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몰 협상성공 키워드5…유연한 원칙·외부청탁 배제 등

박영배 코엑스몰 대표이사

박영배 코엑스몰 대표이사 <사진=코엑스몰 제공>

작년말 ‘그랜드오픈 주역’ 박영배 코엑스몰 대표이사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코엑스몰의 박영배(55) 대표이사만큼 2015년 새해를 가벼운 마음으로 맞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2014년 초 사장이 된 후 11월27일 코엑스몰이 새로 단장하여 ‘그랜드오픈’하던 날, 그는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리모델링하면서 3년반 동안 겪은 숱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어요. 10년 이상 코엑스몰을 지켜준 임차인들과의 기나긴 협상이 진짜 종지부를 찍었구나 생각하니 코끝이 찡하더라구요.”

2014년 11월 중순 <매거진N>에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기사거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코엑스몰 회사가 임차인들과 협상을 말끔하게 마치고 그랜드오픈합니다. 회사와 임차인들이 서로 양보했기에 가능했지요. 용산사태도 갑과 을로 나뉘어 한치 양보없이 맞서다 대형 불상사가 났는데, 코엑스몰 협상은 한국사회에서 앞으로 모델이 될 것 같아서요.” 기자는 2012년 6월 코엑스몰의 리모델링 방식에 대해 무역협회와, 특히 한덕수 회장에 다소 비판적인 칼럼을 쓴 적이 있어 이후 상황이 궁금하던 차였다. 무역협회 회장을 인터뷰하면 좋을 듯싶어 전화를 돌렸다. 한덕수 회장은 “내가 한 게 아니고 코엑스몰 사장이 다 한 것이다. 그와 인터뷰하는 게 맞다”며 극구 사양했다. 기자는 박영배 대표를 인터뷰하면서, 리모델링 과정에서의 ‘매끄러운 일처리’는 한덕수 회장과 박영배 대표의 합작품이란 결론에 이르게 됐다. 인터뷰는 12월22일 코엑스몰 사장실에서 이뤄졌다.

막장까지 가는 게 그동안 우리네 협상 모습이었는데,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그랜드오픈 한 비결이 뭔가. 기존상인 대부분에게 재계약 기회를 주었다고 들었다.
“코엑스몰이 오픈한지 14년이 지났는데, 상인들이나 몰이나 영업이 잘 안됐다. 그래서 리뉴얼을 하기로 했는데 가장 어려운 게 기존 임차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임대갑방식에서 임대을방식으로 전환하고 둘째 MD(머천다이징)를 좋게 하기 위해 기존 임차인들에게 우선권을 주지 않고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랬더니 임차인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2012년 여름 사장하고만 협상하겠다며 시위도 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전대 임차인들은 강력히 배제한 것이 먹혔다고 들었다.
“맞다. 그들에겐 절대 임대를 주지 말자는 입장을 정하고 소문도 내고 서류도 보내고 임차인들에게 설명도 해줬다. 전대한 사람들은 자기는 영업 안 하고 부당하게 수익을 얻는 사람들이다. 전대의 경우 우리 회사에는 1천만원 내고 자기는 1억 받는 경우도 있더라. 선의의 임차인들은 가능한 모두 입점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조건을 정했다. 영업이 안되는 아이템으로 하면 몰의 질이 떨어지고 다른 영업점에도 지장을 주니 회사와 협의해 정하자고 했다. 이와 함께 기존 임차인들이 외부 임차희망자와 경쟁해야한다는 원칙도 제시했다. 경쟁 없이 매장을 임대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회사측에서도 전략매장을 30% 정도 확보키로 방침을 정했다. 그 결과 버버리 뷰티박스가 들어왔다. 아시아 최초로 한국, 그것도 코엑스몰에 첫 입점한 것이다.”

2014년 12월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 센트럴 플라자에서 열린 ‘코엑스몰 그랜드 오프닝 세리머니’에 참석한 내빈들. 한덕수 현 회장(왼쪽에서 두번째), 사공일(왼쪽에서 세번째), 이희범(왼쪽에서 네번째) 등 전임회장들의 모습이 보인다.

2014년 12월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 센트럴 플라자에서 열린 ‘코엑스몰 그랜드 오프닝 세리머니’에 참석한 내빈들. 한덕수 현 회장(왼쪽에서 두번째), 사공일(왼쪽에서 세번째), 이희범(왼쪽에서 네번째) 등 전임회장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뉴시스>

임차인들의 반발은 없었나?
“어느 순간부터 이게 대세라고 생각했는지, 협조 되기 시작했다. 내 방으로 와서 ‘임대을’ 매장조건을 받을 테니 기존 임차인들끼리만 경쟁하게 해달라고 하더라. 우리 매장이 모두 244개인데 전략매장 빼고 나머지 중 절반이든 얼마든 좋다고 했다. 그래도 일부는 탈락하게 된다. 이 분들을 마구잡이로 내보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되더라. 한덕수 회장지시로 협상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협상에 들어갔다.”

떨어진 사람들 불만이 많았을 것 같다.
“물론이다. 떨어졌다고 데모하는 사람도 있고, 꿈에서도 임차인이 나타나 식은땀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해결의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갔나.
“요구사항을 하나씩 들어보니 소통이 뭣보다 중요한 걸 알게 됐다. 입장이 달라도 소통하면 되겠다 싶더라. 회사에도 좋고 임차인들에게도 좋은 윈윈할 방법이 있더라. 그래서 생각한 게 처음부터 확고불변한 방침을 세우지 말자는 것이었다. 러프하게 룰을 정해 이분들 말씀 들어보고 수정하면서 우리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무역협회에선 계약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존 임차인들 중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누차 얘기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믿어주더라. 협회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그들 입장을 받아들여 임차인만의 리그를 만들어줬다.”

