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 동아시아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⑭] 수사기관의 ‘고문’과 ‘변호사 저널리즘’

    27년 전 스산한 바람이 부는 봄날 서울구치소의 냉기 서린 접견실에서였다. 누런 홋겹 죄수복을 입은 남자가 물었다. “변호사는 사회정의와 인권옹호를 위해 일한다고 하는데 인권옹호인 변론은 알겠는데 사회정의란 뭘 한다는 겁니까?” 그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단어였다. 그는 이미 답을 안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제 옆방에 고문으로 맞아 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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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엄상익의 촌철] 어느 스타강사의 고백

    “대학도 전문대도 다 떨어졌어요” 화면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윤곽이 뚜렷한 미남이 나타났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이 대학은 물론 전문대학 시험에 떨어진 걸 고백했다. 그는 자살을 시도했던 사실도 말했다. 그 정도 자신의 상처를 보이기는 쉽지 않다. 그는 강사로 인기가 높은 사람이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서른한 살부터 강사 노릇을 시작했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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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엄상익의 시선] 칠순기념 여행, 닷사이 술잔을 부딪치며

    여섯쌍의 친구부부와 함께 칠순기념 여행을 하고 있다. 일본의 시골인 야마구치현 하기시의 온천장에 와 있다. 중고교시절부터 지금까지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여섯명의 친구다. 50년 이상 곰삭은 우정을 가진 친구와 노년의 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것, 여행을 한다는 것은 겹치는 즐거움이 아닐까. 우리들은 모두 마음 바닥을 다 드러내는 사이다. 온천장의 다다미방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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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⑬]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정보기관의 조직원 자격을 얻은 것은 적나라한 역사의 본질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고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청문회가 열리고 있었다. 수사와 군사재판에 관여한 사람들이 청문회에 증인으로 소환될 예정이었다. 어느 날 책임자가 나를 불렀다. “청문회 답변을 위해 육군본부 법무감실에 그 사건에 참여했던 보안사령부 출신 장군이나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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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묵호항서 만난 50대 “인생 나누며 사는 거죠”

    저녁 무렵 아내가 게가 먹고 싶다고 했다. 묵호항 근처의 어시장안 게를 쪄서 파는 식당들을 돌아봤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였다. 새로 인테리어를 한 듯한 깨끗한 식당 2층으로 올라갔다. 아내와 나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실 나는 늦게 먹은 점심이 소화가 덜 됐는지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게를 넣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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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노숙인 차림 목사와 ‘선한 사마리아인’

    작은 교회 앞이었다. 비가 뿌리고 있었다. 노숙자 한 사람이 교회 입구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정물같이 앉아 있었다. 굵은 빗방울이 그의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비에 젖은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예배시간이 가까와 오자 한 사람 두 사람 신도들이 그를 보더니 슬쩍 그의 옆을 돌아 교회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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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⑪] 자격미달 판검사들 비리는 어떻게?

    어항 속 금붕어 같은 법조인 정보기관은 하나의 거대한 언론사 같았다. 정보관들은 아침에 회의가 끝나면 정보를 수집하러 나갔다가 오후가 되면 돌아와 보고서를 썼다. 데스크를 보는 사람이 그걸 취합하고 분석했다. 그렇게 모인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다시 정리해 고급보고서를 만드는 부서도 있었다. 그 보고서는 대통령과 장관등 한정된 사람들만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보고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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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⑫] ‘노랑신문’과 ‘존안자료’

    청와대의 한 비서관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선거캠프에 있다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들어왔을 때 참 막연한 심정이었어요. 정책을 기안할 자료도 없고 어떤 방향으로 갈지도 막연했죠. 정부 부처에 자료를 요구해도 대부분 단편적인 내용이고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 때 안전기획부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를 보면 이건 완전히 모범답안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방향과 정책뿐만 아니라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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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촌철] 실버타운 ‘노인 왕따’

    2년이란 시간이 흐르니까 내가 묵는 실버타운의 은밀한 속살이 보이는 것 같다. 어제 90대의 노인 부부가 내게 하소연을 해왔다. 80대쯤인 부인이 분노가 가득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원들이 실버타운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서 파크 골프를 치고 돌아오는 게 중요한 일과예요. 어제 아침 셔틀버스에 탔는데 내가 모자를 가져오지 않았지 뭐예요. 그래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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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⑩] “주제사상 본질 등 가려있던 창을 열어주다”

    정보기관은 내게 가려져 있던 창을 열어주었다. 냉전시대 반공을 위해 금지됐던 책들을 마음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보기관의 자료실에는 김일성 주체사상이 있고 김일성 선집들이 있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모택동주의에 관한 책들이 있고 중공이나 북한 사회의 현실을 리얼하게 표현한 소설들이 있었다. 남한의 운동권에서 사상 교양을 강화시키기 위해 만든 각종의 지하 유인물들이 있었다. 반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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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나의 수첩…마음에 와닿는 대목 쓰고 외우고

    한동안 예쁘거나 특이한 모양의 수첩을 사서 모았다. 인사동의 노점에서 파는 수제 수첩을 구하기도 하고 가죽으로 장정한 공책을 사거나 인도에서 두꺼운 종이로 만든 투박한 수첩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수첩들을 손 글씨로 빼곡하게 채웠다. 나의 일상과 느낌을 적기도 하고 만난 사람들과 대화한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말을 기록해 두기도 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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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⑨] 북파공작원의 영혼을 위하여

    나는 장교로 최전방 눈 덮인 휴전선을 밤새 순찰을 돌기도 했다. 군 정보부대에서 특수훈련을 받기도 했다. 그들의 힘든 상황을 공감하고 싶었다. 깊은 산속의 지하의 칠흑같이 깜깜한 동굴 속을 통과하던 과정이 기억의 언저리에 남아있다. 본능적인 감각으로만 움직이는 훈련이었다. 눈을 감으나 뜨나 마찬가지인 농밀한 암흑이었다. 동굴 속에서 희미한 물소리가 들렸다. 물 위에 통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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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⑧] 남산 지하실의 철학

    국가안전기획부의 교육과정을 통과했다. 나는 처음 몇 달 동안 정보기관의 수사관 경험을 했다. 수사국은 남산자락에 있는 붉은 타일의 장방형 건물이었다. 저주가 맺혀있는 악명높은 남산의 지하실이 그 건물 지하에 있었다. 나에게 명령을 내리는 수사국의 책임자가 그 건물의 3층 사무실로 나를 불렀다. 재야세력에게 저승사자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는 서울법대생 시절 학생회장을 하면서 시위를 주도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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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⑦] 육사 출신 사명감 불타던 그는 훗날 국정원장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재판받던 그를 변호하다 [아시아엔=엄상익 변호사, 대한변협 대변인 역임] 나는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고급 간부와 만났다. 변호사 시절부터 알던 정보관으로 나중에 국정원장이 된 인물이다. 어느 날 정보기관 안에서 그와 만나 차를 나누면서 편하게 대화를 나눌 때였다. “저는 프레드릭 포 싸이트가 쓴 첩보 소설을 거의 다 읽었습니다. 국내 작가 김성종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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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정보기관 변론⑥] 먹는 물에 독이 들어간다면

    나는 계단식 강의실의 맨 뒷자리에서 정보요원들에게 예언같은 말을 하는 교관의 얘기들을 듣고 있었다. 대테러에 대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세균전의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학자 몇명이 연구소에서 변종 바이러스 하나를 만드는 건 경비가 별로 들지 않습니다. 그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면 세계가 곧 마비될 겁니다. 예전 일본은 페스트균을 만들어 중국의 한 지역에 뿌리는 실험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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