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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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마음으로 만나는 살뜰한 영혼의 친구

    아파트에서 오래 살았다. 차고 무표정한 단절된 사회였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서로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다. 이웃의 터무니 없는 고발에 씁쓸한 적도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집 남자에게 인사를 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남자가 깜짝 놀라 몸을 돌리고 외면을 했다. 자신을 숨기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음날 신문의 인터뷰란에서 그 남자의 사진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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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2024년 달포 남기고 나를 돌아보니…

    나는 이따금씩 바닷가에서 살기 시작한 집의 우툴두툴한 벽을 손으로 쓰다듬는다. 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낚시꾼들이 묵어갔다는 낡은 집을 샀다. 인력소개소에서 구한 러시아인 일용잡부와 함께 방에 붙은 오래된 벽지들을 뜯어냈다. 철물점에서 흰 페인트를 사다가 내 또래의 늙은 페인트공 한 명과 함께 우중충한 시멘트벽에 칠을 했다. 8kg들이 함석통에 든 묵직한 고체 연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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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20년 전 한 대법원장의 죽음이 던진 메시지

    2005년 1월 17일 오후 5시경, 팔십대 중반 노인이 마포대교 난간을 힘겹게 올라가 한강으로 뛰어내렸다. 유서는 없었다. 전 대법원장이었다. 신문은 자살 원인을 노환에서 오는 고통과 우울증이라고 했다. 그 무렵 언론은 안동일 변호사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안 변호사는 박정희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 <10.26은 아직도 살아있다>라는 책을 발간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김재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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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변호사란 직업…지식노동과 감정노동 사이에서?

    신문을 보다 낯 뜨거워지는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검사장 출신임을 내 걸고 ‘떼인 돈을 받아 들인다’는 광고였다. 기자는 아무리 광고문구이지만 너무하지 않느냐고 지적하고 있었다. 조폭 출신들이 흔히 쓰던 광고문구였다. 변호사업계가 막장에 이른 것 같다. 사실 노골적이 아니었을 뿐 내면적으로는 전에도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 다섯살무렵 육군 중위의 월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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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야당 대표 재판 둘러싸고 연일 시위…법관들께 지혜와 통찰이”

    20년 가까운 과거의 일이다. 같이 군에 근무하던 법무장교 동기 중 한 명이 대법관이 됐다. 전두환 정권 시절 1심 판사였던 그는 민주화투쟁으로 재판에 회부 된 인사들에 과감히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그는 오랫동안 정보기관의 감시 대상이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그는 대법관이 된 것이다. 그를 축하해 주기 위해 동기생들이 모였다. “대법관이 되어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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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대통령 귀가 막혀 있어요”

    화면 안에서 노인인 유인태 전 국회의원이 어눌하게 말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귀가 막혀 있는 것 같아요.” 수많은 정치평론이 쏟아지지만 나는 유인태씨의 말은 새겨듣는 편이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바른 소리를 하다가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내가 대학에 다닐 무렵 길거리에는 지명수배 당한 그의 얼굴이 붙어 있었다. 명문고와 대학을 나온 그는 체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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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엄상익의 시선] 추사 김정희 “같은 글자를 만번 반복해 썼더니 글자에서 강물이 흘러나오더라”

    그 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부모가 걱정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가야 할 텐데 날라리가 됐다는 것이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매일 노래하고 춤을 춘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의 부모는 내게 충고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아이를 만났었다. 아이는 오히려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같은 노래를 백번 반복해서 부를 수 있어요? 아마 못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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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어느 특수부 검사의 후회

    어느 날 뉴스에서 한 검사가 수억대의 뇌물을 수수한 사실이 보도되는 걸 봤다. 잘 나가던 특수부 검사였다. 그가 검사를 그만두고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의 험지에서 경선에서 승리하고 금배지를 달기 직전에 그런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가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다. 그가 대충의 내용을 이렇게 말했다. “검사실에 있는데 점심시간에 장인이 친구를 데리고 왔어요. 장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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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나는 운동권의 언더였어요”

    며칠 전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한 유튜브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지금 이 나라는 심리적 내전을 치르고 있어요. 아마 손에 무기를 들려주면 큰 일이 날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만나면 상대방이 좌파인가 우파인가를 먼저 파악하려고 한다. 좌파를 흔히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해 왔다. 1980년대 운동권에서는 맑스 레닌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도 있었고 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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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깡패 기질의 대통령들…김영삼·노무현과 윤석열은?

    윤석열 대통령이 명태균이란 선거판 꾼의 폭로에 휘둘리면서 고전하는 것 같다. 성공보수가 적거나 기대가 클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정적과 야당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이따금 뉴스 영상에는 그에게 한을 품은 야당 대표의 독기 서린 시퍼런 얼굴이 나타나기도 한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선동된 군중들이 광장으로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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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렘브란트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

    미술품 수집가인 선배 변호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 변호사가 소개해 20년 전 내 인물화를 그린 그 화가 연락처를 알 수 없을까?” “왜요?” “그게 작품성이 보통이 아니라는 거야” “혼자서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화가였어요.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죠.” “아쉽네–.”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기억에서 사라졌던 그 화가가 시간의 저편에서 희미하게 떠올랐다. 20년전 아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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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고 심재덕 국회의원 “국감장 화장실이 더럽다”고 닥달…한국의 ‘화장실문화’ 견인

    국회방송에서 심하게 싸우는 위원회 장면이 자주 나온다. 눈이 부리부리한 법사위원장이 불려온 공무원을 보고 소리쳤다. “씨X이라고 했죠? 그건 국민을 모독하는 겁니다” “그건 정회 시간에 나 혼자 한 겁니다.” 소환된 공무원이 맞받아쳤다. 국회의원들이 공무원을 향해 각자 언성을 높이고 삿대질을 했다. 허공에서 말과 말이 뒤엉키고 말끝이 잡아 뜯기기도 했다. 국회가 원래 싸우라고 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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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의사들에게 지금이 기회다

    20여년 전 중견 의사들이 모여 의료계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의사들의 공통적인 불만은 낮은 의료수가와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책임이었다. 보라매병원에서 있었던 이런 사례가 발표됐다. 1997년 2월경 50대쯤의 남자가 119앰블런스에 실려 보라매병원 응급실로 왔다. 넘어져 뒤통수를 다쳤다. 뇌경막에 피가 고이고 생명이 위험했다. 신경외과 의사들이 여덟 시간에 걸친 수술로 환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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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나는 마지막까지 선한 내용을 담은 작은 글을 쓰고 싶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대장간을 지키는 남자를 보았다. 벽의 회칠이 떨어져 나가 진흙의 속살이 보이는 오래된 작업장이었다. 쇠를 수없이 두드리고 갈고 또 갈아 하얀 빛이 반짝이는 생선회칼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전국에서 그를 찾아오는 일식당 주방장들의 칼을 수리해 주기도 했다. 칼을 만드는 데 일생을 건 사람 같다. 유튜브 장면에는 일본 장인들의 모습도 소개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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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남과 비교해 열등감에 빠지기엔…”인생, 너무 짧고 소중해!”

    고등학교 동기라고 하면서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온 친구 부부가 있었다. 학교 시절 대화를 해본 기억이 없었다. 나를 찾아온 부부는 어딘가 삶이 추워 보이는 느낌이었다. 초췌한 표정으로 나의 사무실을 둘러보는 부인의 눈에서 묘한 빛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찾아온 친구가 말했다. “경기고등학교에서 다 서울대를 가는 데 나만 떨어진 것 같았어. 뭔가 제대로 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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