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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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동해항 빨간등대 언덕의 ‘드림 하우스’

    나는 동해항의 빨간 등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아내와 함께 작은 2층집을 만들고 있다. 20년 정도 된 낡은 집을 사서 속을 털어내고 다시 방을 만들고 있다. 철물점에 가서 단열재를 비롯해서 시멘트, 모래를 직접 샀다. 창호 가게에 가서 유리와 창틀들을 직접 골랐다. 타일과 변기도 사고 페인트 등 모든 재료를 직접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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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운명도 초기화로 바꿀 수 있을까”

    1977년 겨울이었다. 나는 깊은 산속의 폐허가 된 절의 한 방에서 같은 처지의 고시생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석가래가 주저앉고 기울어진 지붕에서 기와가 떨어져 내리는 절이었다. 스님들은 절을 떠나고 보살이라고 불리는 할머니가 새벽이면 목탁을 치면서 염불을 했다. 신기(神氣)가 있어 보이는 분이었다. 우리 둘은 그 할머니한테 밥을 얻어먹었다. 어느 날 저녁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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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헛것에 세뇌돼 있는 나에서 벗어나려면

    고소를 당한 적이 있었다. 이혼소송 의뢰인인 여성이 변호사인 나를 배임죄로 고소했다. 남편으로부터 돈을 먹고 자기에게 불리하게 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그녀 머리속에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녀의 잘못된 관념을 머리에서 빼내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한번 의심을 하게 되면 나의 말도, 행동도, 표정도 모두 거짓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 게 인간이 가지는 편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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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총무원장의 죽음과 시베리아 자작나무

    1973년 냉기 서린 바람이 불던 2월 무렵이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두 소년이 가야산 해인사를 찾아왔다. 그들은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수백명 넘는 스님들 밥을 짓고 불을 땠다. 넓은 절 곳곳을 청소하고 빨래를 했다. 둘은 그렇게 2년 가까이 행자 생활을 하다가 스님이 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길로 떠나갔다. 세월이 흘렀다. 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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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뜻대로 하소서’ 고백할 때…

    사막을 여행한 적이 있다. 몰려있는 낙타 중의 한 마리가 소리를 높여 울고 있었다. 사람을 태우기 싫은 것 같았다. 낙타는 몸을 흔들며 싫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낙타의 길다란 눈썹과 눈 주위가 눈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낙타가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평생 사람을 태우고 적막한 사막길을 걷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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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이웃을 괴롭히면서 지배하는 사람들

    밤늦게 고급빌라에 사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경찰서에 있는데 와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찰서로 갔다. 형사과 벽의 시계가 밤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형사과 구석에 두 여자가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이 찢긴 채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친구의 부인이었다. 뺨에 손톱에 찢긴 상처가 깊게 나 있었다. 마침내 일이 터진 것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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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메모 충실히 하는 기자, 자료 받아쓰는 기자

    메모를 잘하는 선수들을 본 적이 있다. 팔십 가까이 기자의 외길을 가는 조갑제 대표가 사람들을 만날 때 옆에 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조갑제 대표는 진지하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면서 이따금씩 손바닥 만한 작은 수첩에 단어 한두개나 간단한 기하학적 도형을 그렸다. 나중에 기억 속에 저장된 내용들을 탐색하고 다시 꺼내는 키워드 내지 비밀번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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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초등부터 의대 열풍, ‘이면’ 한번 돌아보면…

    산부인과 의사인 아내의 언니는 작은 의원을 하고 있었다. 수술을 하다가 환자의 출혈이 심해지면 온가족에게 비상이 걸렸다. 아내까지 동원되어 혈액원으로 피를 구하러 다녔다. 작은 의원에도 풍파가 많았다. 이따금 의원 접수대로 와서 행패를 부리는 환자 가족들이 있었다. 한번은 변호사인 내가 해결사로 불려 갔다. 의원 로비에 기세가 등등한 여성 두명이 10살 넘어보이는 뇌성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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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곱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역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젊은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노파를 봤다. 불쌍한 표정을 짓지만 이상하게도 그 얼굴에서 젊은 날의 어떤 모습들이 느껴졌다. 얼굴에 그 과거가 그림으로 잠재해 있기 때문인가? 며칠 후 다시 그 자리를 지나가다가 허공을 가르는 그 노파의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다. “저 년이 나보고 젊어서 뭐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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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나는 열심히 변기를 닦고 있다”

    오늘은 오줌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어제 저녁 넷플릭스에서 보던 드라마의 마지막 회에 나오는 장면이 마음에 남았다. 술에 취한 여성이 몽롱한 상태로 앉아있는 소파의 끝자락에서 오줌이 흘러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의 아랫도리가 흥건히 젖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줌을 싸고 있는 것이다. 그 아래 바닥에 앉아있던 장년의 남자가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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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감사인사] “저의 ‘글빵’ 독자님들께”

    나의 ‘글빵 가게’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글빵을 팔고 댓글빵을 받으면서 사는 노년의 인생이 즐거운 것 같습니다. 마치 따뜻한 화로가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느낌 같다고 할까요. 천사 같은 분들이 보내주시는 댓글 온기에 동해 겨울 바닷가에서도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오늘은 먼저 저의 글빵 제조 과정을 말씀드리고 여러분과 마음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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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내 안에 있는 영적 존재, ‘하나님’

    변호사를 하면서 살인죄로 체포된 두 명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 두 명 중 한 명이 잔인하게 사람을 난자한 사건이었다. 사이코패스의 짓 같은 느낌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목격자도 없었다. 그들은 수사기관에서 서로 자기는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은 법정에서 재판장에게 똑 같이 이렇게 호소했다. “우리 둘 중의 하나가 칼로 사람을 난도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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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열등감과 자존감

    실버타운에서 검사 출신의 노인과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정권을 잡고 있던 TK출신 검사로 승승장구했었죠. 서울법대 재학 중 고시에 합격했죠. 합격 당시 나보다 실력이 좋은 선배들도 많았는데 내가 왜 그렇게 빨리 합격했는지 몰라요. 세상에는 운이라는 게 확실히 있나 봐요. 그때 같이 합격했어도 나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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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고 싶은 그대에게

    백년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덤을 정리했다. 남의 땅 산자락에 남아있는 봉분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폐가 되기 때문이다. 백년 전 죽은 조상 할머니 할아버지는 누구였을까. 가족도 친구도 그 시절 같이 살던 사람들도 모두 죽었다. 손자 손녀도 죽었다. 그 손녀의 아들이 나다. 조상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남은 것은 흙속에 묻혀 있던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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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기도해 줘, 나 암이래”

    어제는 어린시절부터 평생 우정을 나누어 오던 동네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했다. “야 상익아 기도해 줘. 나 암이래. 의사가 수술을 하래.” 그의 목소리에는 갑자기 앞에 높은 벽을 맞이한 것같은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그게 어떤 마음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25년 전 나도 그랬다. 속에 암덩이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앞이 캄캄했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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