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빌라이의 머리를 대궐 아래 내걸라!”…쩐흥다오의 항전 정신과 베트남의 저력

같은 시기 베트남의 쩐(陳) 왕조가 다스리던 다이비엣(大越) 역시 몽골의 침략을 세 차례 받았지만 모두 물리쳤다. 몽골제국 제5대 황제 세조 쿠빌라이(1215~1294)는 징기스칸의 막내아들 톨루이(拖雷)의 넷째 아들로, 징기스칸의 손자이다. 그는 다이비엣을 두 차례 침략했다.
당시 베트남 국방을 총괄한 인물이 바로 민족 영웅 쩐흥다오(陳興道) 장군이었다. 그의 본명은 쩐꾸옥뚜언(陳國峻)으로 출생연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1285년 초 쿠빌라이는 50만 대군을 동원해 두 번째 침략을 감행했고, 수도 탕롱(오늘날 하노이)은 함락됐다. 인종 황제는 대신들에게 “백성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항복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쩐꾸옥뚜언은 단호히 반대했다. “폐하의 말씀은 자애로운 말씀이오나, 종묘사직은 어찌하시렵니까? 폐하께서 항복하시려면 먼저 제 목을 베십시오.” (Bệ hạ chém đầu tôi trước rồi hãy hàng!·先斷臣首然後降)
그는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며 평소에도 유비무환의 국방정신을 강조했다. “태평한 시대에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여 나라의 뿌리를 깊고 튼튼하게 하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최고의 방책이다.”
또한 그는 국가를 지키는 힘은 국민의 단결에 있다고 보았다. “임금과 신하가 한마음이 되고, 형제가 화목하며, 나라가 힘을 합치고, 백성이 모두 병사가 되어야 한다.”
쩐꾸옥뚜언은 총사령관으로 몽골군을 격퇴하고 수도 탕롱을 되찾았다. 그러나 패전에 분노한 쿠빌라이는 1287년 수륙 양군 30만 명을 동원해 세 번째 침략을 감행했다.
쩐꾸옥뚜언은 하이퐁 인근 박당강 바닥에 날카로운 말뚝을 박아 두고 원나라 보급선단을 유인했다. 간조가 되자 적선들이 말뚝에 걸려 움직이지 못했고, 베트남군은 이를 집중 공격해 대승을 거뒀다. 몽골제국을 전쟁에서 완전히 격퇴한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다이비엣이 유일하다.
쩐꾸옥뚜언은 『만겁종비전서』, 『병서요략』, 『유제비장격문』 등 병법서를 남겼다. 『병서요략』은 베트남의 지형에 맞는 함정 설치법과 유인전술, 게릴라전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군사서이며, 『유제비장격문』은 제장들에게 끝까지 싸워 조국과 종묘사직을 지키자고 호소한 격문이다.
1115자로 된 이 격문에서 그는 장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쳤다. “그대들의 활솜씨로 병사들을 훈련시켜 사람마다 하(夏)나라의 명궁 방몽(逄蒙)처럼, 집집마다 중국 신화의 명궁 후예(后羿)처럼 되게 하라. 그리고 쿠빌라이의 머리를 대궐 아래 내걸고, 그의 아들인 운남왕 탈환(脫驩)의 시신은 장안의 제후 숙소인 고가(杲街)에서 썩게 하라.” 천지를 울리는 베트남 민족 영웅의 사자후였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베트남인의 외세 항쟁 정신은 오늘날에도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이 2045년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내세운 ‘경제 굴기’ 역시 이러한 역사적 저력 위에서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낳는다. 머지않아 ‘홍강의 기적’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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