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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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첫마음’ 정채봉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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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1월1일에’? 이채경 “지난해와 달라진 게 없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흰 서리 내린 겨울 창문으로 성큼 새해가 와 있습니다. 나는 가슴이 덜컹합니다. 추위를 이기려 차를 끓이면서 이대로 다시 잠이 들면 그만큼 새해가 늦게 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지난해와 달라진 게 없는데 그냥 새해가 와 버리면 어쩌나요. 하지만 어제의 짐을 지고는 오늘의 삶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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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가득한 한심’ 박노해 “양지바른 무덤가에 누워”
오늘은 한심하게 지냈다 일도 하지 않고 책도 읽지 않고 마루에 걸터앉아 우두커니 솔개가 나는 먼 산을 바라보고 봉숭아 곁에 쪼그려 앉아 토옥토옥 꽃씨가 터져 굴러가는 걸 지켜보고 가을 하늘에 흰 구름이 지나가는 걸 바라보고 가늘어지는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꿉장난하는 아이들과 남편 배역을 맡아 하다가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심심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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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살아서 돌아온 자’ 박노해 “거짓은 유통기한이 있다”
진실은 사과나무와 같아 진실이 무르익는 시간이 있다 눈보라와 불볕과 폭풍우를 다 뚫고 나온 강인한 진실만이 향기로운 사과알로 붉게 빛나니 그러니 다 맞아라 눈을 뜨고 견뎌내라 고독하게 강인해라 거짓은 유통기한이 있다 음해와 비난은 한 철이다 절정에 달한 악은 실체를 드러낸다 그대 아는가 세상의 모든 거짓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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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환한 쪽으로-가수 현숙’ 장재선 “열일곱 번째 기부한 당신”
폐지 할머니 손수레를 양복 입은 중년 남자가 조용히 밀어주는 모습을 오늘 낮에 봤어요. 밤에는 뉴스를 만났지요. 자동차에 깔린 이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거들어 차를 들어내고 구했다는. 당신이 산청군 어르신들을 위해 목욕차를 기증했다는 소식을 아침에 들은 날이었지요. 전국 고샅고샅 축제 마당에서 노래를 불러 모은 돈을 오천만 원짜리 목욕차로 바꿔 열일곱 번째 기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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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아쉬운 것은’ 법현스님 “나이만큼 더 여유롭게 찬찬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드러움이 조금 약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있는 일이니 나쁜 생각이 더 부드러워지게 해야 할텐데 나이만큼 더 여유롭게 찬찬이 살펴봐야 할 텐데 더 물끄러미 들어보고 다른 사람의 말이 들어 올 틈을 가져야 하는데 바르게 한다면서 어긋난 돼지발톱처럼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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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정세일 ‘겨울 긴밤을 물렁한 고구마 같이’
겨울밤 냉랭한 방을 나무로 군불을 때서 잘 익은 아랫목이 까매지는 저녁에는 겨울 긴 밤을 길게 이어지는 새끼를 꼬기 위해 호롱불의 심지를 돋웁니다 오늘은 우리의 겨울 긴 밤이 푹 삶아지도록 솥에 고구마를 넣어서 한솥 가득히 삶아 소쿠리에 가득 담아와서 방 위쪽에 놓아 겨울밤을 물렁한 고구마와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뒷마당에서 가져온 얼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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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프롬나드 인 러시아’···문학·예술의 보물창고 ‘러시아박물관’으로의 초대
[아시아엔=김원일 <모스크바프레스> 발행인, 전 모스크바한인회장] 2020년은 한러수교 30년이 되는 해. 때 맞춰 러시아와 관련해 주목을 끌만한 책이 나왔다. 러시아문학과 러시아 문화에 관한 에세이를 담은 <프롬나드 인 러시아>가 바로 그것이다. <프롬나드 인 러시아>는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아 발간됐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은 한동안 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였다가 2018년 지원사업이 부활하면서 저자가 그 혜택을 입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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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예맥요'(刈麥謠) 이달 “시골집 젊은 아낙네 저녁거리 떨어져?”
? 田家少婦無夜食 (전가소부무야식)? 雨中刈麥林中歸 (우중예맥림중귀) 生薪帶濕煙不起 (생신대습연불귀)? 入門兒子啼牽衣 (입문아자제견의) 시골집 젊은 아낙네 저녁거리 떨어져서? 비 맞으며 보리 베어 숲 속으로 돌아오네 생나무에 습기 짙어 불길마저 붙지 않고 문에 들자 어린 아이 옷자락 잡아당기며 울부짖네? 지은이 손곡(蓀谷) 이달(李達 1539 ~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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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화이트 크리스마스’ 나태주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 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 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세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 하고서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 동안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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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송년회 목필균 “올해 기억 속에 너와 만남이 있었는지”
후미진 골목 두 번 꺾어들면 허름한 돈암곱창집 지글대며 볶아지던 곱창에 넌 소주잔 기울이고 난 웃어주고 가끔 그렇게 안부를 묻던 우리 올해 기억 속에 너와 만남이 있었는지 말로는 잊지 않았다 하면서도 우린 잊고 있었나 보다 나라님도 어렵다는 살림살이 너무 힘겨워 잊었나 보다 12월 허리에 서서 무심했던 내가 무심했던 너를 손짓하며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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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성탄전야의 산책을 기억하다’ 장재선
초겨울이 엷게 흐르는 거리 한 잔 낮술을 걸친 양 사내들마다 걸음이 넉넉하고 처녀아이들의 웃음이 음반 가게의 성탄 추리처럼 반짝이었던 저녁 봉제 공장 담을 넘어 온 불빛이 교회당 성가 소리와 어울리고, 고시촌 아래 마을 저녁 길을 혼자 걷는 젊음의 허기를 어루만졌던 저녁 문득 고개를 들면, 천구백팔십년대의 하늘에 일찍 죽은 그대의 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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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에 낸 12번째 수필집 ‘봄꽃보다 잘 물든 단풍’을 내보니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일까? 아마 뭐니 뭐니 해도 연꽃처럼 사는 것이 가장 고결(高潔)한 삶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사는 것을 염원하여 필자가 처음 펴낸 책이 <진흙 속에 피는 꽃>이었다. 연꽃에는 10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이 열 가지 의미의 연꽃을 닮아가는 사람을 연꽃처럼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라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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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동지’ 홍사성 “노루꼬리 같은 겨울 해 꼴깍 떨어졌다”
노루꼬리 같은 겨울 해 꼴깍 떨어졌다 그믐달보다 새파란 추위 뼛속까지 깊다 새벽닭 울 때까지는 팥죽사랑 끓이기 좋은 밤 문풍지 우는 소리에 잠깨 군불 다시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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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빈들’ 이정하 “유독 많은 눈이 이 들판을 덮어도”
아버지는 맨손으로 돌아오는 때가 없었다 유독 많은 눈이 이 들판을 덮어도 아버진 눈 속을 헤쳐 땅에 박혀 있는 농약병, 땔나무 하다못해 지푸라기 하나라도 주워들고 오셨다. 그렇게 알뜰히 가난을 모으고 모아 자식들한테는 물려주지 말아야지 너희들 앞길만은 반듯하게 닦아놓아야지, 하시더니 그 길로 어머니 꽃상여 보내신다. 시신이야 썩지 않아 다행이지만 꽁꽁 언 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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