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불족적’의 미학과 공(空)의 발걸음

불족적은 부처를 형상화하지 않던 무불상기의 대표적 상징이다. 그러나 ‘형상 없음’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한 현존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었다. 불족적 앞에 서면 부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의 발걸음과 숨결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드러내는 것, 이것이 내가 느낀 ‘형상 금지의 미학’이었다.-본문에서

1년여 전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 특별전에서 나를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화려한 불상도, 정교한 탑도 아니었다. 형상이 없는 자리, 단정하게 새겨진 부처의 발자국-불족적(佛足跡) 앞에서 나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불족적은 부처를 형상화하지 않던 무불상기의 대표적 상징이다. 그러나 ‘형상 없음’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한 현존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었다. 불족적 앞에 서면 부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의 발걸음과 숨결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드러내는 것, 이것이 내가 느낀 ‘형상 금지의 미학’이었다.

이 미학은 자연스럽게 불교의 핵심 개념인 공(空)과 맞닿아 있다. 공은 단순한 ‘없음’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비워 냄으로써 그 자리에 새로운 의미가 들어설 수 있도록 여백을 마련하는 힘이다. 불족적은 형상이 사라진 그 빈자리에서 부처의 걸음과 가르침을 스스로 상상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발자국의 주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 질문은 수술실에서도 되풀이된다. 수술실은 철저히 비워진 공간이다. 장식도, 과잉도, 불필요한 움직임도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비어 있음’ 속에서 의사의 마음가짐, 집중, 책임감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 수술실의 공(空)은 외과의사에게 불족적이 그러하듯, 스스로의 발걸음을 돌아보게 만드는 자리다.

환자 곁으로 다가가는 단 한 걸음, 흔들림 없이 잡은 메스, 과장되지 않은 손의 움직임—이 조용한 동작들이 결국 환자의 삶에 남는 ‘흔적’이 된다. 불족적이 부처의 부재 속에서 그의 현존을 드러내듯, 수술실에서 의사의 진짜 모습 또한 장비나 조명 뒤가 아니라 그 발걸음의 방향 속에서 드러난다.

불족적을 보며 나는 ‘주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를 떠올렸다. 수술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장비나 조명보다, 환자를 향한 의사의 걸음 하나하나가 진짜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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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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