겼다. 산새들은 그 많은 나무 가운데 왜 하필 단풍나무를 골랐을까? 알고보니 단풍나무는 당분이 다량 함유된 나무다. 우리가 봄철에 수액을 채취하는 고로쇠나무도 단풍나무와 함께 단풍나무과의 나무다. 당연히 당분이 풍부하다. 우리 사람들이 고로쇠나무 수액을 먹은 게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단풍나무 수액 먹기는 산새들이 대선배일 게 분명하다. 단풍나무는 숲속 나무 가운데 표피가 가장 얇다는 사실을 알았다. 만일 수액이 아무리 맛있고 영양분이 많아도 표피가 두꺼운 소나무나 참나무라면 수액을 빨아먹는 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새들은 인간이 수액을 받아먹기 훨씬 이전부터 그걸 겨울철 먹이로 이용해왔을 테니, 나무에 관해서도 선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궁금한 게 있었다. 아니, 단풍나무에 대체 누가 흠집을 내놓는 거지. 단풍나무의 사람 키 높이에는 작은 흠집이 서너 개 나 있었다. 분명 새의 짓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부리 단단한 딱따구리? 하지만 딱따구리가 수액에 관심있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동고비? 동고비는 먹이욕심이 많은데다가 부리도 아주 날카로우니 용의선상에 올렸지만 흠집을 자세히 보고는 제외시켰다. 흠집의 크기로 보아 더 큰 부리를 가진 새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게 어떤 녀석이지?

대구수목원에서 그 주인공을 찾았다. 바로 텃새 직박구리였다. 직박구리야말로 산새들 가운데 먹이욕심이 가장 강한 새다. 녀석은 안먹는 열매가 없을 정도로 식탐이 대단하고 열매를 가리지 않는다. 직박구리는 호기심도 많다. 아마 어느 날 단풍나무에서 수액이 조금 흐르는 걸 보고 부리로 찍어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맛을 보니 달달한 게 괜찮고 든든하기까지 하다. 뭐 이런 과정을 통해 직박구리가 겨울철 본격적으로 단풍나무 수액을 먹이로 삼은 게 아닐까 싶다.

직박구리의 시끄러운 울음소리 때문에 아침잠 깬다며 볼멘소리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직박구리는 야단을 맞을 새가 아니다. 우리가 아끼고 사랑해주어야 하는 텃새다. 직박구리가 없었다면 겨울철 갈수기 산새들의 목마름을 누가 해결해줄까? 어디 그뿐인가. 다양한 열매를 먹고 여기저기 똥을 싸서 그 씨앗으로 울창한 숲을 만들어주고 있는 게 바로 직박구리이니 말이다. 직박구리는 산새들뿐 아니라, 우리 인간의 은인이기도 한 셈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