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재활용센터에서 절단된 다리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사람들은 의료폐기물 관리의 허점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사람의 다리가 재활용품 더미에서 발견될 수 있느냐며 놀라고 분노했다.
그러나 재건외과 의사인 내 눈에는 다른 것이 먼저 떠올랐다. ‘남겨진 다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괴사한 다리를 절단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더 중요하다. 죽은 조직은 충분히 제거했는지, 감염은 조절되었는지, 뼈는 의족을 착용하기에 적절하도록 다듬었는지, 피부와 근육은 장력 없이 봉합되었는지. 신문은 잘려나간 다리를 보여주지만, 외과의사는 병실에 남아 있는 절단면과 그 환자의 미래를 먼저 생각한다.
며칠 전 나 역시 열아홉 살 전차정비병을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 전차를 정비하던 중 엄지가 거의 절단되다시피 하는 압궤 손상을 입었다. 혈류는 만족스럽지 않았고 말단은 자줏빛으로 변해 있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수술이 아니라,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수술이었다. 그 청년에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환자를 전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외과의사에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가 무엇인지를 선택하는 것 또한 의사의 책임이다.
절단을 생각하면 두 사람이 떠오른다.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에서 만난 윌리엄 E. 웨버 대령이다. 한국전쟁에서 한 팔과 한 다리를 잃었지만 그는 다시 군복을 입고 복무를 이어갔다. 결국 장성에 올랐고, 전역 후에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했으며,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건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것은 잃어버린 팔다리가 아니라, 기억과 헌신이었다.

또 한 사람은 이종명 대령이다. 몇 해 전 국군외상센터 기공식에서 그의 축사를 들은 적이 있다. 지뢰 폭발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했었고, 의족도 여기서 맞추었습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병원은 병을 치료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 살아갈 삶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보다 더 잘 표현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재활용센터에서 발견된 것은 절단된 다리 하나였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그 다리가 아니라, 병실에 누워 있을 한 사람의 삶이었다.
며칠 전 다른 병원으로 보낸 열아홉 살 병사의 엄지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나는 그저 그 청년이 큰 장애 없이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의족은 다리를 대신할 수는 있어도,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재건외과는 사라진 것을 붙잡는 의술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삶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의술이다. 외과의사는 그 사지를 잃었든 지켜냈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을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