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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시선] ‘전관 자랑’ 선배 변호사들 존경 않는 까닭
기억 속에 있는 30년 전의 광경으로 잠시 들어가 본다. 서초동의 법원 화장실 안이다. 재판을 받던 재벌회장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 볼 일을 보고 있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에게 돈을 바쳤는지 뜯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그들은 뇌물죄로 기소되었다. 소변기 앞에 신동아그룹의 최원석 회장이 있다. 한쪽 다리를 약간 들고 볼 일을 본다. 그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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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6공 황태자 치부 들추다…”미련하고 무모했으나 후회는 없다”
어려서부터 나와 오랜 시간을 지냈던 동네 친구가 어느 날 불쑥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미련한데 잘난 척하고 싶어 해.”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친구였다. 그는 돈 냄새도 잘 맡았다. 사업에 성공해 부자가 됐다. 듣기는 거북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귀담아듣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내게 “고시라는 게 있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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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사람과 사물 제대로 판단하려면…
내가 40대 중반이던 어느 해 겨울 저녁이었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국회의원 변호사가 복도에서 나를 보자 물었다. “내일 뭐 해?” “애들 하고 스키장으로 갑니다.” “내 지역구 사건을 맡은 게 있는데 법정에 나가주지 않을래? 가서 서 있기만 하면 돼.” “사건 내용이 뭔데요?” “몰라. 법정에 가서 판사한테 알아봐. 별거 아닐 거야.” 그의 불성실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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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시선] 사단장이 따라준 술 거부한 하사관
유튜브 화면 속에서 소설가 김진명씨가 젊은 방청객들을 앞에 두고 강연을 하고 있었다. “저는 소년 시절 집 근처에 있는 남산도서관에 가서 수많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인생이 거기 다 들어 있더군요. 책은 내게 내면적 가치를 키워주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교육은 사회에서 필요한 기능적 인물을 생산하는 걸 목적으로 하고 외면적 가치를 알려줬습니다.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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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시선] ‘공명심과 위선’과 ‘진실과 정의’ 사이에서
변호사를 시작했을 때였다. 맡은 사건이 별로 없었다. 일을 얻지 못한 노동자같이 시간만 무료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돈을 못 벌 바에야 차라리 빠삐용같은 불쌍한 죄수를 공짜로 다섯명만 변호하면 천국 갈 자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건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그 무렵 전과자 출신 목사가 내게 ‘물방울 다이어 도둑’을 변호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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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총리·장관 거절한 남자···그는 자리에 책임질 줄 알았다”
10년 전쯤 한 인물의 평전을 쓴 일이 있다. 나는 돈을 받고 쓰는 작가도 아니었다. 그냥 한 법조인일 뿐이다. 그에 관한 책이 몇 권 있었다. 그를 존경하던 제자들이 쓴 것이다. 나는 나의 시각과 관점에서 쓰고 싶었다. 이미 저세상으로 건너간 한 인물의 일생을 추적하는 것에 호기심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에 관한 자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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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시선]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나와 친한 선배가 대기업 임원인 동생의 걱정을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동생 녀석이 여비서와 바람이 났어. 그 여자가 자기 행복의 전부라면서 가정까지 버리고 집을 나갔어. 꼭 그렇게 해야하나?” 그 형은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 그의 동생은 정말 그 여자 없이는 행복할 수 없는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또 다른 고교동창이 오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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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그들은 우연히 오지 않았다
대학 2학년 때였다. 도서관에 바위같이 앉아 공부하는 1년 선배가 있었다.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같은 대학에 다닌다는 외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어느 날 그가 나를 도서관의 조용한 층계참으로 부르더니 조용히 이런 말을 했다. “우리 학교는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공부를 하세요.” 그는 평소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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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시선] 동해항 빨간등대 언덕의 ‘드림 하우스’
나는 동해항의 빨간 등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아내와 함께 작은 2층집을 만들고 있다. 20년 정도 된 낡은 집을 사서 속을 털어내고 다시 방을 만들고 있다. 철물점에 가서 단열재를 비롯해서 시멘트, 모래를 직접 샀다. 창호 가게에 가서 유리와 창틀들을 직접 골랐다. 타일과 변기도 사고 페인트 등 모든 재료를 직접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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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운명도 초기화로 바꿀 수 있을까”
1977년 겨울이었다. 나는 깊은 산속의 폐허가 된 절의 한 방에서 같은 처지의 고시생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석가래가 주저앉고 기울어진 지붕에서 기와가 떨어져 내리는 절이었다. 스님들은 절을 떠나고 보살이라고 불리는 할머니가 새벽이면 목탁을 치면서 염불을 했다. 신기(神氣)가 있어 보이는 분이었다. 우리 둘은 그 할머니한테 밥을 얻어먹었다. 어느 날 저녁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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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헛것에 세뇌돼 있는 나에서 벗어나려면
고소를 당한 적이 있었다. 이혼소송 의뢰인인 여성이 변호사인 나를 배임죄로 고소했다. 남편으로부터 돈을 먹고 자기에게 불리하게 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그녀 머리속에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녀의 잘못된 관념을 머리에서 빼내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한번 의심을 하게 되면 나의 말도, 행동도, 표정도 모두 거짓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 게 인간이 가지는 편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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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총무원장의 죽음과 시베리아 자작나무
1973년 냉기 서린 바람이 불던 2월 무렵이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두 소년이 가야산 해인사를 찾아왔다. 그들은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수백명 넘는 스님들 밥을 짓고 불을 땠다. 넓은 절 곳곳을 청소하고 빨래를 했다. 둘은 그렇게 2년 가까이 행자 생활을 하다가 스님이 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길로 떠나갔다. 세월이 흘렀다. 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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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시선] ‘뜻대로 하소서’ 고백할 때…
사막을 여행한 적이 있다. 몰려있는 낙타 중의 한 마리가 소리를 높여 울고 있었다. 사람을 태우기 싫은 것 같았다. 낙타는 몸을 흔들며 싫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낙타의 길다란 눈썹과 눈 주위가 눈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낙타가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평생 사람을 태우고 적막한 사막길을 걷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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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이웃을 괴롭히면서 지배하는 사람들
밤늦게 고급빌라에 사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경찰서에 있는데 와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찰서로 갔다. 형사과 벽의 시계가 밤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형사과 구석에 두 여자가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이 찢긴 채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친구의 부인이었다. 뺨에 손톱에 찢긴 상처가 깊게 나 있었다. 마침내 일이 터진 것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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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메모 충실히 하는 기자, 자료 받아쓰는 기자
메모를 잘하는 선수들을 본 적이 있다. 팔십 가까이 기자의 외길을 가는 조갑제 대표가 사람들을 만날 때 옆에 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조갑제 대표는 진지하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면서 이따금씩 손바닥 만한 작은 수첩에 단어 한두개나 간단한 기하학적 도형을 그렸다. 나중에 기억 속에 저장된 내용들을 탐색하고 다시 꺼내는 키워드 내지 비밀번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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