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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진정 모르겠습니다’ 최명숙
이래도 그르다 저래도 그르다 무엇이 그른 건지 모르겠지만 왼쪽에 사람들이 그른가 했습니다 이것도 아니야 저것도 아니야 무엇이 아닌 건지 모르겠지만 오른쪽 사람들이 아닌 건가 했습니다 이 자린 오지 마 저 자린 더욱 가지 마 이리 서 있는데 누구의 자리인가 몰라 하다가 앞서간 사람들의 자리도 아닌가 했습니다 여기도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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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최명숙의 시와 사진] 새와 나무
눈 먼 새는 태어난 숲을 떠나본 적이 없는데도 저 언덕 너머에 해 그림자 길어지면 노을이 붉을 때를 안다. 귀 먹은 나무는 제 몸 흔드는 바람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도 들풀들이 웅성거리면 나뭇가지 위에 계절이 앉는 소리를 듣는다. 최명숙 시집 <따뜻한 손을 잡았네>(201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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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최명숙의 시와 사진] 통영 용화사 새소리를 쌓다
항구를 배회하던 떠돌이 한 사람이 보광전 앞 절 마당에 주저앉아 어간문 앞 계단 위에 떨어지는 새 울음소릴 모아 그득하게 쌓았다 조금만 나서면 보이는 바다에 독행의 섬을 만들고 있는 듯도 보이고 새에게 울 만큼 다 울고 어여히 날아가라는 기다림처럼도 보였다 세월은 낮도깨비 같고 사랑은 모닥불 같은 것 검은콩 놓인 누런 술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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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그곳에 가고 싶다] 봄의 길목 ‘청량사’
몇 년 만에 청랑사에 올랐다 눈 내린 산사에 수만 개 별빛이 흐르는 밤이다 수십 계단 올라 계단이 끝나는 곳에 푸른 소나무 한 그루 서서 소의 눈을 하고 뻐끔뻐끔 인사를 한다. 유리보전 안 약사여래는 닥종이가 아니고 수십 겹 붙이고 붙인 비단이래 워낭소리 노부부는 죽었는지 소식이 없다고 말을 하다 말고 우수수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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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최명숙의 시와 사진] 2월의 숲길, 새의 노래는 가볍다
숲길에서 새가 앉아 놀고 있다 곧 끝날 하루를 보내려나 보다 시린 바람, 굳건히 서있는 나목 얼음이 덮인 바위 변한 건 없으나 강 건너온 사람에게서 봄을 받아든 건지 눈 속이라도 새의 노래는 가볍다 쌓였던 낙엽은 흙 밑에 자신을 부려 흙은 낙엽의 기운으로 나목의 몸을 푼다 그 위에 앉은 새, 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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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새날을 맞는 기도’ 최명숙
눈 속을 걸어온 당신의 미소가 온 누리에 사랑의 빛으로 빛나는 새날의 아침입니다. 당신의 혜안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나의 눈을 더욱 초롱하게 하고 당신의 지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어디서든 고요를 간직하게 하며 당신의 따뜻한 눈빛과 손이 가슴이 시린 사람들에게 항상 머물게 하소서. 당신이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것들을 나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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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두 갈래 귀향길, 여수행과 목포행
처음부터 두 갈래로 나 있었지. 목포, 여수 복합열차가 익산에 도착했을 때 목포행 열차에 한 발을 묶은 여수행 열차와 여수행 열차에 한 팔을 얹은 목포행 열차는 승무원의 안내방송에 따라 서로의 길을 갈 채비를 했지. 열차 분리해체 작업을 하는 동안 “1호에서 7호차는 여수행, 8호에서 14호실은 목포행이니, 승차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바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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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앙코르와트···번창했던 천년 고도는 금이 갔어도 찬란함은 그대로
[아시아엔=최명숙 시인] 밤 11시 넘어 씨엡립 공항에 내려 앙코르와트 천 년을 디딘다. 문득 어느 왕조의 화관으로 피어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몇 생을 거듭해 온 역사는 나를 알아볼까? 날이 밝았다. 거대한 나무뿌리에 눌려 무너지는 티프롬사원에 번창한 천 년은 금이 갔어도 보이지 않는 다른 천 년이 건장하게 존재해 영화 속으로도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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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친구야! 우리 ~~에 대하여 굳이 설명하려 들지 말자”
