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까닭

“여기까지는 오되…”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문득 피로감을 느낄 때가 있다. 누군가는 끝없이 사과해야 하고, 누군가는 그 사과의 진정성을 다시 심판한다. 말은 점점 커지고, 감정은 점점 날카로워진다. 침묵조차 입장으로 해석되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며칠 전 어떤 글을 쓴 뒤, 한 지인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오늘은 아주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네요.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동조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그 말 속에는 지금 우리 사회의 조급함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빨리 편을 정해야 하고,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하며, 애매함이나 망설임은 의심받는다. 하지만 인간의 일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게 단순했던가.
문득 오래전 보았던 <다빈치코드(The Da Vinci Code)>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오푸스 데이의 광신적 수행자 실라스는 수수께끼를 따라 어느 수도원에 도착한다. 어두운 복도 끝에서 늙은 수녀가 그를 막아선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욥기(Book of Job)’의 한 구절과 마주한다.
“여기까지는 오되 더는 넘어가지 말라.”
원래는 하느님이 혼돈의 바다를 향해 선언하는 말이다. 인간의 교만과 분노, 그리고 끝없이 넘실거리는 혼돈에도 경계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실라스는 그 말을 경고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분노했고, 결국 선을 넘는다.
가끔은 우리 시대 역시 그런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은 더 크게 분노하고, 더 완전한 사과를 요구하며, 더 명확한 충성을 원한다. 그리고 누구도 “여기까지”라고 말하지 못한다.
물론 세상에는 비판도 필요하고 책임도 필요하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사과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분노가 멈추지 못하고, 심판이 끝없이 확대되며, 사람들마저 서로의 감정을 검열하기 시작할 때, 문득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나는 논객도 아니고,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어쩌면 괜한 모난 돌이 되지 말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전적지를 찾아다니며 전쟁의 흔적을 바라볼 이유도, 역사와 문학 속 인간의 모습을 돌아볼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꾸 기록하고 싶어지는 것은, 아마도 나 자신에게 남기고 싶은 작은 증언 때문인지 모른다.
나는 이 과열된 시대를 지나면서도 쉽게 흥분하지 않으려 했고, 쉽게 증오하지 않으려 했으며, 쉽게 확신하지 않으려 했다고.
문득 다시 욥기의 문장이 떠오른다. “여기까지는 오되 더는 넘어가지 말라.”
이 말은 어쩌면 타인을 향한 경고가 아니라,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저는 어쩌면 좋겠습니까?(What shall I d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