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 기자의 고전에세이] 베토벤을 구한 플라톤

[아시아엔=차기태 기자] ?”악마가 나의 귀에 거처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행복할 뿐만 아니라 가장 행복한 사람일 텐데. 인간이 하나라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동안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해서는 안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네. 그것도 바로 내 자신의 손에 의해서!”

1810년 5월 오스트리아의 비인에 있던 ‘악성’ 루트비히 베토벤이 자신의 고향인 독일의 본으로 오랜 친구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심한 청각장애로 괴로워하던 베토벤이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했음을 내비친 것이다. 그렇지만 자살을 해서는 안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기 때문에 굳건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베토벤은 실제로 1802년 한때 자살하겠다고 마음 먹고 동생들 앞으로 유서를 써놓기도 했다. 바로 유명한 ‘하일리겐쉬타트의 유서’이다. 그렇지만 베토벤은 자살하지 않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창작활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런 결심을 갖게 한 것은 바로 ‘어디선가 본 그 글’ 때문이었다.

베토벤은 정규교육을 별로 받지는 못했지만 플라톤을 비롯한 고대철학과 계몽사상 등을 평소에 꾸준히 접하고 탐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독서와 탐구를 통해 이상주의적 생각을 마음에 품었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의 제3번 <영웅교향곡>이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 부수음악 <에그몬트> 등이 베토벤의 ‘이상주의적’ 사고를 엿보게 한다.

이렇듯 절체절명의 위기와 극도의 절망감 속에서도 베토벤의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든 것은 어떤 책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고대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의 철학저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소크라테스 최후의 날에 옥중에서 있었던 철학적인 대화를 소재로 서술한 <파이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파이돈>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살을 해서는 안된다고 소크라테스가 강조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자 함께 있던 제자 케베스가 소크라테스에게 다시 묻는다. 자살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라면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의 뒤를 기꺼이 따르려 할 것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야 하는가를.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사람의 몸을 감옥에 비유하면서 아무도 거기서 자신을 풀려나게 해서도 안되고 몰래 도망가서도 안된다고 다시 이야기한다. 그 이유로 인간은 신의 소유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이 어떤 ‘필연’을 내려보내기 전에는 먼저 자신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죽음이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지혜로우며 훌륭한 신들의 곁으로, 그리고 훌륭한 사람들 곁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해 낙관적인 희망을 갖고 있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진정으로 철학(지혜에 대한 사랑 philosophia)으로 생애를 보낸 사람은 내가 보기에 는 죽음에 임하여 확신을 갖고 있으며, 또한 자기가 죽은 후에는 저승에서 최대의 좋 은 것들을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에 차 있을 것이 당연하네. ?-플라톤 <파이돈>

요컨대 참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 즉 철학하는 사람들은 죽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를 맞이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혼이 몸에서 벗어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특히 철학자들은 혼이 몸과의 결합상태에서 최대한 벗어나게 하는 사람들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날 이렇게 감옥에서 케베스와 심미아스 등 자신을 찾아온 제자과 철학에 관해 장시간 대화를 나눈 다음 아테네 당국에서 내려준 독미나리즙을 마시고 세상을 하직한다.

결국 고대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이 남긴 메시지, 즉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살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이 2천년도 더 지난 후에 ‘악성’에게 삶과 창작의 의지를 되살려준 셈이다. 베토벤이 이 때 스스로 삶을 마감하지 않고 이어가면서 더 많은 명곡을 지어낸 것은 인류를 위해 더 없이 다행한 일이었다.

베토벤은 그후 1827년까지 살면서 많은 위대한 작품을 작곡했다. 만약 베토벤이 때이르게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면 오늘날 우리 인간는 그의 제7번교향곡이나 제8번교향곡, 제9번합창교향곡도 들을 수 없게 됐을 것이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칸타타 <장엄미사>도, 영혼의 은밀한 대화 같은 현악4중주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얼마나 공허한 삶이란 말인가?

그러므로 비범한 영혼을 가진 음악가에게 그 영혼의 힘을 일깨워준 플라톤의 비범한 저작을 새삼 다시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시간의 바다를 넘어 인간의 영혼을 움직이는 위대한 철인의 지혜요 힘이라고 하겠다. ? /미술작품을 곁은 에피소드 서양문화사, 단테의 신곡 에피소와 함께 읽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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