친구야! 장애에 대하여 굳이 설명하려 들지 마라. 때로는 기다리는 것도 필요한 일이란 걸 잘 알지 않는가? 장애를 알지 못해 생기는 편견, 장애를 잘 안다고 하면서 혼자만의 기준을 세워놓고 고착화시킨 편견, 그것들은 우리를 때로 슬프게도 하고 아프게도 하지. 자네나 나나 느끼는 정도나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지. 그에 앞서 스스로 얼마나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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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최명숙의 소소한 일상] 낡은 벤치가 되고 싶었다
늦은 시간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낡은 벤치가 되고 싶었다 페인트 냄새 나는 새 벤치보다 낡은 벤치가 되고 싶은 것은 노동으로 지친 하루가 피곤해 보도블록위에 웅그리고 앉은 노파와 서류가방 옆구리에 끼고 딸의 전화를 받는 남자 두 손 꼭 잡고 서있는 두 남녀, 귀로의 정거장에 그들의 쉼이 되고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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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숙의 시와 사진] 그리워하다, 살아서 한번도 못 본 ‘아득한 성자’ 노스님
백담사가 보이자 낮달이 나왔다 살아서 한 번도 못 본 아득한 성자 노스님을 집에서부터 시 한 편으로 그리워하면서 찾아가는 길엔 이 강과 저 강의 여물목에 돌다리 놓고 건넜으면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낮달이 삼도천을 건너가서 여기 온 소식을 전해줄 일이다 무금천 건너 산문을 들어가니 동박새가 운다 예전에 노스님은 봄에 한번 가을에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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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최명숙의 소소한 일상] 고마운 것, 눈물나는 것
특별한 일이 있어야만 고마운 것은 아닙니다. 여행길에 동행이 되어준 이가 고맙고, 조심히 가라고 손에 꼭 쥔 봉투를 주머니에 넣어주는 어른의 손길이 고맙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만난 벗이 늦은 나이에 석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다고 하는 자랑이 고맙습니다. 나의 슬픈 일에만 눈물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 화재현장에서 진화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은 소방관의 소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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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최명숙의 시와 사진] 초승달
바람에 씻긴 초승달이 따라오던 초저녁 버스를 기다리며 두 손 잡고 서있는 노부부의 노래를 들었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도 승객으로 탄 차 안에서 차 창에 바같풍경을 스케치하다 건너편 좌석에서 젖먹는 아이와 엄마를 담았다. 어둠의 레온은 켜지고 풍경들이 휙휙지나가는 거리에 내렸을 때 마주치는 이름들에 조사를 붙여 시를 썼다. 다들 그 자리에 두고 귀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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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돋는 봄날, 기대 못할지도···지금 서로 다독이지 않으면”
[아시아엔=최명숙 시인, 보리수아래 대표] 그렇게 살 일입니다. 별을 보러 가는 사람에게 초롱한 별들이 기쁨이듯 사랑하는 사람을 보러 가는 이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이듯 일터로 출근하는 이에게 일자리가 있다는 것은 희망이듯 울고 있는 아이에게 어머니는 안식이듯 거칠고 힘든 세상 속에서 우리 서로가 그렇게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고 희망과 위안이 되어 만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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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우리, 어느 생에라도’ 최명숙
해그림자 드리워 강물 빛이 더 고운 바람 부는 가을 오후 옷깃 여미는 강가에서 만난 사람 하얀 고독을 지닌 영혼 저 강물이 흘러가도 이제는 떠나지 마라 우리, 어느 생에라도 만날 수 있게 들꽃이 피어도 그대 다시 오지 않을 지난 계절의 그 노래 부를 수 없는 이름 위에 깊은 노을 가득 차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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