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즐로그 칼럼] 亞·美 커뮤니티저널리즘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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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은 오는 11월11일 창간 3돌을 맞습니다. 그동안 독자들께서 보내주신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시아엔은 창간 1년만에 네이버와 검색제휴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제휴 이전 기사는 검색되지 않고 있어, 그 이전 발행된 아시아엔 콘텐츠 가운데 일부를 다시 내기로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좋은 정보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편집자>
발전, 시민, 평화저널리즘 넘어 옹호저널리즘 주목해야
원고 요청을 받고 자리에 앉는 순간 깨달았다. 지난 50년 동안 아시아 지역과 미국에서 저널리즘과 신문방송학을 가르치는 동안 나는 미국과 아시아라는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언론환경에서 살아 왔다는 것을. 이 사실을 커뮤니티저널리즘(community journalism)에 적용해 보면, 혹자는 나를 보고 아시아 커뮤니티저널리즘과 미국의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모두 경험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의 지역언론은 자유롭고 경쟁적이며 시장경제를 신봉한다. 전형적인 지역신문이란 작은 마을에서 발행되지만 인구대비 발행부수는 많은 매체를 말한다. 보통 인구 1000명 이하 지역에서 500부에 이르는 주간지도 흔히 발견된다. 아시아의 상황은 좀더 복잡하다. 외부권력의 통제에 놓여있는 매체에서 수준이 제법 있는 무료로 판매되는 지역신문까지 무척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 모두 발행부수는 미미한 상태다. 예를 들어 인구 10만명 이상의 도시에서 발행되는 지역주간지 부수는 1000부에도 미치지 못한다. 가난과 문맹률이 주 원인이다.
나는 AFP 기자로서 또 다른 국제 언론환경을 경험한 적이 있다. 미네소타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모국인 필리핀으로 돌아와 지방언론 기자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맡았다. 첫 번째 리서치 프로젝트였던 필리핀 지역언론에 관한 설문이 기억난다. 1967년의 일이었는데, 아마 필리핀에서는 이런 설문조사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때 이후 줄곧 내가 해온 리서치는 저널리즘의 이론적인 면보다는 실제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맞췄다. 어떻게 하면 지역신문과 라디오방송사가 그럭저럭 잘 굴러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또 어쩌다가 실패하게 되는 것일까? 작은 마을의 언론매체에 관심 갖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의 개인적 관심사는 무엇이며, 직업은 무엇일까? 그들 스스로는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기자들은 어떻게 훈련 받고 있나? 그들이 졸업한 대학의 저널리즘과 신문방송학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내가 1971년 발표한 필리핀 저널리즘과 커뮤니케이션 교육에 관한 논문 역시 필리핀 사상 최초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설문조사, 사례연구, 콘텐츠분석, 심층인터뷰 등을 주로 활용했다.
초창기 몇몇 열띤 토론 중에서 독일 라디오방송 기자와 가졌던 토론이 기억에 남는다. 각종 언론 관련 세미나와 워크숍에서 나는 언론에서 말하는 지역공동체가 과연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즉 같은 지역 거주민을 독자층으로 하는 ‘지리적 구분’이 타당한지 아니면 과학이나 환경 같은 특정 관심사를 기준으로 한 구분인지를 두고 열심히 논쟁했다. 논쟁은 끝없이 이어졌고 그 자체를 즐기기도 했다. 결국엔 두 가지 구분 다 가능하다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렇지만 나는 지역공동체 언론이란 ‘지리적 측면’에 따라 이뤄진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환경 문화 교육 등 주제별 관심분야에 따라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언론과 이를 연구하는 언론학은 1970년대 이후 계속 성장해 왔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 지역민을 독자로 하는 뉴스레터의 발행은 돈이 거의 들지 않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것은 인터넷에 밝은 신세대 저널리즘 연구자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연구 분야가 되었다. 한국의 <오마이뉴스>의 경우 한때 3만5000명의 시민기자가 자원해서 휴대폰을 활용해 뉴스를 생산했다.
나는 1993년 <필리핀 지역신문의 부상과 몰락>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여기서 나는 25년간 지역공동체 언론 연구와 교육에 관한 경험을 적었디. 그 이후 ‘발전저널리즘’(development journalism)’으로 연구 분야를 넓혔다. 발전저널리즘은 공동체의 개발을 돕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발전저널리즘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한 곳은 아시아다. 대륙의 대부분이 후진국인 특성상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언론계 종사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분석하면서 두 개의 개념을 하나로 묶어냈다. 즉 지역신문과 방송이 지역공동체 발전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당연한가 하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에서도 1990년대에 이르러 시민저널리즘 혹은 공공저널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시민저널리즘은 시민이 직접 지역공동체에 영향을 끼치는 이슈를 선별하고 보도한다는 데에서 개발 저널리즘과 유사한 면이 있다.
최근의 나의 관심사는 평화저널리즘이다. 기존 보도의 대안 혹은 보완재로서 평화저널리즘이 대두되고 있다. 평화저널리즘은 그 어떤 대립 상황에서도 논쟁 자체보다는 합의에 주목한다. 언론 본연의 논쟁이 갖고 있는 뉴스가치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는 벌써 이상의 세 가지 조류 ? 발전저널리즘, 시민저널리즘, 그리고 평화저널리즘 ? 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가치가 ‘옹호’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이제 새로운 유행어는, 저널리즘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아주 오래된 가치에 반하는 ‘옹호저널리즘’이다. 그리고 옹호저널리즘은 열띤 논쟁과 가슴 설레는 연구가 본격화될 새로운 연구분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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