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아내와 처음 찾은 6사단 전적지…‘결사’ 위에 겹쳐진 동행의 시간

아침부터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쏟아붓는 장대비는 아니었지만, 그칠 듯 말 듯 이어지는 잔비가 하루의 결을 부드럽게 적셨다. 그런 날, 나는 아내와 함께 가평의 한 전적지를 찾았다. 처음으로 함께 가는 전적지였다.
차를 몰고 좁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보니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도록 바닥에 기둥이 박혀 있었다. 차를 세워 두고, 우리는 말없이 걸어 올라갔다. 빗물에 젖은 흙길은 미끄러웠고,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그 느림이 오히려 그곳에 어울렸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철모 위에 ‘결사(決死)’라는 띠를 두른 네 명의 병사가 돌격하는 동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빗줄기 속에서 그들은 더욱 말이 없었다. 맑은 날이었다면 어쩌면 그 동상은 용맹이나 기개를 먼저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비에 젖은 그 모습은 오히려 조용한 결심, 혹은 되돌릴 수 없는 어떤 선택을 떠올리게 했다.

전적비 앞에는 육군 제6보병사단의 푸른 별 문양이 새겨진 장갑차 두 대가 놓여 있었다. 한때 ‘겁쟁이 블루스타’라 불리던 부대. 중공군의 공세 앞에서 무너져 후퇴했던 그들이,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싸워 용문산에서 전과를 올렸다는 기록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궁금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바꾸었을까.
그러나 그날, 비 속의 전적지에서는 그 질문이 조금 다른 결로 다가왔다.
누군가를 ‘겁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본질이라기보다, 압도적인 상황 속에서 무너진 구조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반대로, ‘용사’라는 이름 또한 개인의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다시 세워진 질서와 결의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다. 그러나 인간이 바뀌기에는 충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서 있는 ‘자리’가 바뀌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설명을 읽는 사람도, 사진을 찍는 사람도 없었다. 전적지는 본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듯했다. 비는 소리를 지우고, 윤곽을 흐리고, 색을 낮추었다. 남은 것은 단지 젖은 공기와, 그 속에 서 있는 우리 두 사람뿐이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전쟁의 기억은 본래 상실과 단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는 지금 그 자리에 함께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그 의미를 조금은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이곳에서 죽음을 각오했고,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같은 자리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함께 내려갈 길을 생각한다. 과거의 ‘결사’ 위에 현재의 ‘동행’이 겹쳐진다.
아내와 함께 전적지를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 사실이 오늘의 풍경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 혼자였다면 아마도 나는 더 많은 것을 해석하려 했을 것이다. 전술을 떠올리고, 기록을 되짚고, ‘겁쟁이’와 ‘용사’의 변화를 분석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였기에, 나는 오히려 덜 생각하고 더 느끼게 되었다.
비를 맞으며 우리는 천천히 내려왔다. 발걸음은 올라갈 때보다 조금 더 가벼웠다.
그날의 전적지는 무엇을 보여주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영웅담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또 얼마나 빠르게 다시 세워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 위에, 지금 이 순간 함께 걷는 두 사람의 조용한 발걸음이 덧붙여지고 있었다.
비는 끝내 그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