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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 명예훼손 판결 첫 실증분석…김재형·권태상 교수, ‘공인 보도준칙’ 제안도

김재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장)가 2025년 9월 18일 ‘공인(公人) 보도에 관한 판단기준’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날 단상에 앉지 않고 무대를 오가며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2012~2024년 공인 관련 명예훼손 판결 분석…국내 첫 실증연구
신분 아닌 ‘보도할 공익이 큰 사람’으로 공인 개념 재정립
언론 취재·편집뿐 아니라 법원의 인격권 침해 판단기준도 제안

공인에 대한 언론보도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기업인, 연예인처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은 사생활과 명예 침해를 어느 정도까지 감수해야 할까.

김재형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권태상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공인 보도를 둘러싼 판결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언론과 법원이 활용할 수 있는 판단기준을 제시했다.

두 교수는 한국법학원이 발행하는 법학전문학술지 『저스티스』 2026년 8월호에 ‘공인 보도로 인한 인격권 침해에 관한 판단기준’을 발표했다. 약 60쪽 분량의 논문은 2012년부터 2024년까지 13년간 선고된 공인 관련 명예훼손 판결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공인 보도 준칙’을 제안했다.

그동안 공인 보도와 명예훼손을 둘러싼 연구는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 가운데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에 관한 규범적 논의가 중심이었다. 법이 어떠해야 하는지, 공인은 어느 정도의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논하는 연구는 많았지만, 실제 판결을 모아 공인의 유형과 쟁점별 승패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없었다.

이번 연구는 공직자와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등 공인의 유형에 따라 소송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폈다. 종전의 통념과 달리 연예인이 제기한 소송의 승소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등 실제 판결을 분석하지 않고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결과도 확인됐다.

김재형 교수는 “공인의 명예훼손 소송에 관한 판결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라며 “기존의 규범적 논의를 넘어 실제 법원이 공인 관련 사건을 어떻게 판단해왔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공인의 개념도 새롭게 정리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연예인처럼 특정 직업이나 신분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공인으로 분류할 것이 아니라, 해당 보도에서 사회적 지위와 역할, 영향력을 고려할 때 ‘보도할 공익이 큰 사람’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인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자발성·공공성·유명성을 제시했다. 유명성은 다시 사회적 영향력과 대중의 관심으로 나눴다. 당사자가 스스로 공적 지위나 대중의 주목을 받는 활동을 선택했는지, 보도 내용에 국민이 알아야 할 공익이 있는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르면 한 사람은 모든 영역에서 공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의 정책과 공직 수행, 재산이나 이해충돌 문제는 폭넓은 검증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직무와 무관한 질병이나 성생활, 내밀한 가족관계까지 당연히 공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신분보다 보도하려는 내용과 공익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논문은 이러한 원칙을 언론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공인 보도 준칙’으로 구체화했다. 기자와 편집자는 보도 전 해당 인물이 공적 관심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인지, 보도할 사실에 구체적인 공익이 있는지, 공개 범위가 보도 목적에 필요한 수준을 넘지 않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취재원의 신뢰성과 당사자 확인, 보도의 긴급성과 시의성, 표현방식의 적절성도 주요 판단 요소로 제시됐다. 공익성이 인정되더라도 실명이나 얼굴 공개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면 익명으로 처리하고, 도청이나 침입, 비공개 장소의 무단 촬영처럼 부적절한 취재 방법은 피해야 한다는 원칙도 포함됐다.

유명인의 가족이나 연인, 공직 후보자의 가족, 범죄·재난 피해자처럼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대중의 관심 대상이 된 사람은 원칙적으로 공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논문은 밝혔다. 이들을 보도하려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인격권 제한을 정당화할 별도의 중대한 공익이 있어야 한다.

이번 연구는 언론의 취재·편집 기준뿐 아니라 법원의 판단에도 활용될 수 있다. 현재 공인 관련 명예훼손 사건은 공인 여부와 공익성, 사생활 보호 범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사건마다 달라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연구진은 언론인에게 보도 기준을 제시하는 동시에 법원이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 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공통 기준을 마련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개인도 뉴스와 정보를 생산·확산하는 환경에서 이번 준칙의 적용 범위는 전통 언론에만 머물지 않는다. 개인 방송과 온라인 콘텐츠 제작자도 타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다룰 때 보도의 공익과 공개 범위, 취재 방법의 적절성을 따져야 한다.

김재형·권태상 교수의 연구는 공인을 단순히 ‘유명한 사람’으로 분류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보도 내용별로 공익성과 인격권 보호의 범위를 판단하도록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공인 관련 판결을 처음으로 실증 분석하고, 그 결과를 언론 준칙과 법원의 판단기준으로 연결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아시아엔은 이 논문의 주요 내용과 공인 보도 준칙을 [공인 보도의 새 기준]이라는 타이틀로 3회에 걸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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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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