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6.25전쟁 76주년…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수많은 전사통지서




모스크바 크레믈리. 유엔평화기념관 진열장 속 네 장의 편지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존경하는 이오시프 스탈린 동지에게.”
나는 한참 동안 내용을 읽지 못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글씨였다. 오른쪽부터 시작하여 세로로 내려가는 정갈한 필체.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에 쓰였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단정했다. 편지는 스탈린을 “조선해방의 은인”이라 부르며 시작되었다. 그리고 네 장 뒤에서 이렇게 끝났다. “우리 자체의 힘만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전쟁을 시작한 사람들이 써 내려간 구조 요청서였다.
“적군이 38도선 이북을 침공할 때에는 쏘련군대의 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 만일 그것이 여하한 이유로써 불가능하게 되는 때에는 우리의 투쟁을 원조하기 위하야 중국과 기타 민주주의국가들의 국제의용군을 조직하야 출동하도록 원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50년 9월 29일 김일성 박헌영
전쟁의 방향을 바꾼 것은 때때로 포탄이 아니라 한 장의 편지였다. 이 편지는 수십만 명의 병사를 움직였다. “우리 자체의 힘만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전쟁을 시작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한 달 뒤 압록강을 건넌 것은 중국인민지원군(中國人民志願軍)이었다. 이 편지는 한국전쟁이 장기화되는 과정의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나는 이 편지를 읽으며 김일성도, 스탈린도 먼저 떠올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편지 이후에 쓰였을 수많은 전사통지서를 생각했다. 누군가의 아들에게, 남편에게, 아버지에게 전달되었을 종이들 말이다.
이 편지의 맞은편에는 국군과 경찰의 전사·순직통지서가 전시되어 있었다. 한쪽 편지는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고, 다른 편지들은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한 통의 편지는 전쟁의 지속을 호소했고, 또 다른 수많은 편지들은 그 전쟁의 대가를 전하고 있었다.
오늘은 6월 25일이다. 나는 전쟁을 연장시킨 네 장의 편지 앞에서, 그리고 그 맞은편의 전사, 순직통지서 앞에서, 나라를 지키다 돌아오지 못한 젊은 영령들을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