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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난중일기] 임진왜란 ‘용인전투’, “오만한 정치인과 군인은 반드시 실패한다”
임진왜란 초기, 조선은 왜군의 압도적인 기세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특히 1592년 7월 13일 벌어진 용인전투는 조선군의 허약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다. 10만 대군이 1,600여 명의 왜군에게 패한 이 전투는 조선의 방어선을 붕괴시키고 왜군의 남하를 가속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용인전투 승리의 주역이 바로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중 한 명인 와키자카 야스하루이다. 뛰어난 무예와 용맹함으로 조선 정벌의 선봉에 섰던 그는 용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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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난중일기] ‘명량해전’ 승리에는 이순신 장군의 용기와 결단이 있었다
1597년 10월 26일(음력 9월 16일), 남해와 서해가 만나는 울돌목. 판옥선 13척이 세키부네 133척과 맞붙는 바다 위의 대회전이 펼쳐진다. 조선 수군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판옥선의 우세한 화력을 이용하여 적선을 격파하며 왜군의 전투의지를 서서히 꺾어나간다. 마침내 좁고 험한 해협의 빠른 물살이 방향을 틀자, 순식간에 적선들이 아비규환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공세를 거머쥔 판옥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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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난중일기] “북핵 억제력 위한 핵무장, ‘핵 보유’보다 ‘핵 공유’를…”
1590년 황윤길과 김성일은 각각 조선통신사의 정사와 부사로 임명되어 다대포를 떠나 대마도에 도착한다. 이듬해 일본 교토를 방문하고 돌아온 두 사람은 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서로 다르게 보고한다. 김성일은 눈이 쥐와 같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킬 인물감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반대로 황윤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뛰어난 지략과 담대함을 간파하고, 머지않아 일본이 조선을 침공할 것이라 간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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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난중일기] “‘퍼스트 무버’ 부산에 펼쳐질 미래도시를 주목하라”
1592년 임진년 5월, 왜군은 부산진에서 시작하여 파죽지세로 북진(北進)한다. 한편, 바다에서는 조선 수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한다. 1592년 7월, 왜 수군은 남해 진출을 재차 시도하지만, 학익진을 펼치고 기다리던 조선 수군을 만나 참패한다.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조선 수군의 ‘한산도대첩’이다. 사기가 한껏 양양된 조선 수군은 두 달만에 전력을 크게 상승시킨다. 이윽고 왜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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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DMZ③] “휴전선 일대에 국제기구 유치를”
한국전쟁 발발 74년…한반도 허리를 가르고 있는 DMZ(비무장지대)는 말없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휴전 71년 남북한은 일면 대화 속에서도 갈등은 여전하다. DMZ,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아시아엔>은 육사교수 시절 DMZ 현장을 횡단하며 ‘활용법’을 연구한 박영준 현대건설 상무의 글을 세 차례 나눠 싣는다. <편집자> “모든 길은 2000년전 로마에서 21세기 DMZ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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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DMZ②]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한국전쟁 발발 74년…한반도 허리를 가르고 있는 DMZ(비무장지대)는 말없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휴전 71년 남북한은 일면 대화 속에서도 갈등은 여전하다. DMZ,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아시아엔>은 육사교수 시절 DMZ 현장을 횡단하며 ‘활용법’을 연구한 박영준 현대건설 상무의 글을 세 차례 나눠 싣는다. <편집자> 북한과의 협력 : 피는 물보다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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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DMZ①] ‘전쟁의 상흔’에서 ‘번영의 터전’으로
한국전쟁 발발 74년…한반도 허리를 가르고 있는 DMZ(비무장지대)는 말없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휴전 71년 남북한은 일면 대화 속에서도 갈등은 여전하다. DMZ,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아시아엔>은 육사교수 시절 DMZ 현장을 횡단하며 ‘활용법’을 연구한 박영준 현대건설 상무의 글을 세 차례 나눠 싣는다. <편집자> “‘전쟁의 상처’에서 ‘번영의 터전’으로 가꾸자” DMZ(Demilitar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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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新난중일기] “군인은 사람이 아니라 나라에 충성한다”
