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 보수는 ‘엿장수 맘대로’?
재벌 총수 및 대기업 임원들이 이사회에서 논의하지도 않은 채 연봉을 결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8일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호텔신라(이부진 대표이사)·현대자동차(정몽구 대표이사 및 정의선 이사)·SK이노베이션(최태원 대표이사)·한진해운(최은영 대표이사)·한화(김승연 대표이사)·CJ(이재현 대표이사)·금호석유화학(박찬구 대표이사)·동부제철(김준기 대표이사)·현대상선(현정은 이사) 등 9개사의 이사회 및 보수위원회 의사록을 분석한 결과 개별임원보수 산정 및 결정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회사들이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개최한 이사회에서 ‘이사 및 감사의 보수한도’ 승인 안건을 결의한 것이 임원보수와 관련된 유일한 이사회 논의 사항이었다. 현대상선은 이사회 의사록에 해당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서를 제출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임원 개개인에 대한 보수는 회사의 내부규정인 ‘임원보수에 관한 규정’에 따라 결정된다. 일단 임원보수규정이 확정되면 보통 집행은 대표이사에 위임하고 있다.
‘임원보수 규정’에는 각 직급별 기본급여표가 있지만, 보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성과급의 책정 방법이나 특별성과급 등의 명목으로 지급되는 보수는 대표이사가 결정하는 구조이다. 이사회의 위임을 받은 대표이사가 임원 보수를 결정·집행한 이후에는 따로 이사회에 그 내용을 보고하거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하는 절차를 찾아볼 수 없다.
경제개혁연대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상법 제393조(이사회의 권한)를 개정해 임원에 대한 경영성과 평가와 보상을 이사회의 결의사항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현재 시행령에서는 개별임원보수와 관련해 단지 공시대상 임원의 기준(보수총액 5억원 이상)만을 정하고 있으나, 개별임원보수의 산정기준과 방법 및 절차에 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 측은 “임원보수 자체 또는 보수액 결정 과정이 회사의 지배구조를 가늠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이자 중요한 경영판단의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주주로부터 위임받은 기관인 이사회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지배구조원 윤진수 부연구위원 역시 “현재 사업보고서에 임원 보수 산정방식이나 절차가 구체적으로 공개된다고 해도 주주가 주총에서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임원 보수 한도 승인에서부터 주주의 견제와 통제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임원 개인별 권한과 책임 등에 따라 합당한 보수 총액이 상정될 수 있도록 관련 상법 개정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 부연구위원은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상장기업에게 임원 보수를 공시하도록 규정하면서 보상정책을 주주에게 공시하도록 의무화했고 기본급, 성과급을 비롯해 다양한 보수내역을 공시하도록 했다”며 “우리 정부도 기업들이 보수 내역을 구체적으로 공시할 수 있도록 공시 기준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