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20년 고위공무원의 제2의 삶 설계에 갈채를···동장에서 공정위 간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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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의 가난한 목수의 네째 아들로 태어나 면서기를 하려고 고향의 진교농업고등학교에 들어 갔습니다. 이때부터 공부에 맛이 들어 부산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행정고시의 길에 들어섰다가 죽도록 고생하였습니다. 1994년 합격후에 내무부를 거쳐 부산으로 내려가 면서기가 아닌 동장으로 공무원 생활을 본격적으로 했습니다. 이후 구청의 청소행정과장, 부산시청 정보기획계장 등을 하다가 지방행정보다는 중앙정부에서 일해보고 싶어서 2003년 10월에 공정거래위원회로 전입했었지요.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만 20년 공직생활을 스스로 벗어나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고위공무원이 있다. 이경만(50) 국민권익위 신고심사심의관이 바로 그다. 기자는 29일 아침 그가 매일 아침 지인들에게 보내는 ‘지식비타민’ 뉴스레터를 받은 뒤 “터널에서 광장으로 나온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답했다.

기자는 이 심의관이 청와대 행정관으로 재직중이던 2011년 여름 한 일간지에 실린 인터뷰를 읽고?그와 통화한 후 4년 가까이 교류하고 있다.

그는 늘 “공정한 경쟁은 지식의 평등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오늘 7월7일 ‘공정거래연구소’를 열어 중소기업과?벤처기업?등에 대한 상담과 연구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다음은 그가 29일 아침 뉴스레터를 통해 보낸 이메일 퇴임사 전문과 인터뷰 기사 링크다.

공무원 생활 20년, 마감하면서

공무원을 그만두었습니다. 1994년 행정고시 합격후 공무원 생활 20년이 되던 지난 4월 17일에 명예퇴직을 신청하였고, 바로 어제(28일) 날자로 사표가 수리되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신고심사심의관을 끝으로 공직을 마감했습니다. 앞으로 10년을 더 공무원 생활을 할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자고 결심하고 과감하게 사표를 냈습니다.

내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잘 다듬어진 북한산 같은 곳을 가는 길이요, 또 하나는 높고 험한 에베레스트산과 같은 곳에 가는 길입니다. 어느 길로 갈 것인지 지난 수년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드디어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20년 뒤에 어제의 선택이 잘되었다라고 만면의 미소를 뛰고 회상할수 있기 바랍니다.

향후에는 공정거래연구소를 운영하면서 하도급, 유통, 프랜차이즈 정책 및 사건 등의 자문, 중소벤처기업 컨설팅, 정책개발 및 잇슈화 등을 하려고 합니다. 이쪽 분야 최고의 권위자로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전문가로 활동 하면서 우리나라의 기업생태계를 건강하게 할 것입니다. 중소기업이 잘 되는 나라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남은 인생을 집중하고자 이런 결단을 내렸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지식비타민도 더욱 세련되고 적극적으로 보급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사장 300만명이 보고 싶은 지식컨텐츠 유통 플랫폼을 만들 것입니다. 당초에 목표로 했듯이 지식비타민이 우리나라 경제를 부흥시키는 지적파이프라인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경남 하동의 가난한 목수의 네째 아들로 태어나 면서기를 하려고 고향의 진교농업고등학교에 들어 갔습니다. 이때부터 공부에 맛이 들어 부산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행정고시의 길에 들어섰다가 죽도록 고생하였습니다. 1994년 합격후에 내무부를 거쳐 부산으로 내려가 면서기가 아닌 동장으로 공무원 생활을 본격적으로 했습니다. 이후 구청의 청소행정과장, 부산시청 정보기획계장 등을 하다가 지방행정보다는 중앙정부에서 일해보고 싶어서 2003년 10월에 공정거래위원회로 전입했었지요.

이후 공정위 하도급개선과장, 가맹유통과장 등 주로 대중소기업관련 조사와 정책업무를 많이 했습니다. 이후 미국 워싱턴 DC의 Howrey 로펌에서 공부하면서 우리나라의 기업생태계를 분석하고 중소기업의 생존전략을 제시한 “거래의 7가지 함정”이라는 책을 출간해서 지금도 서점에서 팔리고 있는 스테디 셀러가 되었습니다. 귀국 후 청와대로 파견을 갔습니다. 국정과제비서관실에서 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개선을 만들고자 2년을 보냈습니다. 복귀해서는 OECD 대한민국정책센터 경쟁정책본부장으로 있다가 국민권익위원회 신고심사심의관(고위공무원)으로 임용되었고, 이를 끝으로 공직에서 내려 왔습니다.

그간 지식비타민에서 “내가 잘할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해서 이곳에 집중하라고 말해 왔죠. 이제 제가 실천을 했습니다.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지식비타민의 애독자들이 있으니 두려울 게 없습니다. 집중하면 됩니다. 세상에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풀며서 살아가겠습니다.

20년의 공무원 생활을 명예롭게 퇴직할수 있도록 제게 따뜻한 성정과 자기관리의 절제를 할수 있도록 해 주셨던 3개월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의 영전에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어머님께서 옛날 부엌에서 “언덕은 내려봐도 사람은 내려보지 말라,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면 내 눈에는 피눈물 난다”라고 하신 말씀은 오늘도 저의 삶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또한 형님과 누님, 주위의 친구들, 지인들, 각종 포럼의 회원들, 부산시와 공정위, 청와대, 권익위 등 공무원 동료분들께도 그간 많은 도움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미국에 있는 아내와 아들, 딸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더구나 딸과 손주들을 미국에 보내고 항상 그리워하고 염려하셨던 장인 장모님과 처가 식구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일때마다 저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께도 영광을 올립니다.

2015년 4월 29일?이경만 배상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24/20120724031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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