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람

[추모] ‘문장의 향’을 살리던 사람…교열의 고수 한원동을 추억하다

가운데 한원동 기자, 오른쪽은 양성목 기자. 왼쪽은 필자
[아시아엔=김택근 전 경향신문 기자] 원동 형님, 잘 가요. 한원동 선배께서 떠나셨다. 향년 82세. 그는 교열의 고수였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글 속의 잘못과 오류를 발견하여 이를 바로잡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더욱이 교열기자는 촌각을 다투는 신문사의 숨 막히는 공간에서 ‘마지막 필자’가 되어야 했다. 한원동 선배는 막힘이 없었다. 겸손했지만 박람강기博覽强記의 비범한 인물이었다.

요즘은 기사의 문장과 제목들이 많이 흐트러졌지만(날 것이 허용되는 풍토 탓이겠지만) 한때는 유능한 편집, 교열기자를 보유해야 신문의 품격을 높일 수 있었다. 이런 말이 있다. 취재기자는 3년을 해야 기획기사를 쓸 수 있고, 편집기자는 5년을 해야 탈 없는 제목을 달수 있고, 교열기자는 7년을 해야 기사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그는 말이 없었다. 그저 고쳐줄 뿐이었다. 또 필자의 특색을 살려주려 노력했다. 문장의 향香과 결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장을 손봤으면서도 그걸 필자가 모르고 지나갈 때도 있었다. 어언 그는 교열부장으로 한 신문사의 문장을 손질하는 책임자가 되었다. 그와 함께 일했던 교열기자들은 한결 같이 그에게 많이 배웠다고 말한다. 내게도 글 쓰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한 선배가 내 글을 읽는 것이 기쁨이었다. 어쩌다 칭찬을 받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신문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땅의 문인들은 출판에 종사하는 모든 편집교열자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모국어가 이리 빛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원동 선배는 담배를 많이 태웠고, 자판기 커피를 많이 들었다. 틈이 나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일을 마치면 술을 마셨다. 그 술자리에 나도 끼었다. 양성목, 한원동 선배와 술잔을 부딪혔다. 경향신문은 가난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술을 마셨다. 그렇게 마시고도 헤어질 때면 서운했다. 만나면 편안하고 마냥 좋았다. 때로는 만취했어도 주사를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20여 년 동안 거의 날마다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양성목 선배가, 그리고 한원동 선배가 회사를 떠났다. 언제까지나 함께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물나게도 멀리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늘 선배들이 있어 든든했다.

우리는 가끔 만났다. 광화문이나 서대문, 또는 종로3가에서 만났다. 1차로 술을 마시고 2차는 노래방이나 노래하는 카페에 들러 노래를 불렀다. 한원동 선배는 꼭 목깃을 세우고 <우중의 여인>을 불렀다. 압권이었다. 어느 날, 그러니까 1년 전쯤에 한원동 선배께서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외출이 힘들다고 했다. 다리가 나으면 달려오시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리는 낫지 않았다.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통화.

“숨 쉬기가 힘들어. 오래 살았지 뭐.”

4월 28일 오전, 부음을 받았다. 한원동, 세상은 알아보지 못하지만 나는 안다. 그는 큰 사람이었다. 글을 고쳐 세움은 얼마나 고매한 일인가. 그가 세운 문장 박물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와 함께한 시간들이 행복했다고 영전에 아뢰었다. 어제 잠깐 비를 내려주심은 <우중의 여인>을 부르며 먼 길 떠나라는 하늘의 배려 아니겠는가. 따사롭고 인자했던 형님, 생전에는 국장으로 칭했지만 이제 형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원동 형, 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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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siaN 편집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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