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오늘의 시] ‘감사하다’? ?정호승

    태풍이 지나간 이른 아침에 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프라타너스나 왕벚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밑동이 부러지거나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몸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키 작은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쥐똥나무는 몇 알 쥐똥만 떨어드리고 고요했다 심지어 길가의 길가의 풀잎도 지붕 위의 호박넝쿨도 쓰러지지 않고 햇볕에 젖은 몸을 말리고…

    더 읽기 »
  • [오늘의 시] 백로(白露) 홍사성

    태풍 몇 지나가자 겨드랑이 서늘하다 풀벌레 울음소리 창문타고 넘어오는데 흰 이슬 무슨 뜻 있어 맺혀있는 초가을

    더 읽기 »
  • [오늘의 시] ‘시마詩魔’ 이병기(1891~1968)

    그 넓고 넓은 속이 유달리 으스름하고 한낱 반딧불처럼 밝았다 꺼졌다 하여 성급한 그의 모양을 찾아내기 어렵다 펴 든 책 도로 덮고 들은 붓 던져두고 말없이 홀로 앉아 그 한낮을 다 보내고 이 밤도 그를 끌리어 곤한 잠을 잊는다 기쁘나 슬프거나 가장 나를 따르노니 이생의 영과 욕과 모든 것을 다 버려도…

    더 읽기 »
  • [오늘의 시] ‘나의 家族’ 김수영

    古色이 蒼然한 우리집에도 어느덧 물결과 바람이 新鮮한 氣運을 가지고 쏟아져들어왔다 ?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아침이면 눈을 부비고 나가서 저녁에 들어올 때마다 먼지처럼 인색하게 묻혀가지고 들어온 것 ? 얼마나 長久한 歲月이 흘러갔던가 波濤처럼 옆으로 혹은 世代를 가리키는 地層의 斷面처럼 억세고도 아름다운 색깔ㅡ ? 누구 한 사람의 입김이 아니라 모든 家族의 입김이…

    더 읽기 »
  • [오늘의 시] ‘코스모스를 노래함’ 오규원

    거리에서, 술집 뒷골목에서, 그리고 들판에서 가을은 우리를 역사 앞에 세운다. 거리에서 가을은 느닷없이 1906년 2월 1일, 일본이 한국통감부를 설치한 일을 아느냐고 묻는다. 술집 뒷골목에서 조금씩 비틀거리는 내 앞을 가로막고 1960년 4월 25일에 대학 교수단 데모가 있었다고 말한다. 1960년 5월 29일에는 이승만 전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하고, 1910년 6월 24일에는 구한국이 일본에 경찰권을 이양, 1885년 10월 8일에는 일본인이 민비를…

    더 읽기 »
  • [오늘의 시] ‘산이 산에게’ 홍사성

    큰 산 작은 산이 어깨 걸고 살고 있다 작은 산은 큰 산을 병풍으로 두르고 큰 산은 너른 품으로 작은 산을 안고 꽃필 때면 큰 산이 작은 산에게 먼저 단풍들 때면 작은 산이 큰 산에게 먼저 애썼다 수고했다고 말없이 위로하며 언제나 그 자리에서 천만년 그렇게 큰 산은 큰 산대로 작은 산은…

    더 읽기 »
  • [오늘의 시] ‘백일홍 붉은 그늘’ 장옥관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네 핏발 선 눈 그 사람 돌아왔네 빈 마을 온종일 쑤시고 다녔네 백일홍 고목만 더욱 붉었지 꽃상여 타는 강 위로 흘러가고 늙은 나무 꺼진 허파 기침 끝에 모였네 미친 바람 뒷간의 대숲을 흔들고 텃밭의 푸른 고추 열이 올랐네 시체가 산을 이룬 그 여름 장맛비에도 꽃꼭지마다 붉은 떨기…

    더 읽기 »
  • [오늘의 시] ‘구월이 오면’ 안도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을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더 읽기 »
  • [새책] 박노해 사진에세이 ‘길’···”두려워 마라,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노동자 시인으로 출발한 박노해의 세 번째 사진에세이 <길>이 9월 1일 나왔다. 박노해 시인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양장본, 145×210, 136쪽으로 가격은 18,000원.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를 모토로 내 인생의 고전이 될 책을 펴내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도서출판 ‘느린걸음’(대표 임소희, 홍보팀장 이상훈)이 낸 소개자료를 옮겨 싣는다. <편집자> “코로나 시대 안에서 우리는 길을…

    더 읽기 »
  • [오늘의 시]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

    ?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을…

    더 읽기 »
  • [오늘의 시] ‘등燈에 부침’ 장석주

    1 누이여, 오늘은 왼종일 바람이 불고 사람이 그리운 나는 짐승처럼 사납게 울고 싶었다. 벌써 빈 마당엔 낙엽이 쌓이고 빗발들은 가랑잎 위를 건너 뛰어다니고 나는 머리칼이 젖은 채 밤 늦게까지 편지를 썼다. 자정 지나 빗발은 흰 눈송이로 변하여 나방이처럼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유리창에 와 흰 이마를 부딪치곤 했다. 나는 편지를 마저…

    더 읽기 »
  • [오늘의 시] ‘신발 깔창’ 박노해

    신발 끈을 묶고 정원 일을 나서는데 어라, 새로 산 신발 깔창이 반항한다 깔창을 꺼내 보니 날 빤히 바라보며 밟히기 싫다구, 나 밟히기 싫다구요 그래, 안다 나도 평생을 짓밟히며 살아왔다 그래도 난 매일 널 꺼내서 씻어주고 말려주며 감사하지 않니 누군들 밟히고 또 밟히고 소리 없이 헌신하는 걸 좋아하겠냐만 그게 우리 길인…

    더 읽기 »
  • [오늘의 시] ‘매미를 읊다'(蟬?) 정약용

    허물은 벗어버려 나무 끝에 매달고 억센 발톱으로 나뭇를 단단히 잡고 있나니 그대가 날개 돋아 신선이 되는 날 예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걸 본 사람이 없다오 委?空空樹?懸 猶然鐵爪抱枝堅 方其羽化登仙日 終古無人得?天 이 미천한 몸은 본래 공이라 잿더미 썩은 흙속에서 굴러 나왔으니 혀 닳고 입술 타는 걸 어찌 애석해하랴 죽을 때까지 오직 하늘을 송축할…

    더 읽기 »
  • [오늘의 시] ‘처서’ 권영오

    배 지난 자리를 물이 다시 덮어주듯 그대 지난 자리에 여치가 와서 우네 울음은 저기 저 멀리 당신도 저 멀리

    더 읽기 »
  • [책산책] 코로나시대 필독 희곡집 ‘낙하산’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2018년 11월 중순 세실극장에서 헬렌 켈러와 스승 설리반을 주제로 한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 마지막 본 연극이다. 그런 내게 7월말 희곡집이 도착했다. <낙하산-가족을 훔친 사람들>(권호웅 저, EASYCOM)이다. 일주일쯤 책상에 방치한 나는 고마움 반, 미안함 반에 페이지를 넘기고 단숨에 읽어갔다. 영화처럼 긴박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책 제목이 된 ‘낙하산’…

    더 읽기 »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