1587년 조산보 만호 이순신은 녹둔도 전투에서 패한다. 조산보는 조선시대 동북 6진 가운데 하나인 경흥진에 속하며, 동북방 주요 방어지로 경흥에서 약 16Km 떨어져 있다. 오늘날 대대장급 지휘관에 해당하는 만호 이순신은 여진족의 기습에 큰 피해를 입고 곧바로 반격을 가하지만, 패전의 책임을 지고 백의종군한다. 상급 지휘관인 함경도 북병사(오늘날 사단장급 지휘관) 이일은 이순신이 처한 중과부적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패전의 결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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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난중일기] ‘이순신보유국’의 저출산과 자살률, 그리고 ‘금모으기 운동사史’
“애민정신·사회적 온기로 국난 극복을” 경남 고성에는 ‘속싯개’라 불리는 곳이 있다. 임진왜란 초기 조선 수군이 왜(倭) 수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당항포 인근에 있다. 기생 월이가 지도에 그린 거짓 뱃길에 왜군이 감쪽같이 속은 구전(口傳)의 배경이 된 곳이다. 왜군은 있지도 않은 뱃길을 활용코자 당항포로 숨어들었다가 퇴로를 차단당한다. 당항포 해전에 앞서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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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난중일기] 글로벌 포함(砲艦)시대를 준비하자
제국주의가 막 태동하던 무렵 일본은 미국 포함(砲艦)외교의 첫 먹잇감이 된다. 이 시기 일본 열도는 양이론(攘夷論)과 개국론(開國論)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1853년 페리 제독이 이끈 순양함 4척, 그리고 이듬해 순양함 9척 앞에 속절없이 무릎 꿇고 개항을 당한다. 이후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한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한다. 오늘날 일본은 당시의 개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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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난중일기] “방위산업으로 안보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준세이(男)와 아오이(女)가 등장한다. 준세이는 첫사랑을 되돌리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하다. 반면, 아오이는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냉정’하게 현실을 살아간다. 비록 둘은 첫사랑에 대한 표현은 달랐지만, 서로 간의 진심을 알게 되어 밀라노 기차역에서 아름답게 재회한다. 냉정과 열정은 공동체에서도 많이 활용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점진적 개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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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난중일기] 군인의 사생관 확립은 선택이 아니다
싸움이 치열할 때 판옥선 사이로 용머리를 내민 거북선이 적선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한다. 적선이 산산조각날 때면 조선 수군(水軍)의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상상할수록 짜릿하다.?? ? 한편, 거북선 안에 있던 승무원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돌격용 거북선이 적선을 들이받는 충파(衝破) 전술에서 내부 승무원은 적진에 몸을 던져야 한다. 거북선 출정을 명하는 북소리가 울릴 때면 심장이 멎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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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난중일기] “이순신도 가짜뉴스 피해자였다”
<손자병법> 용간(用間)편에서는 반간계(反間計)를 최고의 계책으로 꼽는다. 소위 ‘가짜뉴스’로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현혹시켜 치명타를 가하고, 동시에 우리 편의 사기를 고양할 수 있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주 활용된다. 학창 시절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을 교과서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된 보불전쟁은 유럽사에 큰 사건이었지만, 우습게도 전쟁의 도화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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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난중일기] 이순신 첫 수군 임지 발포진에서 한국의 미래를 보다
전남 고흥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순천역에서도 차량으로 한 시간 남짓 더 들어간다. 황금빛 유자가 탐스럽게 열리는 시골이다. 여기저기 솟아난 돌섬을 품은 바다의 잔잔함이 운치를 더한다. 바다를 메운 평원에서는 우리나라 우주항공의 미래가 꿈틀대고 있다. 고흥은 호국의 고장이다. 수많은 장수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이순신이 수군(水軍)을 지휘한 첫 임지여서 그 의미가 더해진다. 고흥은 조선시대에는 ‘흥양’으로 불리었다. 전라좌수군이 관할한 5관 5포의 절반인 1관(흥양현) 4포(사도진, 여도진, 발포진, 녹도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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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난중일기] 힘이 있을 때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일본 전국시대를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최고 권력자, 즉 관백(?白)의 자리에 오른다. 이후 층층이 쌓인 내부 불만을 열도 밖으로 돌리고자 조선 정벌을 명한다. 하지만, 하늘이 정해준 수명이 다하자, 조선을 침공했던 군사들에게 본국으로 돌아올 것을 유훈으로 남긴다. 후계자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지킬 무사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단 한 명의 왜군도 철수를 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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