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미국에 ‘선전포고’

유가 할인 전격 제안…”시장 주도권 둘러싼 ‘치킨 게임’ 시작”
월가 “사우디 목표는 셰일유 죽이기”…백악관 “예의 주시”

[아시아엔]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원유를 싸게 팔겠다고 전격 제의한 것은 시장 기득권 유지를 위해 ‘선전 포고’한 셈이라고 시장 전문가들이 일제히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5일자 사설에서 세계 원유시장 주도권을 놓고 ‘마침내 게임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의 하이라이트인 절벽 끝으로 자동차 몰기와 같은 극한 대결이 사우디를 앞세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미국 간에 막 시작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블룸버그와 마켓워치도 사우디가 시장을 놀라게 하면서 미국과 ‘치킨 게임’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의 조시 어니스트 대변인은 4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사우디의 전격 조치로 말미암은) 유가 하락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가 하락을 기회 삼아 미국이 전략 비축유를 늘릴 지에는 함구했다.

마켓워치는 이와 관련, 유가 약세가 지정학적으로 큰 문제들을 일으키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면서 오는 27일의 OPEC 정례 석유장관 회담에서 어떤 조치가 나올지를 시장이 더욱 주목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산업 원자재 중개회사인 RJ 오브리언 앤드 어소시에이츠의 앤소니 러너 수석 전무는 마켓워치에 “(사우디의 깜짝 쇼에 대한) 시장 반응이 대단히 부정적”이라면서 “(사우디에 의해) 미국 내 유가 전쟁이 촉발됐다”고 말했다.

미국에 공급되는 중동 원유와 급속히 증산돼온 셰일(혈암)유 간의 가격 전쟁에 불을 붙였다는 얘기다.

압달라 엘-바드리 OPEC 사무총장도 지난주 “브렌트유가 배럴당 85달러대를 유지하면 OPEC은 큰 문제가 없다”면서 “가격 하락에 셰일유가 먼저 충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컨플루언스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빌 오그래디 수석 시장 전략가는 블룸버그에 “시장이 불안해한다”면서 “사우디가 시장 쟁탈전에 나섰다는 분석이 중론”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사우디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이런 도발을 했다’고 분석했다.

사우디가 아시아 주요 소비국인 중국, 일본, 인도, 한국과 장기 계약을 맺은 점을 블룸버그는 상기시켰다.

컨설팅사 SCI의 가오젠 석유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에 “사우디가 이들 아시아 국가와 장기 계약을 맺은 상태기 때문에 미국에 가격 공세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쿄 소재 뉴웨지 그룹의 에너지 거래 책임자 하세가와 겐은 블룸버그에 “아시아는 가격 변동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고 사우디 원유를 사들이는 사우디의 탄탄한 고객”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석유 전문가 도시아키 사기시마도 블룸버그에 “사우디가 (대미 공급가 할인을 통해) 셰일유를 죽이려는 계산”이라고 지적했다.

사우디의 전격 조치로 미국 서부텍사스유(WTI)와 북해 브렌트유 선물은 4일 배럴당 75달러대와 82달러대까지 하락했다. 이는 모두 지난 4년여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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