협상초기 느슨했던 원칙이 좀더 구체적으로 발전한 것인가.
“그렇다. 믿음이 생기니 원칙을 정하는 것도 쉬웠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기존 수준의 매장을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메가박스와 아쿠아리움 쪽이 적소였다. 되도록 많은 매장을 주기에 적합했다. MD쪽에서는 반대했다. ‘겐슬러’라는 미국 설계회사가 맡았는데, 애초 아시아 최고의 쇼핑몰을 만들 계획으로 디자인했다. 고만고만한 매장이 많으면 좋은 브랜드를 입점시키는데 불리하고 설계도 바꿔야 하는데 그러면 공기를 맞출 수 없다며 반대했다. 그렇지만 우리 입장은 확고했다. 기존 임차인들 보호가 중요했다. 결국 94개 점포를 관철시켰다.”

코엑스몰협상일지

불만인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어려운 입장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 메가박스와 아쿠아리움 외에 딴 곳은 1년 반 이상 영업을 할 수 없어 이곳이 기존 임차인들한테는 가장 유리했다. 그래서 1단계로 2013년 8~9월 이들을 대상으로 첫 입찰을 진행했다. 당시엔 2014년 11월 9호선이 개통될 예정이어서 임차인들도 빨리 진행되길 바랬다. 막판까지 우리가 설계회사로부터 확보한 매장 숫자(94개)는 밝히지 않았다. 기존 임차인 점포가 150개가 넘었기 때문이다. 94개라고 말하면 동요할 것 같아, 마지막 설명회 때 숫자를 밝혔다.”

2013년 8월 진행된 첫 입찰이 관건이었겠다.
“그렇다. 그런데 94개 매장에 152개만 신청했더라. 경쟁률이 1.6대1에 그쳤다. 기존 임차인들끼리만 경쟁할 수 있도록 하니 만족해 하더라. 전대를 찾아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아 점수제로 했다. 소상인과 MD가 괜찮으면 높은 점수를 주었다. 입찰가격은 경쟁률이 낮아 큰 의미가 없었다. 회사가 받을 최저금액 정도는 알려주는 식이었다. 기존 임차인들만 대상으로 한 첫 입찰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1차 입찰에서 탈락한 임차인들은 어떻게 됐나?
“일반입찰 때 다시 참여할 기회를 주었다. 기존 임차인은 똑같은 조건이면 일반입찰보다 우선권을 줬다. 가령 기존 임차인 프랜차이즈와 일반 본사 프랜차이즈의 경우 큰 차이가 없으면 기존 임차인을 받아줬다. 다시 선정된 기존 임차인이 10여곳 된다. 또 기존 임차인 가운데 선정된 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계약을 포기하는 매장도 10여곳 생겨서 탈락한 기존 임차인들을 대상으로 다시 입찰기회를 드렸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여러 차례 나눠서 입찰한 것도 도움이 된 것 같다. 통계를 내보니 242개 매장 중에 본사까지 합해 131개에 기존 임차인들이 입점했다. 전체 매장 중 절반 이상이 기존 임차인이다.”

협상키워드

코엑스몰 자체가 워낙 노른자 영업장으로 알려져 청탁도 많았을 거 같다.
“기존 임차인이나 일반 임차인이나 엄청난 부탁이 들어온다. 그래서 종합 심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한덕수 회장과 부회장 등 경영진이 다 모인 자리에서 원칙을 세웠다. 한 회장께서 ‘(청탁)전화가 오면 다 박영배 전무한테 보내라’고 하더라. 나더러 모두 책임지고 막으라는 뜻이다. 회장께선 특히 자신의 이름을 파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해주지 말라고 했다. 정말 지독하게 청탁 안 받았다. 회장 뜻이 그러니 어느 간부도 내게 얘기하지 않더라. 원칙대로 한 것이다. 청탁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원칙과 입장을 설명하니 모두 이해하더라.”

코엑스몰 협상이 3년반 만에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유연한 원칙을 세워서 투명하게 소통하고, 참을성을 갖고 상대방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며 전략적으로 대응한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무엇보다 최고 결정권자가 늘 역지사지하며 상대방을 배려한 게 중요했다고 본다.”

억울하고 속상한 일도 꽤 많았을 것 같다. 우리사회처럼 대화보다 집단행동이나 연고를 중시하는 풍토에선 중재하는 일이 무척 어려웠을텐데.
“개인적으로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월급쟁이로 피고용자인 나는 룰을 만들어 그들과 접촉을 하는데 상대방은 생계가 달린 문제이니 내가 밀릴 수밖에 없다. 어떨땐 사람들이 저럴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정말 못할 거 같다. 요즘에도 꿈에 임차인이 나타나면 벌떡 일어나곤 한다. 사람에 치인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마음 상처도 많이 입었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었고, 회사와 무역협회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또 기존 임차인들도 만족하니 그게 고맙기만 하다.”

기자는 코엑스몰 임차인협상 ‘성공키워드’를 5가지로 요약해 박 대표에게 전했다. 그도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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